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을 바꾼 ‘초록 셔츠’ 여성들…‘쓰레기 수거원’이란 자부심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5. 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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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현지시간) 인도 케랄라주의 도시 티루바난타푸람 완지우르 마을 한 골목에 골목 담당 쓰레기 수거원인 라티카(왼쪽)와 몰리가 서 있다. 티루바난타푸람 | 오경민 기자

지난 3월11일(현지시간) 오전 인도 남부 케랄라주 티루바난타푸람의 완지우르 마을. 청록색 셔츠를 입은 여성 라티카와 몰리가 흰 마대 자루를 들고 골목에 들어섰다. 집주인이 대문을 열어주자 이들은 주차장에 놓인 비닐봉투를 열어 플라스틱 쓰레기를 꺼내 마대에 옮겼다. 깨끗이 씻어 말린 약통, 음식 포장용기, 페트병, 과자봉투 등이 쏟아져 나왔다. 라티카는 벽에 붙은 큐알코드를 찍어 100루피(약 1550원)을 청구한 뒤 옆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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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카와 몰리는 완지우르 마을을 담당하는 쓰레기 수거원이다. 이들이 속한 조직을 ‘하리타 카르마 세나’라고 부른다. 케랄라주에서 사용하는 말라얄람어로, ‘녹색 전사’를 의미한다. 이날 두 사람은 가정 15곳과 상점 60곳을 방문해 플라스틱을 수거했다. 케랄라주에는 약 3만5000여명의 하리타 카르마 세나가 있다.

인도 케랄라주 완지우르 마을의 쓰레기 수거원인 라티카(왼쪽)가 한 가정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며 쓰레기들을 확인하고 있다. 티루바난타푸람 | 오경민 기자

케랄라주는 무단 투기와 불법 소각 등 쓰레기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부터 하리타 카르마 세나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여성들로 구성된 이 조직은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한 고형 폐기물을 수거한다. 각 가정과 사업장은 월 50~200루피(약 770~3100원)를 내고 폐기물 수거 서비스를 이용한다. 무단 투기나 소각이 적발되면 서비스 이용료보다 더 높은 수준의 벌금이 부과된다.

수거원은 급여를 받으면서, 페트나 캔 등 일부 재활용품을 판매해 추가 수입도 얻는다. 라티카와 몰리가 버는 돈은 월 3만루피(약 46만5000원) 정도다. 인도 평균인 2만5000루피를 웃돈다.

하리타 카르마 세나는 지역의 폐기물 문제를 개선했을 뿐 아니라 빈곤을 완화하고 여성 고용을 늘리는 데도 기여했다. 하리타 카르마 세나는 빈곤 여성 자활을 위한 지역 공동체 ‘쿠둠바슈리’를 통해 선발된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가정주부나 비공식 쓰레기 수거원들이 지방정부가 인정한 직업인으로 편입되자 지역민들도 이들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리타 카르마 세나를 상징하는 청록색 유니폼은 라티카와 몰리에게 자부심이다. 라티카는 “이곳에서 나는 엄마나 할머니가 아니라 노동자”라며 “우리가 쓰레기를 처리해주니까 주민들도 반긴다. 어떤 집에서는 고맙다며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라티카가 한 가정에서 쓰레기를 수거한 뒤 비용을 집 벽에 붙은 큐알코드를 통해 청구하고 있다. 티루바난타푸람 | 오경민 기자

케랄라주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 여성 약 3만명을 노동 시장에 진입시키고, 연간 65만t가량의 폐기물을 수거하는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케랄라주의 제로 웨이스트 정책 홍보 전략을 세운 경제학자 K K 크리슈나쿠마르는 “우리의 목적은 단지 보기 좋게 길거리를 치우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하리타 카르마 세나는 숙련노동자이자 전문적인 직업인이며,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폐기물 분야 공공기업인 클린 케랄라 컴퍼니에 따르면 하리타 카르마 세나의 쓰레기 수거량은 5년간 236% 증가했으며, 케랄라주는 이 활동으로 30만t가량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였다.

쓰레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함께 바뀌었다. 인도에서 폐기물 관련 노동은 오랫동안 가장 가난하고 계급이 낮은 사람들의 일로 여겨졌고, 거리나 하천에 쓰레기가 쌓여있어도 방치됐다. 제도 도입 이후 분리배출이 공동의 책임으로 자리 잡으면서 쓰레기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지난 3월11일 인도 케랄라주의 환경단체인 타날(Thanal) 사무실에서 공중보건 전문가인 조이 엘라몬 박사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경민 기자

공중보건 전문가이자 케랄라주 지방행정연구소 소장인 조이 엘라몬 박사는 “쓰레기는 사회·경제·문화가 얽혀있는 일상의 정치 문제”라며 “이제는 누군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뉴스에 나오는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오경민 기자 5km@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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