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6·25전쟁, 민간인 학살, 민주화운동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듣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시절에 안 태어나길 참 다행이다.” 나는 최익현 선생이나 민영환 의사의 의로운 선택만큼이나, 신돌석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에서 더 직접적인 감정의 진동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내 삶 역시 얼마나 고단했을까 자주 상상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경남의 혼례식(1938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일제 강점기 경남의 혼례식(1938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경남의 장례식(1960년대),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경남의 장례식(1960년대),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남긴 지도자나 열사가 아닌,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뎌낸 다수의 사람들 말이다. 오늘은 그런 이들의 삶을 담은 두 권의 구술 자료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두 책 속 인물들은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그런 의미의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동일한 질량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부르고 싶다.
첫 번째 책은 6·25전쟁 전후 보도연맹 희생자 가족의 증언을 담은, 창원유족회 증언자료집 ‘그질로 가가 안온다 아이요(박영주 기록/2015년)’다. 제목부터 경상도 사람들이라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거기 가입하면 군에도 안 가고 좋단다, 내 가입할란다, 그래 그 가입을 했어. 그래 어느 날인가, 내 저녁 때 일찍이 와서 소 찾으러 가꾸마, 이러대. 그런데 소 찾으러 오지도 안하고…, 그 질로 가가 안온다 아이오….”
우량아 심사(1973년, 창원 대산면, 양해광기증기록물).
우량아 심사(1973년, 창원 대산면, 양해광기증기록물).
학교가는길(북면 외감리/1967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학교가는길(북면 외감리/1967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소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의 부재를, 경상도 사투리 한 문장이 대신 증언한다. 책 속 기록은 공적인 문장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의 결을 생생한 지역어를 통해 전하고 있다.
책에는 이 밖에도 창원지역 민간인 희생자 가족들의 구술이 여럿 실려 있다.
“야이 시아시 놈들아, 내 소자 데리고 온나”라고 절규하던 희생자의 할머니, “꿈에라도 봤으면 싶은데 꿈에도 안 나타나예”라고 말하는 희생자의 딸 이야기까지, 기록의 형식은 책이지만 실제로는 경남 사람들이 입으로 이어오던 비극의 기억을 받아 적은 것에 가깝다.
두 번째 책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보도연맹 학살, 그리고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살아온 1929년생 김두리 할머니의 생애를 담은 구술 자료집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최규하 기록/2021년)’다.
이 제목은 할머니가 절망의 순간마다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되뇌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세 살이던 첫째 딸을 굶주림으로 잃고, 시동생은 인민군에 끌려갔다는 이유로 경찰에 학살당했으며, 남편은 좌익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견뎌야 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몇 번이나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렇게도 끝내지 못한 뒤에는 “사다 보면 언젠가 끝이 있겠다”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되뇌며 버텨낸 시간들이 이 책에 촘촘히 기록돼 있다.
우영우팽나무 아래 겨울놀이(2003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우영우팽나무 아래 겨울놀이(2003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창원대산국민학교운동회(1979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창원대산국민학교운동회(1979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장미가 피고, 가정의 달이라는 말만으로도 ‘행복’이 먼저 떠오르는 5월, 이 두 책이 유독 생각나는 이유가 있다. 경남기록원이 소장한 ‘경남 사람’에 관한 공공기록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이런 슬픔과 고통, 그리고 기억해야 할 사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격대장, 임업·농업후계자 명단처럼 행정 행위를 증명하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관계 자료(1994년경 작성) △징집자 연명부(1962년) △일제 피해인부 사역 관련 기록(2007년) △민주화 보상 신청서(2005년) △강제동원 피해조사 인부 사역 근무일지(2005년) △병적부(1927년) △전사자 명부 및 유골 명부(1974년) △이산가족 찾기 명부(1983년) △입양대상자 가정 명부(1980년) 같은 목록을 떠올려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이 기록들은 시대의 폭력과 모순을 온몸으로 견뎌낸 누군가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대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아픔을 겪어낸 사람들의 이름이, 숫자와 표로 정리된 기록 안에 들어 있다.
마산 한일합섬 추석귀경(1991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마산 한일합섬 추석귀경(1991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고무줄 놀이(창원 대산면/1978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고무줄 놀이(창원 대산면/1978년, 양해광기증기록물).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은 분명 인간의 권리이자 자유다. 다만 누군가의 아픔을 기억하고 곁에 서 주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면 자연스레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원에 소장한 기록들을 넘기며, 그 답을 찾을 만한 단서를 더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숫자가 아니라 생애로 기억되어야 한다…(중략) 할머니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 말은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의 저자(최규하)가 책 머리말에서 한 말이다. 이 한 문장은, 공공기록이 가지고 있는 핵심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명부’, ‘신청’ 같은 단어에서도 드러나듯 공공기록에는 정확성과 신뢰성이 필수이고, 이는 대부분 계량화된 숫자와 목록으로 표현된다.
마산MBC노조(1996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마산MBC노조(1996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그렇다면 기록원에 소장된 민간 기록물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수해 같은 재난에 관한 기록도 있지만, 일터의 현장, 학교와 놀이터의 풍경, 마을 아이들의 웃음, 경남의 관혼상제, 경남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같은 축제, 타민족을 끌어안기 위해 애쓴 경남인의 모습까지, 숫자를 넘은 서사가 담긴 기록이 여럿 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 변화를 온전히 드러내는 기록이다.
서태지 콘서트(마산운동장)(1992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서태지 콘서트(마산운동장)(1992년), 양해광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경남기록원에 보존된 공공기록물은 권리와 의무를 증명해야 하는 이들의 객관화된 기록이며, 권리 구제와 피해 회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자료들이다. 하지만 보도연맹 희생자의 가족 그리고 김두리 할머니가 매일을 슬픔 속에서만 살지 않았던 것처럼, 기록원의 기록에는 경남인들의 위로와 기쁨, 그리고 즐거움의 순간도 함께 있다.
전몰군경유가족대장(양산시, 1950년)./경남기록원/
전몰군경유가족대장(양산시, 1950년)./경남기록원/
5월은 아이도, 어버이도, 스승도, 제자도, 부부도 기쁜 날이다. 동시에 아이도 어버이도 아닌 이들, 한때는 그랬으나 지금은 그리워만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자비의 신을 떠올리며 위로를 구할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슬퍼할 이를 기억하고 위로하며, 기뻐할 이와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기록이 전해주는 수많은 경남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5월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