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대 영창 버텼는데”...도청 지킨 기동타격대원 무너진 자부심
체포돼 상무대서 곡괭이 자루·물고문·군홧발 구타
내란재판 등 서류 있지만 상해 등급 재심 등 기각
기각 통보받은 후 곧바로 이의 신청… 결과 내년께

“상무대 영창에서부터 지금까지 46년 동안 혼이 나간 채로 살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최후 항전에 참여했던 기동타격대원 박영수(64)씨는 지금도 당시 고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란죄로 실형까지 살았지만 박씨는 신체 장해 정도에 따라 판정하는 5·18 부상자 등급(1~14급)은 인정받지 못한 채 ‘기타상이 1급’에 머물러 있다. 2023년 진행된 8차 보상 재심을 신청했지만 지난 4월 받은 결과는 ‘기각’이었다.
11일 5·18 기동타격대동지회에 따르면 박씨는 1980년 5월 당시 18세였다. 계엄군의 무차별 폭행과 시민들의 시신을 목격한 뒤 시민군에 합류했고, 5월26일 오후 옛 전남도청 사수와 광주시민 보호를 위해 조직된 기동타격대 2조에 편성됐다.
박씨는 26일 자정을 넘긴 27일 새벽 1시께 공용터미널(현 롯데백화점 광주점) 일대를 순찰하던 중 극심한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인근 여인숙에 들어가 잠시 몸을 눕혔다. 주인이 차려준 밥을 먹고 있던 순간 계엄군 차량이 여인숙 주변을 포위했고, 입구를 향한 집중 사격이 시작됐다고 한다. 박씨는 화장실로 몸을 피했지만 계엄군은 화장실 쪽으로도 총격을 퍼부었고 결국 붙잡힌 그는 도청으로 끌려간 뒤 조원들과 함께 상무대 영창으로 이송됐다.
이후 광주교도소에 수감되기까지 수개월 동안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박씨가 1993년 3차 광주민주화운동 보상 심사 당시 제출한 진술서에는 당시 상황이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 곤봉과 군홧발로 머리와 온몸을 짓밟혔고 상무대에서는 매일같이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다고 진술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사람을 죽였느냐”, “총을 쐈느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답하면 곡괭이 자루와 곤봉으로 허리와 척추 등을 집중 폭행했다고 한다. 얼굴에 천을 덮은 채 물을 붓는 물고문과 천장에 매달아 놓고 구타하는 가혹행위도 이어졌다.
계엄사령부 재판부는 박씨를 비롯한 기동타격대원들에게 내란실행, 내란부화수행,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박씨는 내란부화수행 혐의로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가 1980년 11월7일 집행면제로 풀려났다.
그러나 출소 이후 삶도 정상 궤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박씨는 “수사관들이 ‘상무대 영창과 교도소 이야기를 하면 간첩죄로 처벌된다’고 협박했다”며 “겁이 나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몸은 망가졌는데 병원에 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친구들과 동네 주민들이 거동조차 어려운 박씨를 위해 약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 탓에 제대로 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박씨는 도망치듯 광주를 떠났다. 이후 30년간 전국을 떠돌며 건설현장 타일공과 목수 조수 일을 전전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극심한 불면과 대인기피증 때문이었다.
박씨는 “출소 후부터 몸이 계속 망가졌고 지금도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며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 도망 다니듯 살았다. 아내를 만나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삶조차 꿈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2023년 시행령 개정으로 기타상이 1·2급도 재분류 신청이 가능해지자 다시 보상 재심을 신청했다. 상무대 영창 구금 기록과 군사재판 판결문, 고문 피해 진술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4월22일 돌아온 결과는 기존 등급 유지에 따른 ‘기각’ 통보였다.
박씨는 “나는 5·18 명예에 누가 될까 봐 돈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숨어 살았다. 그런데 46년 동안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살아온 시간까지 없었던 일처럼 느껴져 너무 억울하다”며 “기동타격대라는 이유로 더 심한 고문을 당하고 국가폭력 희생양이 돼 실형까지 살았는데도 행정은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소명 기회도 부족했고 왜 기각됐는지도 명확히 설명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기남 5·18 기동타격대동지회장은 “박씨는 도청을 지키다 붙잡혀 상무대 영창에서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으로 실형까지 산 사람”이라며 “그런데 조사 한 번 제대로 없이 신체검사 결과가 기존 등급과 같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광주를 지켰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심사는 시행령이 정한 기준으로 등급을 정하기 때문에 등급에 이의가 있으면 재심의를 요청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지정 병원 신체검사 결과를 토대로 장해등급판정위원회가 5·18 관련성, 진술 일관성, 진료 기록 등을 종합 검토해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최종 판단한다. 기존 등급과 동일하게 판정될 경우 결과는 기각으로 통보된다. 신체장해 등급은 법에서 정한 노동력 상실률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며 “위원회 논의 과정이나 개인별 세부 기각 사유는 비공개 심의 원칙상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박씨는 기각 통보를 받자마자 이의를 신청했으며 내년 중 기각에 대한 재심의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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