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이 ‘쿠팡 불매’하기 어려운 이유 [왜냐면]


이현주 | 사회복지사
공공기관과 사회복지시설의 예산 집행은 언제나 규정과 증빙 안에서 움직입니다. 현장에서는 필요한 물품을 제때 구입해야 하고, 가격 비교도 해야 하며, 지도·점검 받을 때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결재를 남겨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은 공공 예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현장에서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의 예산 사용 지침과 지도·점검 방식은 과연 공공성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최근 사회복지시설에서 쿠팡과 같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실무자의 입장에서 보면 쿠팡은 매우 편리합니다. 다양한 물품을 한번에 검색할 수 있고, 대량 구매도 수월하며, 배송이 빠릅니다. 비교 견적을 요구받는 상황에서는 가격을 확인하기 쉽고, 배송비 결제가 어려운 회계 구조에서는 무료 배송이나 묶음 배송이 큰 장점이 됩니다. 사업 일정은 촘촘하고, 행정 절차는 복잡하며, 늘 시간에 쫓기는 실무자에게 “쿠팡을 사용하지 말자”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쿠팡 사용의 문제는 단순히 특정 기업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자의 과로와 죽음, 플랫폼 노동 구조, 불공정 거래 논란, 개인정보 유출, 로비와 규제의 문제, 대형 플랫폼의 시장 잠식 등 여러 사회적 쟁점이 얽혀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은 인권, 노동, 돌봄, 공정성의 가치를 말하는 기관입니다. 그렇다면 공공의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소비가 어떤 시장 구조를 강화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문제는 현장의 윤리적 판단이 실제 구매 과정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공공 예산 지침과 지도·점검은 대체로 ‘가장 싸게 샀는가’, ‘비교 견적을 했는가’, ‘증빙이 명확한가’, ‘절차를 지켰는가’를 중심으로 작동합니다. 물론 필요한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지나치게 좁아지면 실무자는 지역 업체, 중소상공인, 사회적경제 기업, 윤리적 기준을 갖춘 공급처를 검토하기보다 대형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공공의 규정이 공공성의 확장을 돕기보다, 오히려 가장 빠르고 싸고 설명하기 쉬운 구매만을 반복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공공기관의 예산 집행이 윤리적 소비를 말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그 책임을 현장 실무자에게만 물을 수는 없습니다. 부서별, 시도별로 서로 다르게 적용하는 지침, 지나치게 형식적인 비교 견적 요구, 배송비나 소액 구매에 대한 경직된 회계 처리, 지도·점검에서 발생하는 방어적 행정 문화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공공의 돈을 잘 쓰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 제도는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공공 예산의 원칙은 ‘최저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투명성은 중요하지만, 투명성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절차의 정당성은 필요하지만, 절차가 가치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공공구매 안에 노동권, 환경, 지역경제, 사회적경제, 품질, 내구성, 아동과 시민의 안전 같은 기준이 함께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공공의 장바구니가 단순한 구매 목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복지시설은 더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지원하고,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런 기관의 소비가 사회적 책임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실무자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는 방식으로는 부족합니다. 윤리적 구매가 가능하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먼저 예산 지침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고, 지도·점검의 기준도 더 넓은 공공성의 관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현장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빠른 배송이 편리하다는 것도, 최저가가 설명하기 쉽다는 것도, 대형 플랫폼을 이용하면 행정 처리가 간단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편리함이 무엇을 지우고 있는지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지역의 작은 업체가 사라지고, 노동의 고통이 보이지 않게 되고, 공공의 소비가 더 나은 시장을 만드는 힘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을 말입니다.
공공성은 거창한 선언에만 있지 않습니다. 장바구니에 무엇을 담고, 어디에서 결제하고, 어떤 기준으로 예산을 집행하는지에서도 공공성은 드러납니다. 이제 공공기관의 구매 기준은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더 나은 사회적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공공의 예산이 대형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시장과 책임 있는 소비를 만들어가는 데 쓰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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