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23명 그대로인데 형량 15년은 4년이 된 판결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이 사건은 2022년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현재까지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됐다.
아리셀 사건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화재 사고는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던 예고된 인재”라고 판단했다. 2025년 9월23일 수원지방법원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그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전례 없는 인명 피해 규모를 고려해, 그간 집행유예나 징역 1~2년에 그치던 중대재해처벌법 판결 관행과 달리 ‘경영 책임자에게도 안전관리 미흡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를 구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이 1심 판결이 뒤집혔다. 4월22일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는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4년, 박중언 본부장에게 징역 7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1심과 비교하면 각각 4분의 1,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항소심 판결 직후 유족은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중국 출신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는 법원 밖에서 “너무 억울해서 말이 안 나온다. 딸이 스물네 살에 대학 졸업하고 한국이 좋다고 왔는데, 팔다리 없이 몸뚱이만 가지고 장례를 치렀다. 죽은 게 이주노동자라서, 우리가 돈이 없고 권력이 없어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냐”라며 울분을 토했다. 1심과 2심 판단은 어째서 엇갈린 걸까?
2심에서 무슨 일이?
사고 당일 아리셀 3동 2층에 적재된 리튬 1차 전지들 사이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금세 건물 곳곳으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한 23명이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이 화재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리튬 1차 전지의 특성, 아리셀이 전지 보관 환경을 엄밀히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 화재 발생 이틀 전에도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으로 보아 1심 재판부는 아리셀 측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여기까지는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비상구 설치와 유지 의무’였다. 사용자 측이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3동 2층에 비상구와 비상 통로를 설치하고 유지할 책임이 있느냐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제17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출입구 외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를 한 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화재 당시 3동 1층에는 리튬으로 배터리 음극을 제조하는 작업장이 있었으므로, 3동 전체는 안전보건규칙이 명시한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해당한다. 다만 이 비상구를 어디에 설치해야 했는지를 두고 1심과 2심 재판부의 해석이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비상구를 ‘건축물 모든 층’에 설치해야 한다고 봤다. 따라서 피고인 측이 아리셀 3동 2층에도 비상구를 설치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다. 화재 당시 아리셀 3동 2층에 비상구는 있었지만, 비상구로 향하는 출입문은 일부 정직원만 통행할 수 있는 보안문이었다. 화재가 발생하자 보안문이 자동 개방됐지만, 평소 그 문을 이용하지 않던 하청노동자들은 보안문의 존재를 몰랐다. 노동자가 실제로 사용할 수 없었으니, 1심 재판부는 피고인 측이 비상구 ‘유지’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봤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건축물 1개 동에 비상구 1개’만 설치하면 된다는 피고인 측 논리를 받아들였다. 건물 1층에 비상구가 하나 있다면, 3동 2층에까지 설치하고 유지할 의무는 없다는 주장이다. 3월27일 아리셀 2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 측은 “건물 내부 (가벽으로) 구획된 방실의 모든 출입문에 대해 비상구 기준을 요구하는 건 불합리하다”라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을 전제로 한 박순관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박중언 본부장의 ‘안전조치의무 위반 치사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대목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박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부과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했다는 부분만 유죄로 판단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2심 재판부가) 법을 국어사전처럼 해석하려 했다”라는 비판이 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현직 판사는 판결을 두고 “현장에 비상구가 필요했는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설치돼야 했을지를 현장검증하거나 산업안전 전문가들의 감정서를 받아야 했다. (단어 해석에 초점을 맞춘 2심 재판부는) 공장의 설계 구조와 근로자 동선이 산업안전에 적합했는지, 사건 자체를 구조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질적 위험을 기준 삼아 안전조치 의무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1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았던 일부 공소사실이 2심에서 무죄로 돌아서면서,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의 형량이 줄어들었다. 덧붙여 2심 형량이 대폭 감형된 데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 사측과 유족의 합의가 반영됐다.
당초 1심 판결까지는 희생자 23명 가운데 18명의 유족이 합의했다. 일찍 합의한 유족들 중에 한국에서 장기간 머무를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 유족이 포함돼 있다. 2심 단계에서 남은 희생자 5명의 유족도 합의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소속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일찍 합의한 열여덟 가족은 합의 조건으로 처벌 불원서를 썼지만, 남아 있던 다섯 가족은 처벌 불원 없이 민사상 합의만 했다”라고 설명했다.
합의 여부를 형량에 얼마나 반영해야 할까? 1심과 2심 재판부의 시각차가 컸다. 1심 재판부는 산업재해 특성상,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봤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막다른 길에 몰린 유족이 합의에 이르게 되어 결국 기업가가 선처받는 선례가 많다. 다른 기업가는 학습효과로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는 기업경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1심 판결문).”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 측이 합의 이후에도 처벌을 탄원한다는 등의 이유로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오히려 피해 회복을 위한 피고인의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결국 피해자 측의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한다(2심 판결문).”
그런데 합의를 형량에 반영한다면, ‘합의 내용’을 법정에서 더 적극 심리해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 소재 법원의 또 다른 판사는, “합의를 중요하게 반영하려면, 피해자가 어떻게 합의했는지, 합의의 실질적 결과가 무엇인지를 충실히 심리해야 한다. 과거 신안 염전 노예 사건에서 합의서가 위조됐는데도 (합의가) 판결에 반영된 전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 양형연구회에서도 합의 내용과 과정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2025년 12월 양형연구회 15차 심포지엄에서 범선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판사는 “기업으로 하여금 중대재해 예방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입법취지를 구현하도록 하려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될 만한 유족과의 합의는 충실한 재발방치 조치 이행과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는 2심 재판부가 합의 내용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3월27일 결심공판에서 유족이 의견을 전하려 하자 재판부는 “또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합의 과정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 차례 거절했다. 2심 선고 일주일 전인 4월16일, 대책위는 희생자들의 사연이 담긴 언론보도를 갈무리해 유족의 친필 편지와 함께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소속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2심 판결 이후) 유족들은 ‘내가 합의해서 이렇게 된 거냐’고 자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유의미한 첫 사례
감형 판결을 두고 항소심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하지만 낮은 형량과 별개로 이번 판결에 법리적으로 주목할 지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성립 요건으로 여겨져온 ‘2단계론’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경영 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 사업장 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 중대재해 발생’이라는 인과관계 입증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중론이었다(대검찰청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 아리셀 사건 1심 재판부 역시 이 구조를 따라 경영 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유죄를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현장 책임자인 박중언 본부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무죄로 판단하고도, 경영 책임자 박순관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 사항 일부(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관련)와 사망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산업안전보건법·노동법 연구자인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양형에 있어서는 유족 반발을 살 수밖에 없으나, 법리적으로는 중요한 판단을 했다. 대검찰청 의견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상 직접 사망의 원인이 되는 책임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만으로 사망 책임을 인정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라고 평가했다. 손익찬 변호사도 4월28일 열린 ‘아리셀 2심 판결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내용을 짚었다. “2심 재판부는 ‘2단계론’을 따르지 않아도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과 산업재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유의미한 첫 사례다.”
법리적 진전은 있었으나 형량은 반토막 낸, 아리셀 2심 판결의 진통이 당분간 지속되리라 예상된다. 4월28일 수원고검은 아리셀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난제였던 산업재해 관련 범죄의 양형 기준을 다시 세우자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5월11일 전체회의를 열어 ‘과실치사상 및 산업안전보건 범죄 양형 기준’ 수정안을 심의하기로 했다. 아리셀 참사가 끝내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취지를 온전히 구현하는 판례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이제 대법원의 판단에 달렸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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