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상은 끝났다고 했지만...” 14년 만에 터뜨린 양제윤의 눈물

김리원 2026. 5. 1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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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보다 실력에 기회를” 벼랑 끝 동료들 대변한 소신

1부 투어 시드를 잃는 순간, 세상은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끝났다. 실패했다. 이제는 밀려난 선수라고.

골프의 세계는 유난히 냉정하다. 정상에 있을 때는 이름이 기사 제목이 되고, 경기 하나하나가 주목받는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순식간에 꺼진다. 기다려주는 시간은 길지 않다.

세계일보 유튜브 채널 ‘스포츠픽’ 인터뷰 촬영 중인 양제윤.
 
한때 KLPGA 투어를 호령했던 양제윤(34)도 그 현실을 지나왔다.

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 내 스튜디오. 조명이 켜지자 양제윤은 잠시 숨을 골랐다.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침묵 끝에 양제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안에는 지나온 세월의 감정이 꾹 눌러 담겨 있었다.

2012년 ADT캡스 챔피언십 우승 당시 모습. KLPGA
 
양제윤은 2010년대 초반 한국 여자 골프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중 하나였다. 국가대표, 고려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그는 2012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KLPGA 대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여자 골프의 새로운 간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골프는 정직하면서도 잔인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슬럼프와 개인적인 가정사가 겹치며 어느새 순위표 바깥으로 밀려났다. 화려했던 1부 투어의 스포트라이트는 꺼졌고, 무대는 어느새 2부 투어로 바뀌어 있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스폰서가 끊겼고, 중계 카메라도 사라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지원도 하나둘 멈췄다. 연간 3000만원이 넘는 2부 투어 비용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골프채를 놓지 않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었고, 한 끼 식사를 걱정하면서도 연습장을 찾았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양제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비거리는 전성기보다 늘었고, 마음은 더 굳건해졌다. 세상이 끝났다고 말했지만, 양제윤의 골프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인터뷰 도중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
 
“내가 해도 될까”…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카메라 앞에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내가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지금은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아지셨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결국 용기를 냈다.

1부 투어 시드를 잃은 뒤의 시간을 묻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많이 배웠지만, 많이 아프기도 한 시간이었어요. 늘 누군가의 보호 안에 있었는데, 시드를 잃는 순간 그냥 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대신 현실을 많이 배우게 됐어요. 모든 걸 스스로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전성기 시절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KLPGA
 
스물한 살의 대상, 그리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
 
2012년 대상 수상 이후, 갑자기 쏟아진 상금과 후원. 그리고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그때는 제가 다 큰 어른인 줄 알았어요. 근데 돌아보면… 그냥 스물한 살이었던 거죠. 서툴렀던 순간들도 많았고요.”

투어에 입문하던 스무 살, 부모님이 이혼했다. 주변에 챙겨주는 어른도 없었고,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정상에 오른 직후였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후원 제안을 거절했다더라, 성격이 까다롭다더라. 나중에서야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해명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귀를 닫아버렸다.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힘겨운 시간을 버티는 동안, 고마운 분들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해요. 다만 다시 복귀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뒤에 인사드리고 싶어요.”

고마움은 빨리 전해야 닿는다는 기자의 말에 그가 꺼낸 이름이 있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이다.

대전 출신인 양제윤은 유소년 국가대표 시절 유성CC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에게 그 손길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유성CC 소유주이기도 한 강 회장은 오랜 시간 주니어 골퍼들을 묵묵히 지원해온 인물이다.

“직접적인 연이 닿지 않다 보니 한 번도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꼭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실패했다, 끝났다” 투어 낙방 선수에게 세상이 내리는 판정
 
세상의 시선도 달라졌다. 주변에서 은퇴했냐는 말을 간간이 듣는다고 했다. “시드를 잃으면 냉정하게 말해서 ‘실패했다’, ‘이제 끝났다’고 보시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굉장히 안타깝더라고요. 사업도, 인생도 항상 잘 될 수만은 없잖아요.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문제는 시선만이 아니었다. 시드를 잃으면 지원이 통째로 끊긴다. “연습장 가는 것도 비용, 운동하는 것도 비용인데 그게 다 끊기거든요. 살아남으려면 일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선수를 포기 못 해 둘을 병행할 수밖에 없어요.”

2017년 2부 투어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양제윤. KLPGA
“스타 선수들의 3분의 1만이라도” 벼랑 끝 동료들을 향한 소신 발언
 
2부 투어에서 버티는 건 양제윤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환경에 놓인 동료들과 함께 울고 고민하며 시간을 버텼다고 했다.

“서로 의지하면서 버텼어요. 그런데 결국 현실적인 문제를 이기지 못하고 동료들이 하나둘 골프계를 떠나더라고요.”

선수마다 다르게 주어지는 기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성적보다 화제성으로) 인기를 얻은 프로들이 있잖아요. 그런 선수들은 지원을 정말 많이 받아요. 그중 3분의 1만이라도 다시 도전하는 선수들에게 돌아간다면…. 어떤 선수들은 성적이 부진해도 매년 기회를 받는데, 왜 우리는 3~4개월만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바로 지원이 끊기는 걸까요?”

그는 말을 잠시 멈춘 뒤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 주변에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예요. 2부 투어에서 뛰어보니까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다시 올라올 수 있는 선수들이 정말 많거든요.”

공 맞는 감각도 비거리도 전성기 그대로…포기할 수 없는 이유
 
양제윤은 지금도 매년 시드전에 도전하고 있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투어 복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골프는 100%를 쏟아도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 운동이에요. 그런데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노력이 80%, 60%, 40%로 줄어드는 걸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압박감은 시드전 때마다 따라왔다고 했다.

“실수 하나 하면 꼭 10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공을 쳐보면 ‘나 아직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거리도 아직 240~250야드 정도는 꾸준히 나오고, 오히려 샷 감각은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직도 골프가 재밌어요. 이 실력으로 그만두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팬들 이야기를 꺼내던 중 감정이 북받친 순간.
 
오랜 시간 기다려준 팬들 앞에서,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팬들 이야기가 나오자 애써 담담하던 목소리가 끝내 떨리기 시작했다. 시드를 잃은 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네이버 팬카페는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거의 매일 팬카페에 들어간다. 다만 글은 한 번도 남기지 못했다. 혹여나 자신의 존재가 팬들에게 짐이 될까, 그들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는 배려였다.

“혹시 팬분들이 카페를 닫고 싶어도, 제 글 때문에 못 하실까 봐요.”

기다려주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오히려 그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게… 너무 감사하고, 너무 죄송해요.”

결국 양제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몰라서 팬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는데…. 그걸 다 갚아드리고 싶어서 더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끝났다고 말했지만, 양제윤은 아직 클럽을 놓지 않았다.

양제윤
1992년생인 양제윤은 대전체고와 고려대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다. 2006~2007년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 2008년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쳐 2009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2012년 KL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대상을 수상했고, 한국 여자 골프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이후 슬럼프와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까지도 투어 복귀를 목표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리원 기자 rewonv@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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