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손민석 2026. 5. 1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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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 이전의 세계> 저자

39년 만의 개헌 시도가 끝내 무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인해 의결정족수를 채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비록 부적절한 처신이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신청에 다소 격하게 반응한 데서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었다. 아무런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령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번 개헌안을 두고 "이재명 독재 연장을 위한 정략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개혁안의 핵심이 바로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이 저지른 12·3 친위쿠데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있었다. 염치가 있다면 "윤어게인"을 외친 그 입으로 "독재" 운운할 수 없었겠지만, 이 나라의 제1야당은 이미 그 정도의 분별력조차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실상 장동혁 대표 자체가 제1야당의 도덕적 파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은 인물 아니겠는가.

국민의힘의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민주당의 개헌 추진과정을 두고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방적'인 건 사실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는 듯하지만, 그런 '느낌'만으로 국정을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 개헌안은 계엄선포 직후 곧바로 국회에 통고하는 것만을 의무로 삼는 현행법과 달리 국회의 승인까지 얻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국회의 통제와 권한을 강화하고자 했다. 행정부의 자의적인 폭력행사를 제한하려 했기에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례인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담으려 했기에 역사성까지 고루 갖췄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선거용'이라 매도하는 듯하지만, 12·3 친위쿠데타 못지 않게 위헌적인 긴급조치를 남발했던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역사성과 시의성 모두를 갖춘 수미일관적인 개헌안이었다.

이 정도의 개헌안을 두고 "독재 연장 시도" 운운하는 것만큼 희극적인, 아니,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이 나라의 제1야당의 지적 수준에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함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국민의힘이 얼마나 시의성, 역사성 등에 무지한지는 부마항쟁 및 5·18 민주화운동 외에도 건국, 새마을운동 등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선거용' 멘트가 또 있을까. 민주화운동을 자신들과는 대립하는 역사적 서사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적이지만 건국, 새마을운동 등이 12·3 친위쿠데타의 재발 방지와 어떤 논리적 연관성을 지닌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의 반대는 아무런 설득력도 지니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아무런 논리적 기반이 없는데도 국민의힘은 끝내 표결에 불참했다. 헌법재판소가 12·3 친위쿠데타를 '불법적'이라 규정했는데도 한국 사회는 그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 규범도 창출해 내지 못했다. 장동혁 대표조차도 실제 이재명 정부가 독재를 하고 있다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지지한 '윤어게인' 세력을 외면하지 못한 결과 한국 사회는 규범 창출에 실패했다. 12·3 친위쿠데타와 같은 어마어마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파를 초월한 합의, 규범 등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 우리는 이 사태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바가 없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일반인은 고사하고 반성적인 사유를 해야 할 지식인들조차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철학자(?)를 자처하는 어떤 대학교수는 5·18을 헌법에 기재하는 게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흰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공동체로서 존립하지 못하는 조건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재명에 반대하기만 하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사회, 국시(國是)가 반공(反共)인, 무언가에 반대하는 게 '옳은' 사회의 앙상하고도 비참한 몰골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반발도 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공동체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제발, 나라 걱정 좀 하자!

<자본 이전의 세계> 저자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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