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일통을 꿈꾸는 항공사들 [원요환의 중동 이착륙 브리핑]

서경IN 2026. 5.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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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요환 UAE 항공사(에어 아라비아) 파일럿
중동 스카이 삼국지 (1)
중동 걸프 국가 항공사들의 경쟁 관계를 묘사한 AI 이미지.

지난해 10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신생 항공사 ‘리야드 에어(Riyadh Air)’가 런던 히드로행 첫 비행을 띄웠다.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이 직접 런칭한 것으로 유명한 이 항공사는 오는 2030년까지 100개 도시 취항이라는 야망을 내세웠다.

중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현직 파일럿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이륙은 지난 20년간 두바이의 에미레이트(Emirates)와 도하의 카타르 항공(Qatar Airways)이 양분해 온 중동 항공 시장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삼국지로 치면 위와 오가 양분한 천하에 촉이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에미레이트 항공기. 홈페이지

◾️에미레이트 - 사막 위에 세운 항공 제국

중동 하늘의 중원을 가장 먼저 차지한 건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이다. 1985년 두 대의 비행기로 시작한 이 항공사는 40년 만에 세계 최대 국제선 항공사가 됐다. 보유한 250여 대 중 세계 최대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이 무려 116대다. A380은 이코노미 승객으로만 채우면 800명도 넘게 들어가는 항공기다.

에미레이트의 결정적 순간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유럽과 호주를 잇는 환승 시장은 영국항공의 안방이었다. 하지만 에미레이트는 두바이 허브를 무기로 이 시장을 단숨에 가져왔다. 마치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고 중원의 패자가 된 것과 같은 장면이다. 영국항공은 자본과 명성은 앞섰지만 효율과 속도에서 밀렸다.

이란 전쟁의 여파에도 에미레이트는 압도적이다. 두바이 국제공항은 130여 개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환승하는 사실상의 세계 수도다. 2024년 한 해에만 국제선 승객 9,230만 명이 거쳐갔다. 2위 런던 히드로(7,920만 명), 3위 인천공항(7,070만 명)을 따돌리는 압도적 수치다.

카타르 항공기. 홈페이지

◾️ 카타르 항공 - 작은 땅이 만든 천하의 품격

천하의 또 다른 한 축은 도하의 카타르 항공이다. 국토가 경기도 면적에 불과한 카타르가 어떻게 세계 1위를 다투는 항공사를 만들었을까. 답은 프리미엄 서비스에 올인하는 품격이었다.

비즈니스 클래스 ‘Qsuite’는 업계 표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미슐랭 셰프와 협업한 기내식, 압도적인 알 무르잔 라운지, 해마다 선정되는 스카이트랙스 세계 최고 항공사상. 영토와 자원의 한계를 품질로 메웠다. 여기에 천연가스라는 든든한 후원이 있다. 카타르는 세계 2~3위 LNG 수출국이다. 이 풍부한 자원이 카타르 항공의 뒷배가 된다. 강동의 풍부한 물자로 군사를 키운 손권과 같다.

카타르 항공의 결정적 시험대는 2017년 사우디·UAE·바레인·이집트 4국이 카타르와 단교하고 영공을 봉쇄한 사건이었다. 카타르 항공으로서는 설립 이후 최대 위기였지만 결국 무너지지 않았다. 이란, 터키, 오만 영공으로 우회 항로를 개척하며 살아남았다.

지난 2023년까지 총 25년간 카타르 항공을 이끌어온 알 바커(Akbar Al Baker) 전 CEO는 오나라의 기틀을 잡은 제갈근과 같은 존재였다. 항공동맹인 원월드(Oneworld) 가입, 영국항공과 홍콩 캐세이퍼시픽과의 전략적 제휴. 동맹으로 살아남는 길을 닦은 노련한 책사로 평가받는다.

리야드 에어 항공기. 홈페이지

◾️ 리야드 에어 - 출사표, 그리고 삼고초려

이런 천하양분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이 리야드 에어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100% 출자한 신생 항공사이지만 론칭하자마자 보잉 787 드림라이너를 수십 대 확정 발주하는 등 후발주자임에도 단번에 세계 톱 클래스 수준의 군비를 갖췄다.

흥미로운 건 사령탑이다. 사우디는 라이벌 에미레이트의 동생 격인 아부다비 에티하드 항공을 이끌던 토니 더글러스(Tony Douglas)를 리야드 에어 CEO로 영입했다. 적국의 책사를 데려온 삼고초려다. 더글러스는 에티하드를 흑자 전환시킨 인물이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마치 천하삼분지계를 실행하는 제갈량처럼 기존의 에미레이트와 카타르 항공의 중동 하늘 양강 체제를 ‘빅3’ 체제로 바꿔버렸다.

현재 리야드 에어의 명분은 매우 무겁다. 사우디 ‘비전 2030’의 선봉장이란 국가 대의가 그것이다.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글로벌 허브로 거듭난다는 빈 살만의 청사진을 위해서는 항공 산업이 부흥해야만 하고, 그 최전선에 있는 것이 리야드 에어다. 한실 부흥이란 무거운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 유비인 셈이다.

◾️ 한국에 미치는 영향

이 패권 전쟁은 한국과 무관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환승 시장이다. 한국에서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가는 여행객 상당수는 중동 3대 항공사 중 하나를 거친다. 인천에서 두바이, 도하, 그리고 곧 리야드로. 이들이 한국 노선에 어떤 기재를 투입하고 어떤 가격을 매기느냐가 한국인의 해외여행 비용을 직접 결정한다. 리야드 에어의 등장은 그 자체로 경쟁을 유발한다. 결국 한국 소비자에게 이득이다.

더 큰 그림은 한국 항공 산업의 위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통합 이후 한국은 동북아 허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중동은 이미 세계 허브를 셋이나 만들고 있다. 두바이, 도하, 리야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셋이서 동시에 진행하는 셈이다. 이건 단순한 항공사 경쟁이 아니라 도시 경쟁이고, 결국 국가 전략의 문제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채용이다. 현재 리야드 에어는 시장을 활발히 열고 파격적인 대우로 채용을 진행 중이다. 능력 있는 파일럿이 빠져나가게 된 다른 항공사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더 좋은 대우와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외항사 승무원이나 파일럿을 꿈꾸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두바이와 도하 외에 새로운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2030년이 되면 누가 하늘을 가질 것인가. 실제 삼국지에서는 위나라를 기반으로 한 사마씨가 천하를 통일했다. 중동 하늘도 그렇게 될지, 아니면 손권의 오나 유비의 촉에게도 기회가 올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하나다. 위와 오의 양강 시대는 이미 끝났고, 천하삼분지계는 막 시작됐다는 것이다.

원요환의 중동 이착륙 브리핑

He is...

한국에서 기자로서 산업과 경제를 취재하다가 2017년 두바이로 이주해 현재 에어아라비아 항공의 파일럿으로 근무하고 있다. UAE·사우디·카타르 등 걸프 부국의 산업·정세·문화 환경을 분석해 한국에 전하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중동』, 『있는 그대로 아랍에미리트』 등의 책을 썼다.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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