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핑퐁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검찰개혁, 범죄피해자 목소리는 왜 안 듣나"
<20>개혁 논의에서 배제된 범죄피해자들
황산테러 사건 피해자 박선영씨 인터뷰
일상 되찾고 14년 차 범죄피해자 지원 업무
"스스로 피해사실 입증해야 하는 피해자들"
"검경 결론 기다리다 피해자 지원 막히기도"
"이의신청 절차도 고통... '내가 뭘 잘못했나'"
편집자주
다시 ‘검찰 개혁’의 시간이다. 검찰권 남용을 막아 일그러진 검찰 국가를 바로 세우면서도, 범죄로부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은 무엇일까. 범죄 피해자 약자들을 대변해 온 변호사, 일선 형사부 검사, 현장 경찰, 법률 전문가의 진단과 제언을 종합해 성공적인 검찰 개혁과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시스템 구축의 방향과 조건을 모색했다.

"수사권 조정,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들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나요."
지난달 23일 본보와 만난 박선영씨는 그렇게 물었고, 스스로 "없었다"는 답을 내놨다. 개혁 과정에서 배제된 범죄 피해자들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그의 표정과 자세는 꽤나 단단해보였다.
박씨는 2009년 '황산 테러 사건'의 피해자다. 체납 임금을 달라는 소송에 회사 대표는 직원을 시켜 테러를 자행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다 가까스로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2013년부터 정부의 범죄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처럼 정치권은 검찰 개혁의 명분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을 거론한다. 연일 뉴스를 도배하는 굵직한, 특수부 사건들이다. 하지만 범죄의 99.9%는 민생 관련 형사사건이다. 직장 동료의 스토킹, 헤어진 연인의 성범죄, 가정 폭력, 투자 사기, 보이스피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허위사실유포 등이다.
박씨는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그런 범죄 피해자들이 매일 20명씩은 대면으로든 전화로든 자신을 찾는다고 했다. 대부분은 변호사 선임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국가에 기대려는 사람들. 이들에게 사건 초기 위기 대응부터 의료·심리와 법률 상담, 경제적 지원과 회복을 위한 사후 관리까지 과정 전반을 모니터링하는 게 그의 일이다.
박씨는 그들이 털어놓는 공통의 얘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1차 수사기관의 불송치 이후 이의제기, 그 뒤로 또다시 이어지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와 '핑퐁'. 지리한 과정을 거치면서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렇게 해도 '증거 불충분'이라는 한 장짜리 불송치 결정서를 받으면, 몸도 마음도 무너진다"고 전했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피해자 지원 업무를 시작한 2013년에는 지금과 달리 경찰에 1차 수사 종결(불송치) 권한이 없었다. 달라진 형사사법절차에 대해 범죄 피해자들은 무엇을 호소하는가.
"'이런 증거도 내고 저런 증거도 냈는데 왜 피의자 말만 듣고 처리하느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 전에는 경찰에서 안 돼도 검찰 문을 다시 두드려 볼 수는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보완수사가 이뤄져도 사건을 한 번 종결시킨 담당 경찰이 다시 맡는다면 무슨 소용이냐는 불만도 많다. 경찰에 이런 걸 항의를 했을 때 '진상' 취급을 받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결국 나가떨어지게 된다. 나는 분명 피해를 입었는데, 수사가 계속 진척이 안 되면 몸도 마음도 무너진다.
결국 시스템 문제다. 경찰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사건을 바라본다면,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 관점이 우선이지 않나. 과거에는 경찰이 무혐의라고 판단하더라도 일단 송치를 하고, 검사가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면서 검토를 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다리가 끊겼다. 사람이 하는 수사는 완전무결할 수가 없는데, 피해자들은 '내 사건이 1차 수사기관의 판단으로 끝나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이 당연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
-물론 지금도 불송치 후 이의신청 등 불복 절차는 있다.
"제도는 분명 다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처음에는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찾아왔다가 몇 번 법률 상담을 받고 난 뒤 '도저히 감내할 수 없어요'라며 자포자기하는 경우들이 있다. 경찰은 '이의신청하세요'라고 간단히 안내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탄원서 한 장 쓰는 것도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럽다. 가해자가 내놓는 주장에 하나하나 스스로 반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과거의 상황을 되뇌어야 한다. '스스로 모든 증거와 자료를 다시 다 추려서 이의신청을 하다보니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피해자의 말은 뼈아프다.
그렇게 이의신청을 하면 이제 보완수사 등 '핑퐁의 시간'이 시작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다. 내가 당한 피해가 부정당하는 그런 고통이다. 피해자들은 빨리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절차는 한참 뒤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게 현장이다."
-수사가 끝나지 않으면 피해자 의료비·구조금 등 경제적 지원도 적시에 이뤄지지 못하는 것 아닌가.
"범죄 신고가 이뤄져 사건화가 되면 정식 피해자 신분으로 보고 지원 검토 절차가 시작된다. 폐쇄회로(CC)TV 등 피해사실이 명확하다면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도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경찰에서 가해자의 혐의가 인정돼 송치가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수사 도중 피해자에게 지원금이 지급됐는데 가해자가 불송치 또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 환수가 이뤄지게 된다. 이 때문에 지원금 지급이 말처럼 신속하게만 이뤄질 수가 없다.
경찰 불송치 뒤 이의신청으로 재수사가 이뤄지는 경우, 또는 송치를 했는데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경우 등 사건이 검경을 오가는 동안 시간은 훌쩍 간다. 피해자 진술 외 증거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참고인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중간에 수사기관 담당자가 인사로 바뀌기도 한다. 경찰 단계에서 재판까지 3년 넘게 걸리는 사건도 있다. 문제는 피해자 지원금을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신청해야 지급된다는 거다. 실제로 검찰에서 가해자를 기소해 법정까지 오가던 피해자가 뒤늦게 지원센터를 찾았는데 이미 사건이 4년이나 지난 케이스도 있었다.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피해자는 '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냐'며 발을 구른다."
-수사 지연에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하는 점은 뭔가.
"검경 간 핑퐁 속에서 피해자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하고 입증을 해야 한다는 점에 굉장한 부담을 느낀다. 피해자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걸 보고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들 한다. '○○(유명 지역명) 폭행사건'으로 명명되는 뉴스를 보고는 '나도 맞을 거면 ○○에서 맞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한 피해자도 있었다. 그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처참했을까. 그렇게 수사가 종결된 뒤에는 내 사건이 왜 이렇게 처리됐는지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검찰개혁 입법 과정에서 민생 사건은 조명받지 못한다. 특히 피해자들이나 피해자 전담 변호사들이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해도 정치권에서는 듣지 않는 것 같다. 보완수사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변호사가 돈을 많이 벌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 법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삶을 산다. 예전에는 경찰에서 안 되면 검찰에서 더 해볼 수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의) 불송치 뒤에 다시 용기를 내려면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다. 문제는 대부분이 비용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란 점이다. 당장 피해당한 사건 때문에 생계도 못 이어갈 지경에 놓인 이들도 있다. 이런 복잡한 절차마다 필요한 대응을 스스로 해야 한다면 견딜 수 있겠나. 대부분 탈락한다. 경찰의 사건 종결에 불만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다. '여기까지 온 것도 너무 힘들었다', '내가 감내하고 말지, 더 이상은 못 하겠다'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제도는 분명히 다 준비가 돼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변호사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검찰개혁은 지난 십수 년간 늘 한국 사회의 핵심 어젠다였다. 정치권력이 늘 검찰을 이용하려 했고, 소위 특수부를 중심으로 스스로 권력이 됐던 지난 검찰의 과오도 사실이다.
"검찰개혁의 취지는 형사사법체계를 좀 더 공정하게,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제도 개편은 단순히 검찰의 권한을 빼앗는 문제여선 안 된다. 피해자의 권리 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다. 검찰개혁 논의에서 단 한 번도 (개혁에) 직접 영향을 받는 범죄피해자로부터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검찰 개혁, 관건은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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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뒷전으로 밀린 현장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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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보완수사 막으면,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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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역할 커진 경찰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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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핵심은 권력남용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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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국민 피해 없는 개혁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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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피해자가 남긴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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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합리적 토론의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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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쏟아진 전문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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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검찰청 폐지, 직면 난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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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터져 나온 현장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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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현직 검사의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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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전문 분야 합동수사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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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정부 입법예고안 논란 ①중수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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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정부 입법예고안 논란 ➁공소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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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미 연방검사가 본 '수사·기소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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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국민 피해 외면하는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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⑰ '보완수사'를 둘러싼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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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특사경 지휘 검사의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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⑲ 취약한 피해자들, 대책은
위용성 기자 u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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