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총파업 앞두고 떠오른 ‘긴급조정권’···정부 개입 가능할까
직권중재 폐지됐지만 긴급조정은 현행 제도, 발동 땐 30일간 쟁의행위 중지
현대차·항공사 전례 있지만 단체행동권 제한 부담 커···정부도 ‘최후 수단’ 관측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총파업 가능성으로 번지면서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필수공익사업 파업을 사실상 제한하던 직권중재 제도는 폐지됐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이 일정 요건 아래 쟁의행위를 일시 중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정 제도는 현행법상 유지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영위하는 반도체 사업은 철도·전기·병원·통신 등 법상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다만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이 수출과 공급망, 협력업체 피해로 번져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은 법적으로 열려 있다. 긴급조정이 공표되면 관계 당사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공표일부터 30일이 지나기 전에는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긴급조정이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예외적 조치인 만큼 실제 발동 여부는 파업의 규모와 지속 기간, 생산 차질의 정도에 달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총파업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11시간30분 1차 조정에도 결론 못 내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앞두고 막판 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열었다. 전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11시간30분 동안 1차 사후조정 회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번 사후조정은 조정이 종료된 뒤 노동쟁의 해결을 위해 노사 동의하에 다시 실시하는 절차로, 중앙노동위원회가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쟁점은 성과급 재원 기준과 명문화 여부다. 노조가 요구하는 핵심은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하는 지급안의 명문화다. 노조는 회사가 성과급 제도화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내놓지 않으면 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전날 사후조정 첫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지급 및 상한 폐지, 제도화를 계속 말하고 있다"며 "회사가 제도화에 대해 입장이 없으면 조정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측은 제도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회사는 조합과 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국내 업계 1위의 성과를 낼 경우 특별 보너스를 통해 경쟁사 이상의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명문화와 사측이 제시한 특별 보너스 방식 사이에 간극이 있는 셈이다.
노조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2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 창립 이래 두 번째 파업이 된다. 노조는 2024년에도 창사 이후 첫 파업을 벌인 바 있다. 노조 측은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예상 피해액이 약 30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 수치는 노조 측 추산 또는 주장에 가까워 실제 피해 규모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생산 차질 규모는 파업 참여율과 기간, 반도체 라인 운영 방식, 재고 수준, 대체 인력 투입 여부, 고객사 납기 조정 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규모와 공급망 내 위상을 고려하면 파업 장기화가 국내 반도체 생태계와 수출, 협력업체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직권중재는 폐지···다만 긴급조정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개입 가능성을 따질 때 먼저 구분해야 할 제도는 직권중재와 긴급조정이다. 과거에는 필수공익사업에서 노사 합의 없이도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직권중재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파업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2007년 12월 폐지됐다.
직권중재는 폐지됐지만 긴급조정은 여전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남아 있다. 긴급조정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할 수 있다. 법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거나, 성질이 특별한 것으로서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한다고 판단될 경우 긴급조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가 긴급조정을 공표하면 관계 당사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또 공표일부터 30일이 지나기 전에는 쟁의행위 재개도 불가하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절차를 진행하고,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중재 회부 여부가 검토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긴급조정은 파업을 일시 중지시키고 강한 조정 절차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그간 긴급조정권 발동 사례는 많지 않다. 긴급조정권은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1993년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 2005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 등 총 4차례에 걸쳐 제한적으로 발동됐다.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은 긴급조정권의 첫 발동 사례로 꼽힌다. 당시 파업으로 수출용 선박 납품이 지연될 우려가 커졌고, 정부는 수출 차질과 국민경제 피해 가능성을 이유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는 수출할 어선 20척의 납품이 미뤄지는 등 수출 전선과 국민경제에 피해가 막대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후 노사는 협상을 거쳐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은 민간 대기업 제조업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당시 현대그룹노조총연합이 주도한 파업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노사분규가 장기화했고, 정부는 생산 차질과 수출 차질, 협력업체 피해 등을 이유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당시 이인제 노동부 장관은 현대자동차 노사분규가 한 달 이상 계속되면서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고, 별도 조치가 없으면 파업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1993년 7월 20일 오전 11시를 기해 현대자동차의 쟁의행위에 대해 긴급조정을 결정했다.
2005년 항공사 파업 사례도 있다. 같은 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에 각각 긴급조정권이 발동됐다. 첨부된 과거 기사에 따르면 2005년 6월 1일 시작된 아시아나항공 파업은 수송 차질에 따른 직접 피해와 관광업계·수출업계 피해, 항공기 결항에 따른 국민 불편이 커지면서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당시 기사에는 직접 피해액 1649억원, 관광업계 806억원, 수출업계 778억원 등 총 3233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소개됐다. 같은 해 대한항공 파업에 대해서도 정부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바 있다.
긴급조정은 철도, 도시철도, 항공운수, 수도, 전기, 가스, 석유정제·공급, 병원, 혈액공급, 한국은행, 통신사업 등의 공익사업뿐 아니라 쟁의행위의 규모와 성질을 기준으로도 발동될 수 있다. 대규모 제조업 파업이라도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긴급조정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93년 7월 현대자동차 파업에 긴급조정권이 발동한 전례가 이에 해당한다. 현대차도 법상 필수공익사업은 아니지만 파업 장기화에 따른 생산 차질과 수출 차질, 협력업체 피해 우려가 정부 개입의 근거가 됐다.
현대차 사례에서 정부가 당시 제시한 명분은 비교적 분명했다. 현대차 노조는 72일 동안 22차례 파업을 이어갔고, 이로 인해 12만1000대, 2조7000억원 규모의 생산 차질이 우려됐다. 정부는 협력업체의 손실 가능성도 함께 고려했다. 당시 정부는 울산 현지를 방문해 노사 자율 해결을 촉구했지만, 양측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긴급조정권 발동 후 노사는 임금협상에 합의했다.

◇발동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문턱 높고 시기상조···정부, '최후 수단'으로 남길 가능성
다만 발동 횟수가 많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제도 사용의 문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가 경제적 손실 우려만으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노동계의 반발도 제기될 수 있다. 정부가 임금·성과급 분쟁에 개입할 경우 기업 손실 방어를 위해 국가가 노동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현 단계에서 긴급조정권을 곧바로 발동하기보다 압박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노사 협상이 진행 중이고 실제 파업 돌입 여부와 참여 규모, 생산 차질 정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조정권을 먼저 꺼내는 것은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파업 예고나 교섭 결렬 가능성만으로는 발동 명분이 약한 만큼 총파업이 실제로 진행돼야 하고, 국민경제에 현저한 위해를 입증할 정도로 파업 참여 규모가 상당해야 한다. 반도체 라인의 가동률 저하, 출하 지연, 고객사 납기 차질, 협력업체 피해 등 생산 차질도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직 긴급조정권을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막판 타결로 마무리될 경우 긴급조정권 논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반대로 총파업이 현실화하고 생산 차질이 구체화되면 그땐 정부 개입론은 빠르게 힘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업황 회복기와 맞물려 납기 차질, 수출 차질, 협력업체 피해가 확인될 경우 긴급조정권은 단순한 법률상 가능성을 넘어 실제 최후의 정책 카드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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