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현역' B-52 폭격기...이렇게 오래 쓸 줄 미국도 몰랐다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와 조율 중인 2027회계연도 국방예산안이 화제다. 올해 대비 40% 이상 증액한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미국은 2027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올해 10월부터 이른바 ‘천조국(국방 예산이 1,000조 원인 나라)’에서 ‘이천조국’으로 등극한다.
국방예산 대폭 증액한 '천조국' 미국...정작 무기들은 구형
국내 네티즌들이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지만, 사실 미국이 진짜 천조국이 된 것은 2023년의 일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군비 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2023년 국방 예산이 처음으로 8,550억 달러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때 급격히 국방비를 증액하기 전에도 미국은 이미 700조~800조 원의 국방비를 쓰고 있었고, 이 국방비 덕분에 미군은 어느 분야든 최신·최강의 무기를 쓴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 국방예산 중 무기 구매 예산 비중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직·간접 인건비와 복리후생 예산이 전체 국방비의 30~40%에 달하고, 기존 장비의 운용 및 유지보수에도 비슷한 돈이 들어간다. 연구 개발 예산을 빼고 무기 구매에 사용되는 돈은 20% 미만이기 때문에, 미군에는 구형 무기들이 매우 많다.

지금도 최일선에서 대량으로 쓰이고 있는 M1911 계열 권총이나 M2 중기관총은 나온 지 100년이 넘은 총들이다. 육군에서는 50~60년 된 M113 장갑차들이 여전히 대량 사용 중이고,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이나 F-15는 생산된 지 30~40년 넘은 기체들이 태반이다. 이렇다 보니 미군에서는 할아버지가 쓰던 무기를 아들과 손자까지 쓰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심지어 최고 수준의 전략 자산인 폭격기까지도 그런 상황인데, 어쩌면 곧 미군에서는 증조부가 몰던 폭격기를 증손자가 몰고 다니는 상황이 오게 될 것 같다.
1950년대 도입한 B-52 폭격기...수명 30년 더 늘리기로
지난 5월 6일,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미 공군이 의뢰한 B-52 폭격기 신형 엔진 중요 설계 검토(CDR) 작업을 완료하고, 곧 폭격기 엔진 교체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엔진 교체 사업의 핵심은 1961년부터 65년 동안 사용된 구형 TF33 엔진을 떼어내고, 최신 F130 엔진을 붙이는 것이다. 자동차도 너무 오래 타면 잔고장이 많아지고 부품값도 비싸지듯 B-52H 폭격기도 매년 올라가는 유지비와 떨어지는 연비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미 공군 내에서는 새 폭격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최소한 엔진만이라도 바꾸자는 주장까지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고, 2020년 엔진 교체를 포함한 대규모 성능 개량과 수명 연장을 통해 최소 30년을 더 쓰자는 계획이 확정됐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미군은 차세대 폭격기 B-21을 개발했고, 올해 말 실전 배치를 목표로 이미 40여 대 가까운 B-21을 생산 중이다. 미국이 장거리 타격 폭격기(LRS-B)라는 사업명으로 신형 폭격기 개발에 착수한 것이 2015년이고, 이 신형 폭격기의 시제기 제작을 시작한 것이 2019년이었다. 그런데 B-52 성능 개량 계획이 확정된 것은 2020년이므로, 미국은 차세대 폭격기를 만들기로 해 놓고 구형 폭격기 개량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신형 폭격기 B-21 1조원인데...1대 당 9,400억원 들여 B-52 개조하는 이유
일반적인 상식으로 접근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추정은 ‘예산 절감’일 것이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을 고쳐 쓰는 것이 더 저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5년 작성된 미 회계감사원(GAO)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신형 폭격기 B-21은 2025회계연도 계약가격 기준으로 1대에 7억 달러(약 1조 원)다. 그런데 같은 해 B-52 성능 개량 계획 예산안을 보면 B-52H 76대 엔진 교체 비용으로만 무려 150억 달러(약 22조 원)가 책정돼 있다. B-52 1대에는 8대의 엔진이 장착되는데, 폭격기 1대당 엔진 교체 비용만 약 2,900억 원이 드는 셈이다. 이는 어지간한 호위함 1척 가격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대당 개량 비용이 2,900억 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B-52H 폭격기의 엔진부터 레이더, 전자장비 등 거의 모든 구성품을 교체하는 대규모 성능 개량 사업에 총 486억 달러(약 71조 3,400억 원)를 책정했다. 폭격기 1대에 9,400억 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이는 차세대 폭격기 B-21 1대 가격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도대체 개조 비용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것일까?
1952년 첫 비행한 B-52...미군도 이렇게 오래 쓸 거라곤 생각 못했다
B-52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1월 획득 사업이 시작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시제기인 XB-52 모델이 첫 비행에 성공한 고령의 항공기다. 양산형인 B-52A가 1954년 생산을 시작했고, 최종 생산 버전인 B-52H는 1963년에 나왔다. 현재 미 공군이 운용 중인 B-52H의 기체번호를 추적해 보면 대부분 1958~1961년에 생산됐다. 가장 젊은 기체도 올해로 취역 65년이라는 의미다.
사실 미군 자신도 B-52를 이렇게까지 오래 쓸 줄은 몰랐다. 1940년대 후반에 고안된 폭격기 개념에 1950년대 항공 기술을 접목해 완성한 B-52는 1960년대까지 주력 전략폭격기로 쓰다가 1970년대부터는 후계기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날 예정이었고, 그랬어야만 했다. B-52는 유사시 소련의 중심부까지 날아가 핵폭탄을 투하하는 전략폭격기로 태어난 물건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소련이 지대공 미사일과 요격기 숫자를 급격히 늘리면서 B-52는 소련 영공에 들어갈 수 없는 폭격기가 됐다. 최대속도가 여객기 수준인 시속 1,050㎞ 정도에 불과했고, 레이더 반사 면적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소련 방공망을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1950년대 후반, 오로지 속도 성능 하나로 소련 방공망을 뚫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초음속 폭격기인 XB-70 ‘발키리’를 만들어 B-52를 대체하려 했다. 발키리는 무려 23㎞의 고도에서 최고속도 마하 3.1, 순항속도 마하 2.5로 비행하도록 설계된 초고속 폭격기였다. 당시 소련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였던 MIG-21이 최대 19㎞에서 마하 1.8의 속도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가히 충격적인 비행 성능이다. 그러나 발키리는 현재 기술로도 구현이 어려운 항공기여서 기술적 위험이 대단히 컸고, 가격도 너무 비싸 결국 시제기 단계에서 사업이 종료됐다.
B-52 대체 폭격기 개발 사업은 번번이 실패
B-52를 대체하려는 두 번째 시도는 XB-70이 취소된 직후에 시작됐다. XB-70이 고고도·초고속 폭격기였다면, 후속 모델은 소련 방공 레이더의 사각지대인 저고도에서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폭격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1974년 B-1A ‘랜서’가 완성됐는데, 이 폭격기도 시제기 완성 3년 만에 사업이 취소됐다. 1976년 소련 공군 조종사가 망명하면서 몰고 온 MIG-25P를 분석한 결과, 소련 요격기들이 저고도로 침투하는 B-1A를 아주 손쉽게 탐지·격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XB-70에 이어 B-1A도 취소되면서 미 공군은 B-52를 주력 폭격기로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50년대 초반에 등장한 B-52를 계속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B-1A 폭격기 사업 취소와 동시에 ‘첨단 기술 폭격기(ATB)’ 사업을 시작했다. 1976년부터 극비리에 추진된 이 사업은 1988년 시제 1호기가 처음 공개되기 전까지 개발 사업의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다. 높은 수준의 스텔스 성능 구현을 위해 전통적인 항공기 형상을 포기하고 *전익기(Flying wing aircraft) 구조를 채택한 B-2는 기술적으로 대단히 큰 도전이었고, 그만큼 가격도 비쌌다.
전익기(Flying wing aircraft)
동체 전체가 날개인 형상의 항공기. 별도의 꼬리날개가 존재하지 않고, 삼각형 또는 가오리 형태의 납작한 형상이다. 공기 저항과 레이더 반사 면적을 최소화하고, 양력을 극대화한 설계다. 수직 꼬리날개가 없어 급격한 기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방향 전환시 비행 안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음.
미국은 B-2의 시제기가 완성되던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132대의 B-2를 생산해 B-52를 모두 대체할 예정이었지만, 이는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B-2가 비싸도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1990년 기준으로 B-2A 1대의 가격은 22억 달러였는데, 이는 같은 해 진수된 니미츠급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 가격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B-2는 최초 계획 대비 6분의 1 수준인 21대만 생산됐다.
미국은 전례가 없는 스텔스 폭격기 개발 사업인 ATB가 실패할 것에 대비한 보험으로 기존 B-1A를 개량해 레이더 반사 면적을 줄이고 속도 성능을 개선하는 ‘장거리 전투항공기(LRCA)’ 사업을 통해 B-1B를 만들어 100대를 생산하기는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기준 미 공군의 폭격기는 300대가 넘었고, 이 중 200대 이상은 B-52G/H였기 때문에, B-1B는 B-52를 모두 대체하지 못했다. 미 공군도 B-1B를 B-2 도입 전 잠시 사용할 과도기적 폭격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1991년 냉전 체제 붕괴 후 B-2 대량 생산 계획이 폐기되면서 B-52는 다시 퇴역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B-52H보다 25년 이상 늦게 개발·제작된 B-1B가 B-52H보다 더 빠르게 퇴역 중이라는 것이다. B-1B는 속도도 빠르고 무장 탑재량도 B-52H보다 많지만, 날개가 접히는 *가변익 구조여서 유지비가 더 비싸다.
가변익(Variable-sweep wing)
상황에 따라 접거나 펼 수 있는 날개. 양력이 많이 필요한 이·착륙 또는 저고도 저속 비행에서는 날개를 펼치고, 공기 저항을 줄여야 하는 고속 비행에서는 날개를 접을 수 있도록 고안됐으며, F-14와 B-1B 등에서 채택. 구조가 복잡해 유지비가 비싸고, 무장 장착대 설치가 어려워 1970년대 후반 이후 빠르게 퇴출.
B-1B는 비행시간당 유지비용이 9만1,000달러가 넘고, 비행시간당 정비 소요 시간이 무려 74시간에 달해 2010년대 중반에는 가동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B-52H는 비행시간당 유지비용이 7만 달러, 비행시간당 정비 소요 시간이 53시간 수준이어서 B-1B보다 훨씬 더 싸고 효율적으로 굴릴 수 있었다. 그래서 B-1B는 B-52H보다 훨씬 더 빨리 퇴역을 시작했다. 2026년 5월 기준으로 B-52H는 76대가 운용 중인데 반해 B-1B는 도입 기체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퇴역해 현재 46대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 잔여 물량도 오는 2037년까지 전량 퇴역해 선배인 B-52H보다 먼저 현역 목록에서 삭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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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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