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 한다더니 핵산업 육성?...원전 확대 드라이브 논란

이한 기자 2026. 5. 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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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원전 확대 기조를 둘러싸고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원전 산업 지원을 주요 정책 성과지표로 설정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후대응 부처가 핵산업 진흥에 앞장선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요관리 체계 전환보다는 원전 산업 육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원자력 발전소.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Pixabay)/뉴스펭귄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이 11일 성명을 내고 기후부의 원전 확대 정책을 비판했다. 기후부가 이달 6일 공개한 '2025년 주요정책 자체평가 보고서'(이하 결과보고서)에서 원전을 환경 이슈가 아닌 산업 문제로 다뤘다는 지적이다. 

비상행동은 논평에서 "기후부가 원전산업 생태계 지원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정책평가지표로 삼고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보호라는 본연의 역할 대신 핵산업계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어난 지점은 기후부가 '원전산업 생태계 지원 및 미래 경쟁력 확보' 항목을 '미흡'으로 평가한 대목이다. 기후부는 개선방안으로 계속운전 원전 허가 확대와 신규 원전 건설, 원전 탄력운전 기술개발, 소형모듈원전(SMR) 특별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를 두고 "규제기관이어야 할 부처가 산업 진흥 논리를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후부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 

기후부가 공개한 결과보고서에는 정부의 원전 확대 기조가 구체적인 정책 성과와 향후 계획 형태로 담겼다. 보고서에서 기후부는 '원전 산업 생태계 지원 및 미래경쟁력 확보' 과제를 별도 항목으로 설정하고, 이를 '미흡' 평가 대상으로 분류하고 개선·보완 방향으로 원전 확대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개한 '2025년 자체평가 결과보고서' 중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원전 산업 생태계 지원 및 미래경쟁력 확보' 분야가 '미흡'했다고 평가한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자료 기후에너지환경부)/뉴스펭귄

기후부는 결과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0기의 계속운전 절차 추진과 고리 2호기 계속운전 허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진행 등을 주요 정책 성과로 제시했다. 또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전 생태계 고도화 사업과 소형모듈원전(SMR) 특별법 추진, 차세대 원전 기술 확보 등을 향후 중점 과제로 언급했다. 원전의 출력 조절을 의미하는 '탄력운전' 기술개발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 대응 차원의 핵심 정책으로 포함됐다.

보고서 내 원전 관련 과제들의 평가 결과는 엇갈렸다. 앞서 언급한 미래경쟁력 확보 분야는 '미흡', '원전 관리·지역협력 강화 등을 통한 원전 안전 운영'은 '부진' 평가를 받았다. 기후부는 원전 특별지원사업의 집행 부진과 지역 협력 미비 등을 개선 과제로 지목하며 예산 집행 연계 강화와 현장 컨설팅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단순한 원전 활용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기후부는 원전 산업계 회생을 위해 원전 일감 발주 확대와 저금리 융자 지원, 원전기업 인력 양성 등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다. 실제로 보고서에는 원전 생태계 일감 규모가 목표치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시됐으며, 중소·중견기업 대상 저금리 융자 확대와 원전기업 재취업·정규직 전환 지원 실적도 포함됐다.

차세대 원전 분야에서는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 표준설계 인가 추진과 함께, SMR 제작 기간·비용을 줄이기 위한 '혁신제조 기술개발' 계획도 담겼다. 기후부는 이를 통해 국내 SMR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MR 특별법'을 제정해 연구개발(R&D)부터 상용화·수출까지 전주기 산업 육성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기후부는 앞서 지난 4월에도 김성환 장관이 직접 원전 주요기기 제작 현장을 방문하는 등 신규 원전 추진을 독려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기후부에 따르면 김성환 장관은 4월 29일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을 방문했다. 이 공장은 대형원전 주요기기 관련 제조 거점으로 그간 신한울, 신고리, 신월성 등 국내 주요 원전에 주요기기를 공급해 왔다. 당시 기후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 원전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한 현장점검의 일환으로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장관은 현장에서 "우리나라는 원전 기기 제작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언급하며 주 단조 공장과 원자력 공장 등을 둘러봤다. 

"기후대응 부처 본분 잊은 것"...4대 쟁점은? 

보고서 내용을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탈핵 시민사회 등은 비판을 쏟아냈다. 기후 대응 부처가 사실상 핵산업 진흥 부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후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원전 산업 생태계와 수출 경쟁력 강화에 더 적극적인 정책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탈핵시민단체는 기후부에 대해 "기후 대응 부처가 사실상 핵산업 진흥 부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비판에 나섰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비상행동이 논평에서 지적한 문제는 크게 4가지다. 첫 번째는 계속운전 논란이다. 이 문제는 최근 1~2년 사이 가장 첨예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0기에 대해 계속운전 절차를 추진 중이다. 기후부는 고리 2호기 계속운전 허가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추진 등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지만, 시민사회는 "노후 원전은 안정적 전력 공급 수단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시설"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원전 안전 규제를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독립성 문제다. 비상행동은 성명에서 "노후 원전 계속운전과 신규 원전 건설 허가는 기후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기후부가 원안위와 같은 규제기관의 독립성마저 무시하는 월권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원안위는 원전 운영 허가와 계속운전 심사 등을 담당하는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이다. 환경단체들은 기후부가 계속운전 허가 확대와 신규 원전 추진을 정책 성과와 향후 과제로 제시한 것 자체가, 안전 규제보다 산업 진흥 논리를 우선시하는 인식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원전 탄력운전 문제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탄력운전은 전력 수요 변화에 따라 원전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은 "원전은 구조적으로 탄력운전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비상행동은 논평에서 "최근 공개된 내부 문건에서는 정부 스스로도 경제성과 안전성 한계를 일부 인식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커졌다"고 지적하며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큰 기술을 국민 안전을 담보로 실험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SMR 역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정부는 SMR 특별법 제정과 산업 생태계 육성을 추진하며 수출 산업화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계에서는 상용화조차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며 핵폐기물과 안전성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와 수요관리 체계 구축에 집중해야 할 자원이 원전 산업 지원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전, 국제 탄소규제 맞춘 체질개선에 도움 안 돼"

에너지 분야 환경운동가들도 같은 취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박수홍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산업과 에너지 분야를 관할하는 공급부처였던 과거 산업부가 원전 확대 정책을 내놓을 때도 반대해왔는데, (환경 분야의) 규제부처이자 핵발전의 안전성을 감시해야 할 기후부가 원전을 산업 정책적으로 평가한다는 건 부처 정체성과 맞지 않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박수홍 팀장은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고 전력수요가 과장되는 부분만 잘 관리해도 지금 가진 것으로 가능하다"며 "재생에너지 비율을 빨리 높이고 국제 탄소규제에 맞춰 체질개선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원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 속 이상기후가 원전의 안전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박 팀장은 "우리나라 해수온도 상승이 전세계 평균보다 빠른 수준이고 원전의 해수냉각수 온도에 대한 기준도 마치 고무줄처럼 주관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냉각수 온도 올라가는 문제 때문에 원전을 원활하게 운영하는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가 원전 확대 기조를 강화하는 배경 역시 분명하다. 최근 국제 에너지 시장 불안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중동 정세 악화와 장기화되는 이란 전쟁은 국제 유가와 LNG 가격 변동성을 키우고 있으며, 주요국들은 안정적 전력 공급 체계 확보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전력 가격 안정과 산업 경쟁력 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올해 1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신규 원전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당시 김 장관이 기자단을 상대로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 기후에너지환경부)/뉴스펭귄

김성환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나는 탈원전주의자가 아닌 탈탄소주의자"라고 밝히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되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장관은 "원전의 수명 연장은 안전성이 전제돼야 한다"며 "안전성이 담보된다면 계속운전도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정부는 이런 맥락에서 원전을 '탄소 배출이 적으면서도 안정적인 기저전원'으로 보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출력 변동성과 저장기술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글로벌 차원에서도 미국·프랑스·영국 등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이유로 원전 투자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은 결국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전환 전략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정부는 원전을 탄소 배출이 적은 안정적 전원으로 보고,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와 탈핵 진영은 원전이 핵폐기물과 사고 위험, 높은 비용 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건설 기간도 길어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을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의 현실적 수단으로 볼 것인지,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는 산업 구조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시각 차이가 이번 논쟁의 근본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안전성과 사회적 수용성 문제가 충분히 검토되고 있느냐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핵폐기물 처리와 노후 원전 위험성, 사고 대응 체계 같은 핵심 문제는 후순위로 밀어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원전 확대를 정책 성과지표로 설정한 것은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실제 환경단체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한 원전 찬반 논쟁을 넘어, '기후·환경 부처'의 역할 자체와 연결된 문제라고 보고 있다. 비상행동은 "기후부가 스스로를 규제 부처가 아닌 특정산업 진흥 부처처럼 인식하고 있는 잘못된 정책 기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평가 지표 설정에 대해 "원전산업 생태계 회복을 제1의 목표로 삼았던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이재명 정부에서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이어 받은 결과"라고 언급하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문제를 넘어 어떤 에너지 체계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위험과 비용을 사회가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므로 기후부가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안전성과 재생에너지 전환, 장기적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검증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후부, 원전 안전·사후관리 등 과제도 함께 언급

기후부는 원전의 안전 여부 등도 주요 과제로 다루었다는 입장이다. 기후부는 결과보고서에서 '원전 관리, 지역협력 강화 등을 통한 원전안전 운영'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기후부는 상시적 원전 안전관리 등을 통한 적시 대응이 이뤄졌다고 밝히면서 안전 가동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고장 또는 정지 발생 시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산불과 태풍 등 원전 안전 위협 관련 재난 재해를 대비해 취약시설에 대한 설비 안정성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원전 사후관리 측면에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과제도 언급했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정책의 법적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고 하위법령을 마련해 시행했다는 점을 성과로 언급했다.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를 설치해 관련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섞어 쓰는 에너지 믹스 정책은 변한 게 없다"며 "가동 기간이 지난 원전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연장해서 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신규 원전에 대해서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데 최하 15년이 걸린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