"우리 딸, 얼마나 아팠을까"...광주 여고생은 눈을 감지 못했다
지난 5일 새벽이었습니다. 스터디카페 가서 공부하고 오겠단 딸이 오질 않는 겁니다. 아빠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번을 걸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불안했습니다. 다섯 번째인가 싶습니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딸이 아니었습니다.
"아, 저는 구급대원인데요. 병원으로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따님이..."
악몽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딸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몇 시간 전까지 살아 움직였던 딸은 없었습니다. 혈흔으로 얼룩진 하얀 천을 덮어쓰고 있었습니다. 몸은 차가웠습니다. 아빠는 말합니다.
"아이가 눈을 뜨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던 건지 눈을 못 감고 있었어요. 그 순간 얼마나 아팠을까 내 새끼... 엄마 아빠를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눈을 감겨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잘 감기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겨우 감겨줬습니다. 더 아팠습니다.
"제가 그날 낮에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에 왔었어요. 아이가 다리를 다쳤거든요. 아이랑 같이 몇 시간 전 왔던 병원인데, 그 아이가 병원 응급실에...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에겐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보통 남매와는 달랐답니다. 싸우지도 않고 무척 사이가 좋았답니다. 그랬던 동생은, 그날 누나를 보고 그 자리에서 혼절했습니다.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던, 아이의 마지막 말은 "119에 신고해주세요"였습니다. 궁금했습니다. 그 순간 보통은 "경찰에 신고해주세요"일 테니까요.

역시나 아이의 꿈은 119 구급대원이 되는 거였답니다. 이미 구급대원이 3명이나 되는, 외가 식구들 영향을 받아서였습니다.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남을 많이 도왔고, 그래서 주변에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아빠 엄마는 사건 이후 매일 사건 현장에 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그곳에 말이죠. 광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저희 바람은 하나입니다. 우리 아이, 잊지 말아 주십사 하는 거.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
아이의 마지막을 담은 기사에, 더러운 가해자 얘기는 붙이고 싶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취재지원=천보영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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