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조 ‘치매머니’ 시대 개막…진단 ‘정확도’와 ‘병목’이 정책 안착 가른다

임태균 기자 2026. 5. 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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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조 치매머니 시대①]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 시행…154조 자산 공공신탁 영역으로 진입
임상 진단 정확도 70~87%, 인프라 병목 4중 구조…진단환경·정확도·적시성 변수

154조 치매머니 시대] 치매 환자 자산 154조 원이 처음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신탁 영역에 진입했다. 4월 22일 시행된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의 첫 걸음이다. 그러나 신탁 진입의 첫 관문은 의료기관 진단실에 놓여 있다. 본 기획은 치매머니 시대의 진단 단계 병목과 정밀 진단 인프라 과제를 두 편에 걸쳐 짚어본다.

자본시장에서 이른바 '치매머니'로 불리는 인지장애 노인 자산 154조 원이 공공신탁 영역으로 진입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21일 발표한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 운영 방침에 따르면, 신탁 위탁 신청 자격은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로 한정된다. 의료기관의 진단서 발급이 신탁 절차의 출발점이 되는 구조다.

지난달 22일 시행된 이 제도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함께 운영한다.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의 현금성 자산을 최대 10억 원까지 공공신탁으로 위탁받는다. 이 자산 규모는 현재 154조 원에서 2050년 488조 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부 추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서 조기 진단체계 개편을 핵심 정책 과제로 명시했고, 의료계와 자본시장 역시 진단의 정확도와 적시성을 이 자산이 사회 보호망에 진입하는 속도를 가르는 변수로 본다.
치매머니 현황 및 추이.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브리프

154조→488조…'자본시장의 새 화두'가 된 인지장애 자산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100만 명이며, 향후 10~15년 내 2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154조 원으로 추정되며, 2050년에는 488조 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보건복지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담겼다.

정책의 의미는 명확하다. 그동안 사기와 갈취, 가족 간 분쟁에 노출돼 있던 인지장애 노인의 자산이 처음으로 공공의 보호망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다만 정책이 자본시장에 새 출구를 열었다고 해도, 그 출구의 폭은 의료 현장의 진단 처리 능력에 좌우되는 구조라는 점이 임상 현장에서 일관되게 지적되고 있다.

신탁 진입의 첫 관문은 '진단'…정확도와 적시성이 신탁 결정 변수

신탁 계약 체결 단계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절차가 진단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위탁자 본인이 직접 신탁 계약을 맺으려면 본인의 판단 능력이 의학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둘째, 본인의 판단 능력이 이미 저하된 경우 가족이 법원에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해 후견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이 절차에도 의학적 의사결정 능력 평가가 동반된다. 어느 경로로 진입하든 신탁 계약의 의학적 근거 자료는 진단서다.

한국의 치매 진단은 통상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치매안심센터에서 간이정신상태검사(MMSE-DS)로 인지 저하 여부를 선별하는 과정이다. 2단계에서는 협력 의료기관에서 신경심리검사(CERAD-K, SNSB 등)를 통해 치매 여부와 중증도를 확정한다. 3단계는 협약 병원에서 혈액 검사와 뇌영상(MRI, CT) 등으로 원인 질환을 감별하는 단계다.

진단이 늦어지면 신탁 진입 자체가 지연된다. 보건복지부가 이번 시범사업을 도입하면서 내세운 정책 명분은 판단 능력이 저하된 치매 환자가 사기와 갈취, 경제적 학대, 가족 간 분쟁에 노출돼 재산을 잃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었다. 진단 지연은 환자가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의미다. 즉, 적시 진단이 보호망 진입 속도, 곧 위험 노출 종료 시기를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진단 병목의 4중 구조: 외래 대기, 영상 검사, 중증도 분류, 진단 정보 비연동

OECD가 2026년 1월 발표한 'OECD 국가들의 치매 대응 정책(Health Working Paper No. 190)' 보고서는 회원국 공통의 '진단 병목(diagnosis bottleneck)'을 공식 지적했다. 한국 진단 현장의 병목 또한 4중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진단 지연은 의료 현장의 구조적 병목에서 시작된다.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은 중증 환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도록 강제한다. 치매는 상대적으로 경증으로 분류돼 빅5와 같은 대형 병원이 진료 규모를 무한정 확대하기 어렵다. 의료계에 따르면 신경과 외래 예약은 수개월 단위로 밀려 있다. 신경심리검사와 자기공명영상(MRI), PET-CT(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 등 영상 검사 일정이 추가되면 진단 확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의료기관 간 진단 정보 비연동도 병목 요인으로 지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월 24일 '요양급여내역 확인시스템'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공식 인정한 부분이다. 환자가 의료기관을 옮길 때 의료진이 타 기관 검사 결과나 처방 내역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워 비슷한 검사가 반복되는 사례가 누적돼 왔다는 것이 심평원의 진단이다. 치매 진단처럼 PET-CT와 신경심리평가 등 다층 검사가 동반되는 구간에서는 이러한 비연동이 진단 연속성 단절로 이어진다. 결국 외래 대기, 영상 검사 적체, 중증도 분류, 진단 정보 비연동이 한꺼번에 작동하는 것이 한국 진단 병목의 4중 구조라는 평가다.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안내 포스터. 보건복지부

복지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조기 진단체계 개편' 명시

정부 역시 이 병목 구조를 정책 의제로 인지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은 조기 진단체계 개편을 핵심 정책 과제로 명시했다. 치매안심센터 전용 자체 진단 도구 'CIST-In Depth'를 2026~2027년 개발해 2028년부터 적용한다. 1인당 1~2시간이 걸리고 연간 저작권료 2억 원이 들던 기존 의료기관용 도구(CERAD-K, SNSB)의 한계를 보완해, 경도인지장애 변별력과 검사 효율을 동시에 높인다는 구상이다. 

일차 의료(Primary Care)에서 환자를 지속해서 관리할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도 2028년 전국 확대가 예고됐다. 의료기관 간 진단 정보 비연동을 해소할 '요양급여내역 확인시스템'도 12월 24일 법 시행에 맞춰 가동돼, 2027년 정식 개통을 목표로 한다.

표적 치료제 시대 개막…잠재 수요 504만 명, 진단 인프라 본격 개화 구간

다만 정부 대응책이 안착하는 동안에도 진단 수요는 이미 가파른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알츠하이머 표적 치료제는 처방 전후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뇌 침착 여부를 PET-CT로 확인하는 절차가 필수다. 표적 치료제 도입 자체가 PET-CT 수요의 직접 트리거인 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의원실이 심평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표적 치료제 '레켐비' 누적 처방 건수는 2024년 12월 출시 이후 2025년 8월까지 9개월간 1만 3,719건에 달했다. 

환자 1인당 PET-CT 검사가 평균 3회 이상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기간 PET-CT 검사는 약 4만 건 규모로 시행된 셈이다. 국내 PET-CT 진단제는 듀켐바이오가 사실상 전담 공급하고 있다.

잠재 수요는 더 두텁다. 보건복지부 2023년 치매역학조사를 토대로 한 추정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2025년 97만 명에서 2026년 101만 명을 거쳐 2044년 201만 명에 이른다. 경도인지장애 인구는 2025년 298만 명에서 2033년 408만 명, 2040년 504만 명으로 늘어난다. 시범사업 시행이 이 잠재 수요에 정책 트리거로 작용하면 진단 수요는 추가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번 시범사업은 사회 안전망의 영역을 자산 관리까지 확장한 정책 신호로 평가받는다. 다만 진단 병목이 해소되지 않으면 154조 원 규모의 치매머니를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정책 명분이 흔들릴 수 있다. 진단의 정확도와 적시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2050년 488조 원에 이를 치매머니는 정책 보호망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계와 자본시장의 공통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