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첫 시작’의 마이스터… 책은 그 시작을 비추는 빛”

이태훈 기자 2026. 5. 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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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안데르센상 수상 오스트리아 작가 하인츠 야니쉬
한국문화예술위 초청으로 남이섬서 집필… 독자들과 만나
“아이들 손에 핸드폰 대신 책을 쥐어 주고 함께 읽어주세요”

“아이들은 처음 시작하고, 처음 분노하고, 처음 사랑하고, 처음 싸움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그런 ‘첫 시작의 마이스터(meister·匠人)’죠. 모든 것이 하나의 모험이고 굉장히 큰 감정의 동요가 있을 거예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초청 받아 한국에 온 2024년 안데르센상 수상 오스트리아 작가 하인츠 야니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하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하인츠 야니쉬(Heinz Janisch·66)는 최근 한국 언론과 만나 “그걸 인정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함께 해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책을 읽어주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했다. 안데르센상은 덴마크에 본부가 있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에서 2년마다 아동문학 글 작가와 그림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과 함께 ‘세계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남이섬서 한국 구전동화 이야기 완성”

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의 문학 후원 레지던시 사업으로 한국에 와, 지난달 보름 넘게 남이섬에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했다. 이어 서울 명동 프린스호텔에서 제공하는 창작 공간에 머물며 ‘작가와의 대화’ 등 한국 독자와 만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남이섬의 자연은 아름다웠고 많은 결실을 맺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 탄생 270주년에 맞춰 의뢰받은 동화 집필을 남이섬에서 마쳤어요. 스코틀랜드에서 온 노신사 탐정이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글을 읽을 줄 아는 개와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아이들을 위한 셜록 홈즈’ 같은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인데, 이번 배경이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입니다.”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 작가 하인츠 야니쉬가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한국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또 “여기 오기 전 오스트리아에서 1920년대 한국 구전 동화를 독일 선교사가 모아 독일어로 번역한 책을 발견해 가져왔는데, 그중 일곱 가지 이야기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바꿔 써서 완성했다”며 “그림을 그려줄 한국 작가를 찾고 싶다”고도 했다.

처음 마주한 서울에서 그는 “내가 너무 거북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오스트리아 인구가 800만명인데 서울에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살죠. 속도가 달랐어요. 저는 너무 느리고 한국의 모든 것이 너무 빠르더군요. 횡단보도 건널 때 남은 시간이 나오는 걸 보니 빨리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그는 “서울엔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이 만나는, 고전적인 배경에 현대적 디자인이 가미된 곳들이 많아 감명 깊었다”고도 했다.

◇“책 안 읽는 아이들? 어른이 먼저”

대학에서 독문학과 언론학을 전공하면서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아동문학 작가들을 인터뷰하다 직접 아동문학을 쓰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일하며 매주 일요일마다 한 시간씩 노인들의 인생 경험을 들여다 보는 ‘인간의 초상(Menschenbilder)’이라는 방송을 40년간 만들기도 했다.

“유명 배우나 음악가도 섭외했지만, 광부, 수의사, 신발 수리공 등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출연해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줬어요. 직접 겪은 일을 풀어내며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역사가 이야기로 전달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보통 사람의 경험에 귀 기울이며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작고 사소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작가 하인츠 야니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교회 오르간 연주를 듣고 음악가가 되고, 학교에서 연극을 보고 연출가가 되기도 했죠. 저 역시 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셔서 늘 한 시간씩 책을 읽으셨어요. 제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버지의 그 습관 덕분이었습니다.”

야니쉬는 “요즘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하는데, 먼저 어른들은 충분히 읽고 있는지, 모범을 보이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일”

그는 안데르센상 수상 소감에서 언급했던 아프리카 구전 이야기를 들려주며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홀로 산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던 노예가 있었죠. 그는 친구가 건너편 산봉우리에서 피운 불꽃을 보고 그 온기로 버텨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 온기를 주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상상력을 믿고, 많이 상상하고, 이야기를 읽고 나면 끝을 스스로 다시 써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책 속엔 엄청나게 놀라운 경험이 가득합니다. 많이 읽으면 더 큰 세상을 만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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