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eSIM)이 유심보다 불편하다?"…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이상한 역주행
대포폰 방지에 묶인 기술, 소비자 편익은 뒷전
글로벌 표준인데… 한국선 전산 장벽에 '먹통'

정부가 가계 통신비 절감과 이용자 선택권 확대를 내걸고 지난 2022년 9월 스마트폰 '이심(eSIM)' 서비스를 전격 도입한 지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물리적 칩 없이 소프트웨어 다운로드만으로 개통이 가능한 eSIM은 전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유독 한국 시장에서는 "기존 유심(pSIM)보다 불편하다"는 냉정한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기술 트렌드와 정반대로 흐르는 국내 'eSIM 잔혹사'의 원인을 5가지 핵심 사안별로 짚어본다.
"실체도 없는데 매번 돈 내라?" 재발급 비용 논란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기존 물리 유심은 한 번 구매하면 반구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교체할 때 기존 칩을 빼서 새 기기에 옮겨 끼우기만 하면 추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반면 eSIM은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디지털 프로파일임에도 불구하고, 기기를 변경할 때마다 재다운로드 비용 2750원을 지불해야 한다. 배송비나 자재비가 들지 않는 디지털 파일임에도 매번 수수료를 부과하는 구조는 "유심보다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도입 당시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IMEI 1·2' 등록의 늪…자급제 폰 이용자는 '분통'
편의성 면에서도 낙제점이다. eSIM을 활성화하려면 단말기 고유 식별 번호인 IMEI 정보가 통신사 전산에 정확히 등록돼야 한다. 특히 eSIM 지원 스마트폰은 두 개의 번호를 동시에 쓸 수 있도록 IMEI가 두 개(IMEI 1, IMEI 2) 부여된다.
문제는 자급제 단말기나 해외 직구 기기를 사용할 때 발생한다. 통신사 전산에 모델 정보가 즉각 반영되지 않을 경우, 사용자가 직접 설정 화면을 캡처해 고객센터에 보내고 승인을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칩만 꽂으면 바로 터지는' 물리 유심에 비해 개통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유심 기변' 불가…비상 상황 대응력 상실
한국 통신 시장의 독특한 문화인 '유심 기변'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큰 약점이다. 국내 사용자들은 휴대폰이 파손되거나 배터리가 없을 때 가족이나 친구의 기기에 자신의 유심을 꽂아 즉시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eSIM은 특정 기기에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즉각적인 기기 이동이 불가능하다. 다른 기기로 번호를 옮기려면 기존 프로파일을 삭제하고 새 기기 정보에 맞춰 다시 발급받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급한 상황에서 공단말기를 빌려 써야 하는 이용자들에게 eSIM은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
'듀얼 심' 반쪽짜리 혁신…'명의 일치' 강제 규제
eSIM의 최대 강점은 하나의 폰에서 두 개의 번호를 쓰는 '듀얼 심' 기능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한 대의 단말기에 등록되는 두 번호의 명의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본인 명의의 eSIM과 법인 명의의 물리 유심을 혼용해 업무와 일상을 분리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명의가 다를 경우 통신사가 개통을 거부하거나 서비스를 차단한다. 대포폰 방지라는 법적 취지는 이해되나, 실질적으로는 기술의 효용성을 제도가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수리 한 번에 사라지는 번호…사후 서비스와 충돌
제조사 서비스 센터 이용 시 발생하는 비효율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휴대폰 고장으로 메인보드를 교체하거나 기기를 리퍼(교체)받을 경우, 단말기의 고유 식별 번호(IMEI)가 변경된다.
유심 사용자라면 기존 칩을 다시 끼우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지만, eSIM 사용자는 변경된 기기 정보에 맞춰 다시 통신사와 접촉해 비용을 내고 프로파일을 재설정해야 한다. 서비스 센터에서 하드웨어 수리를 마친 뒤에도 통신사 전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중으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 제언 "제도 개선 없으면 우물 안 개구리 전락"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eSIM이 외면받는 것은 기술적 한계가 아닌 '인위적인 장벽'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IT 전문가는 "이용자 편의를 위해서는 기기 변경 시 eSIM 재발급 비용을 면제하거나, 전산 등록 절차를 완전히 자동화하는 등 소비자 친화적인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며 "규제와 비용 구조가 혁신 기술을 가로막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글로벌 통신 표준에서 갈라파고스화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