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무 쉬워지니 한국서 더 살고 싶어요”
외국인 정착돕는 ‘하나 글로벌컬처뱅크’
천안·대전 이어 인천 개소…5만명 이용
한국어교실·의료·커뮤니티 활동 지원
명의도용·불법환전 등 사기예방 강화


“시장에서도 상품권 쓸 수 있어요. 온누리상품권이라고.” “선생님, 카드 내면 싫어하는 시장 사람 있어요.” “와하하하.”
7일 오후 2시, 인천 하나은행 남동산단금융센터지점 2층. 베트남·태국·미얀마·러시아에서 온 수강생 8명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날 수업 주제는 ‘여러분의 경제생활 습관에 체크해 보세요’였다. 저금을 하다·가계부를 쓰다 등 열 글자도 채 안 되는 짧은 문장들이 화면에 떴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속도로, 혼잣말하듯 천천히 문장을 읽어나갔다.
한국에 온 지 8년째라는 대만 출신 예야치 씨(여·40대)가 “가계부 쓴 지 5년 됐어요”라고 말했다. 교실에 “우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는 집에서 지하철로 40분 거리지만 일주일에 두 번 이곳을 빠지지 않고 찾는 우등생이다. 한국어 강사 박장희 씨가 “이런 사람을 우리는 ‘살림꾼’이라고 불러요”라고 알려주자 교실 안은 금세 “살림꾼, 살림꾼” 따라 읽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하나글로벌컬처뱅크 이용자 5만명 육박=한국어를 배우러 왔다가 한국살이를 배우고 간다. 2월 문을 연 ‘인천 하나 글로벌컬처뱅크’ 이야기다. 은행 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가니 번호표 호출 대신 여러 나라말이 먼저 들렸다. 베트남어·중국어·미얀마어 등 생활 상담 창구가 줄지어 있었다. 정원과 꽃, 봄 풍경을 주제로 만든 작품들 사이로 러시아어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하나금융이 2019년 천안역, 2021년 대전역전지점에 이어 세 번째 외국인 특화 공간을 남동산단 인근에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인천은 등록 외국인 주민만 약 17만명에 달하는 전국 최대 외국인 거주 도시다. 남동산단에는 베트남·태국·미얀마 출신 근로자들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인천광역시와 협력해 은행 2층에 한국 생활 정착을 돕는 인천외국인지원센터 분소를 마련하게 됐다. 월 평균 방문객은 600명, 상담 건수는 월 1200건을 웃돈다. 글로벌컬처뱅크 3곳의 누적 이용객 수는 약 4만9050명에 달한다.
이곳의 진가는 주말에 드러난다. 평일에는 공장에서 일하느라 시간을 내지 못한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일요일이면 몰려들기 때문이다. 최우진 인천 글로벌컬처뱅크 매니저는 “출근길에 보면 일요일 오전 10시 오픈을 기다리려고 한 시간 전부터 은행 앞을 서성이는 외국인 손님들이 있다”며 “번 돈을 가족에게 보낸다는 설렘 때문인지 기다리면서도 표정이 참 밝다”고 말했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무료 의료봉사가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5월부터 금융사기 예방교육 정식 운영=통장을 만들고 송금을 돕고, 이제는 사기까지 막아준다. 최근 글로벌컬처뱅크는 외국인 주민들의 ‘동네 금융보안관’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다. 외국인 고객들의 금융 고민도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통장 만들기와 해외송금이 대부분이었다면, 장기 거주자가 늘면서 대출·투자·온라인 결제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진민수 인천외국인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최근엔 보이스피싱이나 명의도용, 불법 환전 관련 상담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환전과 투자 관련 피해 사례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인천베트남교민회 회장 김연주 씨(여·36세)는 2010년 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왔고, 2016년 귀화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김 씨 역시 처음 은행 문턱을 넘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김 씨와 같은 결혼이민자는 가족관계증명서로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면 은행을 돌고 또 돈다. 당시엔 통장 개설 서류가 전부 한국어라 내용을 이해 못 한 채 그냥 사인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동료에게 은행 업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문제는 그 틈을 노리는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은행 직원이 아님에도 전문 인력이라고 SNS에 홍보하며 동행하는 대가로 10만원씩 받는 브로커가 기승을 부린다고 김 씨가 전했다. 통장이 없으면 지인을 통해 현금을 건네고 송금을 부탁하는 일도 여전하다.
이에 인천 글로벌컬처뱅크는 이달 말부터 금융사기 예방 교육을 정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통장은 한국 사회 구성원 출발점=통장 하나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하나은행 남동산단금융센터지점 직원들은 특별한 출장에 나섰다. 어울림이끌림사회적협동조합과 협력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재정착 난민’들을 만나 계좌 개설을 도운 것이다. 체류 자격을 얻는 것과 금융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또 통장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주택청약저축은 묘한 금융상품이다. 집을 사기 위한 통장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담는 통장이기도 해서다. 2012년 한국에 온 파키스탄 출신 아퀼다임 씨(남·22)도 성인이 되자마자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매달 10만원씩 꾸준히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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