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교섭 책임 없인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도 없다

정종엽 기자 2026. 5. 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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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사고 전 BGF리테일에 7차례 교섭 요구
원청은 직접 계약 관계 없다는 이유로 응답하지 않아
배송 시간·물량·운송 조건은 CU 물류망 안에서 결정
전문가 “계약 여부보다 근로조건 구조적 통제 봐야”
업종별 원청 사용자성 판단 기준 마련 필요
지자체 실태조사·노사정 협의체로 갈등 사전 대응해야
CU진주물류센터에서 4월 20일 벌어진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이후에도 따져야 할 질문이 남아 있다. 화물노동자들은 CU 물류망 안에서 정해진 시간과 물량, 배송 방식에 맞춰 일했지만 원청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원청은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김동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분향소에 참배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사고 전에도 교섭 요구는 계속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현장 충돌로만 볼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1월 19일부터 4월 13일까지 원청 BGF리테일에 7차례 교섭을 요구했다. 화물연대는 용차비 부담 구조, 장시간 노동, 상하차 업무 등 생존권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원청이 응답하지 않자 경남지역 조합원들은 4월 5일부터 진주시 정촌면 CU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파업과 집회는 진주뿐 아니라 경기 안성·화성, 전남 나주 등 전국 4개 물류센터에서 함께 진행됐다. 진주지역 노동자들은 물류 배송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정상 배송을 병행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대화가 아니라 압박이었다. 화물연대는 경기 CU안성물류센터 일부 노동자에게 물량 축소와 계약 해지가 통보됐고, 하청 운수회사를 통해 손해배상 관련 내용증명이 발송됐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 교섭이 열렸지만, BGF로지스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갈등은 이어졌다.

BGF리테일은 화물노동자와 직접 체결한 계약이 없어 교섭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 노동자들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CU 물류망 안에서 일하는 만큼 원청이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달 7일 진주 정촌면 CU진주물류센터에서 CU화물노동자들이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화물연대

계약 여부보다 실질 지배가 쟁점

쟁점은 원청이 직접 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교섭 책임을 피할 수 있느냐다.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는 원청 사용자성 판단의 핵심을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라고 설명한다.

오상호 창원대 법학과(노동법) 교수는 "노란봉투법을 통해 개정된 노조법의 핵심 취지는 계약상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사업에 편입돼 있는지, 경제적 종속성이 있는지도 함께 보지만 결국 핵심은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라고 말했다.

CU화물노동자들의 업무는 이 기준에서 따져볼 대목이 적지 않다. 이들은 BGF리테일·BGF로지스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CU진주물류센터 하청 운송협력사와 계약해 일해왔다. 겉으로는 개인사업자 형태지만 실제 업무는 CU 물류망에 맞춰 움직인다.

화물연대 자료를 보면 화물노동자와 하청 운송사가 맺는 계약은 정형화돼 있고, 노동자가 조항을 선택하거나 내용을 바꾸기 어렵다. 계약에는 BGF리테일 상품 배송, 배송코스와 점착시간 준수, 신규점포 배송, CU 관련 의무 등이 포함돼 있다. 운행 과정에서는 업무기록 앱을 사용하고, 차량 온도도 전송장치를 통해 관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주 CU화물노동자들은 2.5t화물차를 구매해 진주·김해·여수 등 CU 점포에 물품을 배송한다. 배송·상차·점포 납품 시간, 배송 구역, 물량 배정은 CU 물류망 흐름에 맞춰 정해진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일감을 고르거나 배송 단가를 개별 협상하는 구조가 아니다.
CU화물노동자의 작업 영상 기록 화면. /화물연대

오 교수는 물량 배정, 납품 규칙, 운송료, 대차비 같은 요소가 원청 사용자성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운송료는 임금 성격과 관련이 있고, 대차비나 물량 배정은 근로시간 문제와도 연결된다"며 "임금, 근로시간, 복리후생,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사항이라면 원청이 교섭해야 하는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쟁점은 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업무 구조다. 원청이 배송 시간과 물량, 운송 조건을 좌우했다면 직접 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교섭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오 교수는 "핵심은 계약 여부가 아니라 실질을 보는 것"이라며 "규칙이나 시스템을 통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컨트롤하는지, 실제 근로조건에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 또는 결정권이 원청에 있다고 판단되면 단체교섭에 나와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원청 쪽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BGF리테일은 화물운송 노동자들과 직접 고용계약이나 운송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며, 개별 운송계약은 협력 운송사와 노동자 사이의 문제라는 취지다. 그러나 개정 노조법의 취지는 바로 이런 형식적 계약관계만으로 책임을 가를 수 없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의 수입 구조도 문제다. 화물연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상온 1회전 운임은 월 370만 원, 저온 1회전 운임은 월 326만 원이다. 차량 구입비, 지입료, 차량관리비, 보험료 등 고정 지출을 빼면 순수입은 크게 줄어든다. 병환이나 경조사로 쉬려 해도 대차비를 부담해야 해, 휴식은 권리가 아니라 비용이 된다.

노조법상 노동자여도 권리 공백은 남는다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는 여기서 한 번 더 갈라진다.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돼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화물운송 노동자의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은 상당 부분 정리된 흐름이라고 봤다.

그는 "2018년 대법원 판례 이후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에서는 경제적 종속성이 중요해졌다"며 "특정 회사로부터 소득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정 등이 인정되면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화물노동자들은 다른 법에서도 특수고용·노무제공자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 지위는 어느 정도 확고한 성격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되면 교섭을 요구할 수 있지만, 휴게·휴일과 최저임금 같은 권리가 곧바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보호는 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해고 보호, 휴일 등 권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 적용된다"며 "노조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돼도 그런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교섭을 통해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섭력과 단결력에 따라 실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CU 화물노동자들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휴식시간과 휴일·노동시간 보호는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권리를 교섭으로 얻어내야 하는데, 원청이 교섭에 나서지 않으면 권리를 요구할 길도 막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3월 27일 CU화물노동자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화물연대

또 다른 희생 반복 안 되려면

오상호 교수는 업종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하청·특수고용 노동자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은 대개 "나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맞선다. 그러면 사건은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들고, 노사 관계도 더 나빠진다.

오 교수는 "물류업과 제조업은 원청이 노동조건에 관여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며 "업종별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업장에 배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청 사용자성을 판단할 기준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면 기업도 어느 정도부터 교섭에 나서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불필요한 법적 다툼을 줄이고, 사고나 파업 이후가 아니라 갈등 초기에 교섭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류업에서는 배송 시간표, 물량 배정, 납품 시간, 운송료 구조, 앱을 통한 업무 관리, 차량 온도 관리, 대차비 기준 등이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제조업에서는 생산 공정 편입 정도, 작업 지시, 안전보건 관리, 하청노동자의 임금·근무조건 결정 구조 등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업종마다 원청이 노동조건을 지배하는 방식이 다른 만큼, 같은 기준만으로는 현장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행정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경남에는 창원국가산단을 비롯한 제조업 사업장과 물류센터가 밀집해 있다. 원·하청 구조, 특수고용 노동, 안전보건 문제, 임금 격차, 휴식권, 대차비 부담, 상하차·대기시간 같은 노동조건을 지자체 차원에서 실태조사할 필요가 있다. 현황을 알아야 갈등이 터진 뒤 중재하는 수준을 넘어, 미리 위험한 노동조건을 찾아낼 수 있다.

오 교수는 행정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노사정 협의체나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역에서 반복되는 원하청 갈등을 개별 사업장 문제로만 두지 말고 지자체가 노동청·노동위원회·노조·기업과 함께 논의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경남이 이런 대응에 먼저 나선다면 특수고용·하청 노동 문제를 지역 차원에서 다루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종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