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가 불러온 동물복지 논란…싱어 교수 "열악한 동물원, 교육 효과 있나"

“동물원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아파하는 동물을 보여주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닙니다.”
‘동물해방’의 저자로 알려진 세계적 철학자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최근 늑대 ‘늑구 탈출 사건'으로 불거진 사설동물원 논란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최근 방한해 지난달 말 만난 싱어 교수가 1975년 출간한 ‘동물해방’은 현대 동물권 운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 저서로 평가받는다.
지난 4월 8일 대전 오월드 사파리에서 늑대 '늑구'가 탈출했다. 우리 하단을 파고 외곽 철조망까지 넘어간 늑구는 군·경찰·소방 인력 2900여 명과 드론·열화상 장비까지 동원된 수색 끝에 탈출 9일 만인 17일 새벽 오월드에서 약 2km 떨어진 수로에서 포획됐다.
‘국민 늑대’로 불리며 화제를 모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물원 내 동물복지 논의도 재점화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동물원 안전관리 및 동물복지 향상 대책’을 추진하고 전국 121개 동물원에 대한 점검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싱어 교수는 사설동물원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동물에게 적절한 삶의 환경을 제공할 수 없는 사설동물원은 존재해선 안 된다”며 “단순히 관람객 유치를 위한 상업적 목적만으로 야생동물을 가두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종에 따라 충분한 생활 공간·자연스러운 사회 단위 구성이 가능한 개체 수 확보·야생에 가까운 행동이 가능한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월드에서 태어나 야생 생존 능력을 갖추지 못한 늑구처럼 자연 방사가 어려운 동물에 대해서는 “보호구역이나 충분한 땅이 있는 야생공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동물원 구조의 교육적 효과를 주장하는 논리에도 반론을 제기했다.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가 좁은 공간 내에서 하루종일 반복 행동만 하는 사자·호랑이·코끼리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어떤 교육이 되는가”라며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닌 잘못된 태도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물에게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면 관람객은 동물을 보기 어려워질 수 있지만 교육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실제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훨씬 가치 있는 경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술 발전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아이들이 실제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라며 벨기에 동물권 단체 ‘가이아(GAIA)’가 만든 VR 기반 ‘미래 동물원’을 사례로 소개했다. VR 고글을 착용하면 원하는 동물과 가까이 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실제 동물을 가둘 필요도 없다는 설명이다.
싱어 교수는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이 동물 복지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리드글란 팜스 실험용 비글 번식 시설 구조 시위'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지난달 18일 100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리드글란 팜스에 모여 시위 활동을 펼쳤다. 시위 활동에 과학자·의사·보건 전문가들의 노력이 보태진 결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5월 NIH 캠퍼스 내 마지막 비글 실험실을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절반 정도는 개를 사랑해서, 나머지 절반은 모든 동물을 아끼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을 것”이라며 이를 “좋은 시작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특정 동물에만 관심이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높은 돼지고기 소비를 언급하며 “왜 개는 보호하면서 돼지는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개는 아끼면서도 돼지가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현실에는 무감각하다”고 지적했다. 번식용 모돈이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환경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며 공장식 축산을 비판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동물에 대한 폭력도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한국이 개 식용을 금지했다면 돼지와 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기에 하나는 잘못이고 하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싱어 교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고통은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며 “도덕적 기준은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지 여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동물실험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주요국에서는 이미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일부 연구 분야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피부 자극 시험에 사용되던 동물실험은 올해부터 폐지될 예정이며 개를 이용한 일부 실험도 2030년까지 크게 줄일 계획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지난해 4월 3~5년 안에 신약 독성 시험에서 동물실험을 '규범이 아닌 예외적인 방법'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 중이다.
싱어 교수는 “EU·미국·영국 모두 동물실험에서의 성공적인 결과가 임상으로 동일하게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AI·동의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세포배양·오가노이드 등 대안적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실험을 대체하려는 접근이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임상에서 더 높은 효과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용된 실험동물은 약 459만 마리로 2015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고통등급 E 실험에 사용된 동물 비율은 51.5%였다. 고통등급 E는 척추동물에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연구를 의미한다.
싱어 교수는 이에 대해 “놀랍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의 이해충돌이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의 관심이 동물의 이해관계와 다를 수 있고 무엇보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바라는 바와 다른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평생 동물실험 중심으로 훈련받아 온 연구자라면 가장 익숙한 방식을 계속 활용하려 할 것”이라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이어가기 위한 선택보다 환자와 동물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을 강조했다.
투명성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동물실험에는 상당 부분 세금이 들어간다”며 “국민은 자신의 돈이 어떤 연구에 사용되고 있는지와 그 과정에서 동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가장 엄격한 기준' 하에서 운영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에 대한 배려가 동양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불교는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자비를 강조하고 유교 전통에서도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에게 심각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싱어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은 이제 충분히 성숙하고 풍요로운 나라"라며 "다른 나라들처럼 동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역량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 이제 한국이 동물복지 분야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고 밝혔다.
[조가현 기자,문혜원 인턴기자 gahyun@donga.com,m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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