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암스트롱은 그 누구도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했다
최고의 재즈 트럼페터이자 보컬리스트
루이스 암스트롱을 더 좋아하세요
때는 바야흐로 약 2년 전, 석사 졸업 후 뉴욕생활을 마무리 짓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직전. 나는 ‘뉴욕에서 꼭 보고 가야 할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 스스로 물었다. 며칠 간의 고심 끝에, 안 보고 돌아간다면 후회할 것 같은 장소 한 곳을 낙점했다. 그곳은 바로 ‘루이 암스트롱 하우스 뮤지엄(Louis Armstrong House Museum)’이었다.
뉴욕시 퀸즈구 코로나동에 위치한 본 건물은 루이가 평생 호텔을 전전하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집을 구매해 정착했던 건물이자, 1971년에 침대에 누워 조용히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 건물이다. 1983년 같이 살던 아내 루실 암스트롱까지 작고한 후 해당 건물은 뉴욕시에 기증되었고, 보수를 거쳐 2003년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루이스(혹은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면 흔히 떠올리는 장면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목을 긁어가며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의 모습일 것이다. 스윙과 비밥 등 소위 ‘모던 재즈’(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물론 많겠지만)를 좋아해서 뉴욕으로 떠났던 내가 왜 왕년의 팝스타를 기리는 박물관을 유학생활의 마지막 방문처로 정했을까?
물론 그가 비틀즈를 차트에서 밀어냈던 경력이 있는 무소불위의 팝스타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그저 흘러간 팝 싱어가 아니다. 재즈라는 음악의 사운드를 일궈낸 가장 중요한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이며, 지금도 많은 재즈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거인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탄성을 자아내고, 또 때로는 너무나 감동적인 루이스 암스트롱의 음악을 더 찾아 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루이 vs. 루이스
루이 암스트롱인가, 루이스 암스트롱인가? 한국에서는 당연하게도 ‘루이’ 암스트롱으로 모두 알고 있지만, 그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는 미국에서 꽤 오랫동안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Hello, Dolly!” 녹음에서 본인을 ‘루이스’라 부르는 가사가 담겨있는 점, 그러나 생전 주변의 인물들이 그를 ‘루이’라 부르는 인터뷰가 여럿 있다는 점 등이 논란(?)이다.
시시하게도 작금의 결론은 ‘둘 다 맞다’ 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를 지칭할 때 ‘루이스’라는 발음을 선호했다는 여러 정황이 포착된 바,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를 위시로 한 뉴욕 대부분의 정통주의 재즈 음악가들은 현재 그를 ‘루이스’라 부르고 있다. 나 또한 이른바 정통주의 재즈 뮤지션이기 때문에 아래로는 ‘루이스’란 발음으로 표기하기로 하겠다.

트럼페터들의 트럼페터
루이스 암스트롱은 사실 보컬리스트이기 이전에 트럼펫(혹은 초창기에는 코넷) 연주자로서 유명세를 떨쳤다. 빅밴드를 뚫고 나오는 그의 트럼펫 볼륨은 1920년대 그가 뉴욕에 처음 입성했을 때의 일화로 유명하다. 뉴욕으로 건너와 플레쳐 헨더슨(Fletcher Henderson) 오케스트라에 합류해 녹음을 하게 되었던 어느 날, 그의 트럼펫 볼륨이 엄청난 탓에, 빅밴드의 다른 관악기들과 볼륨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루이스 혼자서만 멀찍이 복도에서 연주했다는 일화다.
그렇지만 단순히 큰 볼륨으로만 승부를 봤던 연주자는 아니고, 고음이나 화려한 테크닉 하나 없이도 아름다운 발라드를 어떻게 연주할 수 있는지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녹음들도 있다. 트럼페터 윈튼 마살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루이스의 연주로 꼽은 “Azalea(진달래)”를 들어보라. 듀크 엘링턴과 함께했던 이 녹음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가장 불기 쉬운 높이의 음들만을 연주하는데, 일류 트럼페터인 윈튼 마살리스 또한 그 뉘앙스를 따라하는 것이 매우매우 어렵게 느껴진다고 얘기했다.
거기에 더해 즉흥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천재성과 빠른 프레이즈(악구)를 연주해내는 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트럼페터 존 패디스(Jon Faddis)가 루이스에 대해 얘기할 때면 항상 빼놓지 않는, 1928년 녹음 “West End Blues”의 전설적인 인트로 카덴자를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유려하면서도 힘과 기개가 느껴지는 이 카덴자는 거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대 재즈 트럼페터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보컬리스트들의 보컬리스트
위에서 언급했던 “West End Blues” 녹음에는 또한 ‘재즈 싱잉’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른바 ‘스캣 싱잉’이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이 녹음을 통해 처음으로 스캣 싱잉이란 것을 접했다고 한다. 이처럼 루이스 암스트롱은 트럼페터로서뿐만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상당한 영감을 주어 왔는데, 스캣 싱잉을 재즈 보컬들이 꼭 연마해야할 과업으로 격상시킨 사람이 바로 루이스 암스트롱이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1926년 어느 녹음 스튜디오, “Heebie Jeebies”라는 곡을 녹음하던 순간이었는데, 녹음 도중 루이스는 악보를 떨어뜨렸고, 가사를 알지 못했던 그는 즉흥적인 음절들을 읊조리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 녹음이 발매되고 또 히트하며 재즈의 ‘대-스캣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녹음 이전에도 뉴올리언스에서는 의미없는 음절들로 노래를 부르는 연주자들이 여럿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녹음 때문에 그가 사실상의 스캣 싱잉 선구자로 여겨진다.
물론 그의 특출남은 스캣 싱잉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곡의 본래 멜로디와 리듬을 극한으로 변형시켜 부르는 방식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와 같이 곡의 멜로디, 리듬, 가사 등을 악보에 맞게 정확하게 부르려고 하는 보컬리스트도 있었던 반면, 루이스는 거의 모든 가사를 한두 음으로 부르는 듯 (그러나 너무도 아름답게) 노래했다. 이런 그의 자유로운 해석방식은 아메리칸 송북 녹음들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데, 후대의 보컬리스트들이 송북 레퍼토리를 이른바 ‘재즈스럽게’ 노래하는 데에는 그의 공이 크다.

즐거움의 전도사
재즈 뮤지션으로서 루이스 암스트롱을 비판하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가 연주할 때에 진지하지 못하고 자꾸 웃긴 표정을 짓고 농담을 하는 모습이 ‘광대짓’ 같다며 재즈음악과 연주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격하시킨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의 음악 스타일(장르)가 너무 촌스럽고 재즈음악의 진취적 기상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특히 미국 흑인 민권운동 시대와 맞물려 그를 ‘엉클톰(Uncle Tom: 백인에게 순종적인 흑인)’이라 생각하는 당대 흑인 뮤지션들도 많았다. 비밥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반대급부로 루이스도 초창기에는 너무 테크닉에 치중한 음악이라며 비밥음악과 디지를 평가절하하는 모습도 보였다.) 루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광대짓’에 대한 생각을 꺼내 놓았는데, 다음과 같다.
“엔터테이너로서 다수의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행위를, 소수의 사람들이 폄하한다고 해서 그만둘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광대짓’이라 함은, 무대에 올라 제대로 연주도 못 하는 것이 진짜 광대짓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뮤지션들도 한 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아무튼 디지 길레스피도 결국에는 재즈음악의 역사에서 그의 중요성을 재고하고 그의 뮤지션쉽에 뒤늦게 감동했고, 이후 오히려 루이스의 무대매너와 싱잉 스타일을 계승하는 연주자가 되었다. 차후 둘은 화해하며 같이 연주도 남겼는데, 바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두 뮤지션의 협연 영상 “Umbrella Man” 이다. 디지의 제자 존 패디스에 따르면 디지는 루이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내가 깨달은 건, 루이스 암스트롱은 그 누구도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했다는 거야.”
(“What I feel to realize is that Louis Armstrong refused to let anyone take away the joy of life from him.”)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루이스 암스트롱이라는 뮤지션이 표방하는 것이고 그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후자의 비판에 대한 변명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루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슨 스타일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그냥 좋은 음악을 연주하고 맞는 음표를 연주하는 것 뿐이다.”
바로 그거다.
루이스 암스트롱을 더 좋아하세요
자, 어떤가. 루이스 암스트롱에 대한 관심이 끓어오르지 않는가? 당신을 아름다운 재즈음악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나의 전략이 먹혀 들어가고 있길 바란다. 우선은 1956-57년도에 녹음하고 각 곡마다 루이스가 직접 곡 설명을 녹음해 덧붙인 자전적인 앨범 [Satchmo: A Musical Autobiography]의 일청을 권한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레퍼토리였던 곡들을 (비교적) 최신의 기술로 재녹음하며, 관록이 무르익은 중년의 암스트롱 연주와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언급했듯 1920년대 뉴올리언스시절부터 자신의 음악적 여정과 각 곡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내 주는 것이 화룡점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록곡 중 피아니스트 유비 블레이크(Eubie Blake)가 작곡한 아름다운 곡 “Memories of You” 녹음(1956년 12월 녹음)을 너무도 좋아한다.
이 글에서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앨범들, 예를 들어 많은 음악 팬들이 최고의 앨범으로 꼽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와의 협연반 [Ella & Louis] 시리즈 등이 많이 있고, 또한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그의 영향을 받은 바, 이 글이 루이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글이 되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루이스의 음악적 비전은 뉴욕의 경우 트럼페터 존-에릭 켈소(Jon-Erik Kellso), 브리아 스콘버그(Bria Skonberg)와 같은 연주자들을 통해 살아숨쉬고 있다. 뉴욕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초반 언급한 퀸즈에 위치한 생가 박물관과 더불어 이러한 뮤지션들의 연주를 찾아가 보는 것 또한 권한다. 한국의 경우, 나의 절친한 친구인 트럼페터 류제훈이 루이스를 비롯해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등 트래디셔널 재즈 트럼펫의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연주 역시 찾아가 감상해 보는 것을 추천해 마다 않는다.
1971년 작고한 루이스 암스트롱의 생전 녹화된 마지막 공연은 1970년 뉴포트(New Port) 재즈페스티벌에서의 실황이다. 해당 공연에서 그가 노래한 “When It’s Sleepy Time Down South” 영상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평생 ‘삶의 즐거움’을 노래했던 루이스 암스트롱. 연주 마지막에 그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하는 ‘Good evening, everybody!’는 너무도 감동적이다.
조유윤 재즈 기타리스트
- 피아니스트 선율, 마포문화재단 상주음악가로 첫 공연
- 오페라를 사랑한 스웨덴의 왕, 오페라가 되어 잠들다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첫 힙합…래퍼 창모, 클래식 성역 부쉈다
- 홍석원의 확신, 문태국의 절제…어둠에서 빛으로 물든 밤
- 비오티의 가단조, 연습곡으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워!
- ‘1분클래식’과 ‘탱로그’… 클래식 음악 유튜버 공연 연다
- "교회 피아노 반주로 버텼는데… 이제는 프랑스에서 예술 축제 열어요"
- 터널 앞에서 멈춰 선 날, 나는 책임의 무게를 배웠다
- 클라라 주미 강·김선욱 듀오… 12일간 단 하루 쉬는 '열정의 투어'
- 하이브, 걸그룹 전문 레이블 'ABD'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