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AI가 끊어선 안 될 경험의 축적
젊은이들이 실무 경험 못 쌓으면
고령화 속에 산업현장 허리 끊겨
사람·기술 공존할 구조 갖춰야

2023년 아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는 5년간 7800명의 일자리를 AI(인공지능)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대대적인 인력 감축과 채용 축소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2월 IBM은 올해 미국 내 신입 사원 채용 규모를 3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니클 라모로 IBM 최고인사책임자는 “신입 채용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지 않으면 3~5년 후에는 인재 공급망이 붕괴하고 인재 풀이 고갈될 것”이라고 했다. 단순 업무를 AI가 처리하더라도 사람을 뽑아 키우지 않으면 장차 책임자급 인재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IBM 내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3월 공개한 AI 관련 분석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이에 따르면, 최근 18개월간 미국 내 신입 채용 공고가 35% 줄었는데 주된 원인은 AI였다. 그런데 기업이 AI 도입으로 신입 채용을 줄여 얻는 단기적 효율이 실상은 장기적인 위험을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신규 인력 유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인재 육성 체계의 균열, 지식 전수의 중단, 조직 문화 쇄신 동력의 약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기업이 AI 혁신을 통해 기대했던 미래 역시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AI 확산에 따른 인적 자원 공백 위험을 이토록 고민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어느 조직이든 사람이 성장하고 숙련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입 직원은 오랜 기간에 걸친 학습과 훈련, 시행착오와 실전 경험을 통해 전문가로 거듭난다. 이런 축적의 시간을 지나며 중견의 단계에 올라서고, 조직의 중추를 담당하는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는다. 조직은 이 같은 인적 자원의 선순환을 동력으로 삼아 지속된다. AI가 신규 인재 유입의 통로를 봉쇄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인적 자본의 축적을 가로막고 조직의 내재 역량은 결국 고갈될 것이다.
이는 한국 산업 구조상 더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다. 경직된 고용 제도로 해고가 어려운 우리나라에서는 AI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주로 신규 채용의 문을 닫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 직원을 내보내지 못하니 비용과 효율성을 따져 AI 활용은 늘리되 새로 사람을 뽑지는 않는 것이다. AI 전환의 비용을 청년들이 다 부담하는 셈이다. 올해 1분기 청년 실업률은 5년 만에 가장 높았다. 주력 산업 일자리가 줄어든 가운데, 전문직·IT 등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대체 효과가 큰 업종의 구직난이 겹친 결과다. 기회의 사다리가 끊긴 청년들은 계속 미숙련자로 남게 될 처지다.
이 상태가 방치되면,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10~20년 후 산업 현장의 허리가 끊어지게 된다. 가뜩이나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인력 구조의 질적 저하까지 맞물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하는 것이다. 특히 노하우 전수가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공 서열 중심의 한국 기업 문화 특성상, 신입 사원의 부재는 조직의 핵심 자산인 현장 경험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AI의 파고를 거스를 수는 없다. 관건은 사람과 기술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정부는 고용 제도를 유연하게 다듬는 한편 현장 경험의 단절을 메울 새로운 인재 양성 트랙을 구축해야 한다. 기업은 당장의 효율에만 매몰되지 말고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노동계의 태도 변화도 절실하다. 일부 노조처럼 생산 현장의 AI 도입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기술을 막아 세우는 것으로는 일자리를 지켜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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