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남양주 궁집과 '21세기 대군부인'

남양주 궁집은 국가민속문화유산이다. 궁집은 영조가 막내딸 화길옹주 부부에게 하사한 집이다. 임금이 직접 목재를 내리고 목수를 보내 짓게 했다. 화길옹주는 1772년 19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고, 궁집은 구씨 집안에 속했다가, 현대 들어 서양화가 권옥연, 무대미술가 이병복 부부가 집과 땅을 매입했다.
권·이 부부는 1970년대부터 인근에 전국에서 헐리는 고택들을 옮겨와 박물관 수준의 한옥촌을 이루었다. 부부는 궁집을 2019년 남양주시에 기부했다. 이후 일반인도 출입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달 들어 궁집에서는 전통문화 체험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궁집에 살 때 화길옹주 부부는 요즘 사극에서처럼 '자가'라고 불렸을 것이다. 한때 역사드라마에서 공주도, 옹주도, 부마도 '마마'를 붙이곤 했으나, 이는 잘못된 호칭이라 하여 '자가'로 바로잡힌 게 그리 오래지 않다. '마마'는 왕과 왕비, 선왕과 대왕대비, 세자와 세자비 등 왕통에게 붙이는 극존칭이고, 그 한 단계 아래는 '자가'라는 게 밝혀진 덕이다. 재미있는 점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자기야'라는 애칭도, 왕조시대의 말 '자갸'의 변형이라 한다.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분당 시청률 15%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다. 정조 승하 후 문효세자가 즉위하고, 그로부터 현대까지 왕통이 이어졌다는 대체역사가 드라마의 설정이다. 물론 현대는 왕정국가가 아니라 입헌군주국으로 바뀌었다. 사실, 드라마는 역사 자체엔 전혀 관심이 없고, 왕실 로맨스와 궁중 암투가 중심 플롯이다. '드라마적 허용'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마마'와 '자가' 뒤에 예전 궁궐에서처럼 상궁과 나인이 줄지어 머리 조아린 채 뒤따르는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입헌군주국은 신분차별을 철폐한 민주국가다. 영국 왕실의 시종, 집사, 요리사, 운전기사는 왕정시대 궁중인이 아니다. 엄연히 근로계약을 맺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일본 왕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21세기 대군부인'의 세계관이 입헌군주국을 전제로 한다면, 예법 또한 현대화되었어야 하지 않나. 신분이 자신보다 낮은 자에게는 나이를 막론하고 반말을 내뱉는 신분차별적 어법도 어색하다.
더 거슬리는 대목은, 실권도 없는 임금 자리 때문에 편전에 불을 지르고, 어린 조카의 왕위를 '목숨 걸고' 차지하려는 시도다. 재미로 보면 그만일 테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혼란스러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세계관 혼동은 기우겠지?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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