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필] 덕(德)과 인(仁)의 현대적 재해석

덕과 인은 평생 듣는 말이지만 막연해서 실천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덕(德)이란 도덕적·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베풀어준 은혜나 도움을 말한다. 인(仁)은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일, 공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 또는 정치 이념이며 윤리적인 모든 덕의 기초로서 이것을 실천하면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둘 다 해설이 긴 걸 보면 정의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덕이란 말은 공자 이전에 상나라 갑골문과 주나라 금문에 이미 등장했다. 덕이란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곧은 마음(直+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람, 덕이 없다"고 말하지, "인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
갑골문 연구 권위자 시라카와 시즈카(1910~2006)의 '공자전(孔子傳)'에 따르면 인이란 말은 공자가 발명한 말이라고 한다. 서주(西周)시대 금문(金文)에서도 인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논어에는 인을 논한 대목이 많다. 대략 전체 400장 가운데 58장 정도에 이른다. 그 가운데 공자가 직접 말한 것은 55장에 달하지만 공자 스스로 인을 규정한 경우는 한 곳도 없다.
인을 규정하는 일은 공자에게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규정하는 것이 한정하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에 일부러 회피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인에 관한 제자들 질문에 공자는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밖에도 "인이 어찌 멀리 있겠는가. 내가 인을 행하려고 하면 인은 거기에 이르는 것이다"라며 인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했고, "인을 행하는 데에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목숨을 바쳐서 인을 이루는 일이 있다"며 실천 의지와 엄숙함을 강조했다.
이처럼 핵심은 말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니 자기도 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지 않았나 라는 생각마저 든다. 공자는 '인은 무엇이다'라는 본질적 정의를 내리지 않고 인을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주목했던 것이다. 수천 년 지난 후 오늘날 덕이니 인이니 하는 것이 고리타분할 수 있다. 딱히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덕과 인은 평범한 사람보다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인데 덕이 있는 지도자, 인을 행하는 지도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시대, 이익이 윤리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고전적 의미의 덕과 인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두 개념은 우리 사회의 고도화된 사회적 운영체계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덕은 '예측 가능한 공정성'으로 읽을 수 있다. 과거의 덕이 한 개인의 인격적 완성을 뜻했다면, 오늘날의 덕은 공적 시스템이 갖추어야 할 투명성과 일관성을 의미한다. 법과 원칙을 곧은 마음으로 집행하는 것이 현대의 덕이다. 국민이 국가와 사회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 사회적 총량이 바로 현대판 덕의 크기다.
인 역시 '사회적 공감과 포용의 알고리즘'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공자가 인을 규정하지 않은 이유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 인의 형태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지금의 인은 소외된 이웃을 보듬는 복지체계이자,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제도적 감수성이다.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하면 인에 이른다"는 공자의 말은 공동체가 의지를 가지고 포용적 정책을 설계할 때 비로소 인본주의적 사회가 구현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결국 덕과 인은 성인군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운영 원리다. 우리는 더 이상 초인적인 성인(聖人) 지도자를 기다릴 수 없다. 대신 시스템에 덕을 입히고 정책에 인을 심어야 한다.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에 기대기보다 누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덕과 인이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공자의 고민에 대한 오늘의 해답이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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