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카시아와 이팝나무

여기저기 아카시아꽃과 이팝나무꽃이 한창이다. 그야말로 산과들 그리고 거리거리마다 온통 백색의 향연이다.
5월이 되면 향기로 우리 곁에 찾아오는 아카시아의 본래 이름은 아까시다. 북미 원산의 아까시 나무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9C 말이지만 본격적인 식재는 1910년 이후 일제 강점기 때이다.
지금처럼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결정적 이유는 1960년 이후 산림청의 주도로 추진된 '산림녹화사업'에 기인한다.
6.25 이후 황폐해진 민둥산에서도 아카시아 나무는 잘 자랐다. 왜냐하면 뿌리혹박테리아를 통해 스스로 공기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어, 극히 척박한 토양이나 바위산에서도 잘 자랐기 때문이다.
남한이 단기간에 기적적인 산림녹화를 달성하게 된 주역중의 하나가 아카시아 나무였던 것이다.
더욱이 아카시아는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든 뒤 숲이 울창해져 그늘이 지면, 햇빛을 받지 못해 참나무 등 다른 토종 수종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스스로 도태되는 극양수의 생태적 습성을 갖고 있다. 또한 벌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밀원수종'이기도 하다.
학명은 'Robinia pseudoacacia', 'pseudo'는 '가짜'라는 뜻이니 곧 아카시아와 비슷하기는 하나 다르다는 의미이다.
일본에서도 '니세(가짜)아카시아'라 하였는 바, 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카시아로 굳어졌다. 현재의 공식명칭은 아까시이다.
본래의 아카시아 나무는 열대 지방에 주로 분포하는 콩과 식물로, 작은 잎과 노란색 꽃이 특징이다.
먼산 아까시꽃에서 마을로 눈을 돌려보면, '도심 속 눈꽃' 형상의 이팝나무 가로수가 지천이다.
이팝나무가 지금처럼 전국구 가로수가 된 계기는 1980년대 후반 한국도로공사에서 고속도로TG와 진입로 조경수로 심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에 비해 악취는 물론 꽃가루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매연과 병해충에도 강하여 유지·관리 비용이 적게 든다. 거기에다 위로 뻗는 특성으로 인해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이팝'의 유래는 다양하다.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 벼슬을 해야 비로소 임금이 내려주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이씨(李氏)의 밥' 즉 이밥이라 하였던 바, 보릿고개 시절 만개한 이팝나무 꽃을 수북히 쌓인 흰 쌀밥에 빗대어 '이팝'이 되었다는 설이다.
또 이팝나무가 보통 입하(立夏) 무렵에 만개하기 때문에 입하나무라 하던 것이 이파, 이팝나무로 되었다고도 한다.
보릿고개 시절 슬픈 전설도 있다. 옛날 가난한 집에서 시집 온 며느리가 젯상에 올릴 쌀밥을 짓다가, 설익을까 걱정에 밥알 몇 톨을 맛보았는데 이를 본 시어미한테 모진 구박과 매질을 당하였다.
서러움에 며느리는 결국 산에 올라 자진을 했고, 이듬해 며느리 무덤가에 흰 쌀밥 닮은 하얀 꽃이 고봉처럼 피어난 나무를 보고 사람들은 '이팝나무'라 하였단다.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를 한해 농사의 흉풍을 점치던 '신목(神木)'으로도 숭배했다.
이팝나무는 본래 습기를 좋아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꽃이 만개하였다는 것은 본격적인 모내기철에 내린 봄비가 농사에 충분한 정도의 강우량이 되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이팝나무를 그저 쳐다 보는 것만으로 춘궁기 배고픔을 달랬을 터이고, 구한말 이후 70년대까지는 아카시아꽃를 직접 따먹으면서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겼을 터.
두 백색 꽃은 긴 세월 동안 백의민족 심리적 생존의 중심에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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