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환의 재계프리즘] ESG 공시, 속도보다 실행가능성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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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계 화두 중 하나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 공시 로드맵이다.
금융위원회의 ESG 공시 로드맵 초안에 따르면 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2028년(2027회계연도)부터 ESG 공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민연금은 당장 내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를 주장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 공시 시행을 잠정 중단했고, 싱가포르와 캐나다는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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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조기 시행 요구했지만
가이드라인 없어 혼란 우려
자산 2조 기업으로 확대땐
준비 안된 중견기업에 부담
투자자 보호 필요성 공감하나
성급한 공시 도입은 독 될수도

최근 재계 화두 중 하나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 공시 로드맵이다. ESG 공시 취지에 이견은 없다. 자본시장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 강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업은 없다. 다만 현장의 공기는 다르다. 기업 ESG 담당자들은 ESG 공시 명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당위성과 기업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기업들은 제도 도입 시기에 민감하다. 금융위원회의 ESG 공시 로드맵 초안에 따르면 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2028년(2027회계연도)부터 ESG 공시를 해야 한다. 30조원 미만 상장사는 2029년부터 공시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스코프3 공시는 2031년부터다. 스코프3는 협력사가 발생시킨 탄소 등 기업의 가치사슬에서 발생한 모든 탄소배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국민연금은 당장 내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를 주장한다. 대상은 금융위 초안보다 강화된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다. 아직 가이드라인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 당장 내년부터 시험을 치르라는 얘기다. 시험 범위도 공지되지 않았는데, 시험 날짜만 확정해 놓은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숫자는 신뢰를 높이기보다 시장 혼란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신뢰할 수 있는 ESG 데이터를 구축하려면 최소 1~2년의 인프라 정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로의 공시 대상 확대는 '공시 정상화'가 아니라 '공시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인력과 시스템에서 차이가 크다. 중견기업에 대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비효율이 나타날 수 있다. 기업들은 외부 컨설팅에 의존하는 '형식적 대응'에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그린워싱 논란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실무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시 대상 확대는 산업계에 불필요한 부담만 지울 뿐이다.
국민연금은 스코프3 공시도 금융위의 공시 로드맵 초안보다 빨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공급망 전체 탄소 배출량을 측정해야 하는 스코프3 도입은 어려운 과제다. 특히 대기업에서 협력사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데이터 관리·검증 인프라 구축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제조업체 80% 이상이 협력사 데이터 확보를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더 큰 문제는 타이밍이다. 지금 대한민국 산업계는 '안개 정국'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주요 수출산업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 속에 체질 개선을 강요받고 있다. 여기에 지정학 리스크까지 겹쳐 경영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ESG 공시 의무를 급격히 확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선택인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글로벌 흐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주요국들은 ESG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며 현실과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규제를 밀어붙이기보다 시장의 수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 공시 시행을 잠정 중단했고, 싱가포르와 캐나다는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한국만 다른 길을 가는 것이 경쟁력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해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경쟁'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ESG 로드맵'이 필요하다. 정책은 실행 가능성까지 담보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ESG 공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서두른 공시는 독이 될 수 있다. 제도를 바로 세우려다 산업이라는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승환 재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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