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무실 끝"…직장인들 마이크에 속삭이는 뜻밖의 이유

황정수 2026. 5. 1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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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일하는 시대…AI 받아쓰기 앱이 바꾼 실리콘밸리 사무실
위스퍼 플로, 클로드코드,코덱스와 결합
두서 없는 말을 업무 문장으로 즉시 정리
사무실, 고급 콜센터처럼 변모
헤드셋·마이크·발판까지 업무 도구로
위스퍼 플로 사용 모습 / 위스퍼 플로


키보드 입력을 줄이고 컴퓨터에 속삭이며 일하는 방식이 실리콘밸리에서 확산하고 있다. 'AI 받아쓰기' 앱이 업무 속도를 높이는 새 도구로 떠오르면서 사무실은 조용한 공간보다 AI와 대화하는 공간에 가까워지고 있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애틀에서 AI 사업을 운영하는 몰리 암크라우트 뮐러는 위스퍼 플로라는 받아쓰기 앱에 빠졌다. 그는 아이를 재운 뒤 남편과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던 일상을 바꿨다. 이제는 조용히 타자를 치는 대신 기능키를 누른 채 낮은 목소리로 컴퓨터에 말한다. 이 습관이 남편에게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부부는 밤에 일을 해야 할 때 종종 따로 앉는다.

위스퍼 플로는 이용자가 말하는 두서없는 생각과 프롬프트를 몇 초 만에 정리된 문장으로 바꿔주는 받아쓰기 앱이다. 이용자들은 이를 클로드 코드, 코덱스 같은 코딩 도구와 함께 쓰고 있다. 말로 떠올린 내용을 곧바로 업무에 쓸 수 있는 텍스트로 바꿔준다는 점에서 효율성은 높다. 그러나 주변 사람에게는 분명히 거슬릴 수 있다.

실리콘밸리 곳곳에서 업무 공간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한 벤처투자자는 요즘 AI 스타트업을 방문하면 고급 콜센터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직원들이 고객이 아니라 AI와 대화한다는 점이 다르다. 신용카드 스타트업 램프의 엔지니어들은 책상에서 게이밍 헤드셋을 쓰고 AI 비서에게 크게 말한다. 인사관리 회사 구스토의 공동창업자 에드워드 김은 직원들에게 받아쓰기 기술을 실험해보라고 권하며, 미래의 사무실은 “영업 현장에 더 가까운” 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공동창업자도 직접 모범을 보이려 한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꽤 잘 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에 항상 말하고 있다고 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타자를 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혼잣말을 하며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는 집에서는 아이언맨이 AI 비서 자비스에게 말하는 토니 스타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무실에서는 조금 어색하다고 말했다.

음성 업무가 늘면서 사무실 예절도 중요해졌다. 이용자들은 목소리를 낮추려 하고, 받아쓰기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헤드폰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옆자리 직원의 중얼거림이 주는 불편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받아쓰기는 새로운 기술은 아니지만, 최근까지는 기본 업무를 처리할 만큼 충분히 잘 작동하지 못했다. 이제 위스퍼 같은 앱은 거의 실시간으로 문장을 고치고 문법과 어조까지 개선한다.

이런 기능은 열성 이용자층을 만들었다. 링크트인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위스퍼를 적극적으로 쓰는 이용자로, 자신을 '보이스필드'라고 표현했다. 일부 열성 사용자는 위스퍼를 발가락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게임용 주변기기인 프로그래머블 발판까지 구입했다. 또 다른 이용자들은 스포츠 중계 진행자나 목회자가 쓰는 구부러지는 형태의 60달러짜리 구즈넥 마이크를 책상에 둔다.

AI 받아쓰기 앱 시장도 커지고 있다. 와이콤비네이터가 지원한 아쿠아 보이스와 윌로를 비롯해 톡태스틱, 타입리스, 슈퍼위스퍼 같은 앱들이 경쟁에 합류했다. 음성 입력이 단순 보조 기능에서 개발과 문서 작업, 프롬프트 작성의 주요 인터페이스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위스퍼가 이 분야에 들어온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2021년 설립된 위스퍼는 원래 뇌 신호를 포착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제어하는 신경 인터페이스 기반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 계획이었다. 이후 회사는 블루투스 이어피스를 만들었다. 위스퍼의 창업자 타나이 코타리는 이를 “순수한 마법”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품 수요가 충분하지 않자 팀을 40명에서 4명으로 줄이고 받아쓰기 도구 개발에 집중했다.

지난해 초 개발자들이 바이브 코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위스퍼 받아쓰기 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위스퍼는 가을에 새 자금을 유치했고,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는 약 7억달러로 평가됐다. 현재 직원은 약 60명이다.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는 셔츠에 부착하는 무선 마이크가 인기다.

코타리 창업자는 "직원들이 사무실을 걸어 다니며 컴퓨터에 말한다"고 설명했다.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서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위스퍼는 고객에게 브랜드 마이크를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AI 받아쓰기 문화가 앱을 넘어 별도 하드웨어와 사무실 장비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변화는 업무 효율만큼이나 새로운 불편을 만든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AI에게 지시를 말하는 공간에서는 소음과 집중도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업무 내용이 주변에 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낮은 목소리, 헤드폰, 개인 마이크는 과도기적 해법이지만, 음성 기반 업무가 보편화될수록 사무실 설계와 업무 예절도 함께 바뀔 가능성이 크다.

코타리 창업자는 "시간이 지나면 이런 모습이 완전히 정상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본다. 그는 블랙베리가 처음 나왔을 때 손에 든 금속 조각을 바라보며 일하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일이 됐다고 말했다. AI 받아쓰기도 지금은 어색하고 시끄럽지만, 키보드를 대체하는 생산성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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