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 번트, 번트… 메이저리그에 다른 바람이 분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번트는 아주 오래도록 비효율적인 작전으로 여겨졌다. ‘고작’ 한 베이스 주자를 더 보내기 위해 귀중한 아웃 카운트를 낭비하는 건 어리석다고 판단했다. 번트가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1사 2루가 무사 1루보다 오히려 ‘기대 득점’이 떨어진다는 통계적 근거 또한 있었다. 2020시즌 내셔널리그까지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고, 투수 타석이 사라지면서 번트 시도는 최저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희생번트가 2022년을 기점으로 매년 우상향 중이다. 2022년 390개에 불과했던 리그 전체 희생번트가 지난해 560개로 늘었다. 시즌 4분의 1을 소화한 올해는 벌써 160개로 시즌 600개를 돌파할 기세다. 지난해 각 구단은 평균 122.9타석당 1차례꼴로 번트를 시도했는데 올해는 109.5타석당 1차례로 번트를 댄다. 희생번트뿐 아니라 번트안타도 같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엠엘비닷컴은 무엇보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리그 투수들의 구위가 ‘번트의 부활’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리그 직구 평균 구속이 2017년 이미 시속 150㎞ 벽을 뚫었다. 올해는 평균 152.2㎞다. 전에 없던 변화구도 매년 새로 유행을 타며 등장하고 있다. 그런 투수들의 공을 때려내기는 당연히 어렵다. 2019년 0.758이던 리그 OPS는 지난해 0.719까지 떨어졌다. 저득점 경기가 늘면서 ‘1점’의 가치 또한 올랐다. 번트를 대서라도 점수를 짜내려는 팀이 많아졌다.
동시에 번트는 구위 강한 투수들의 빈틈을 찌를 수 있는 무기로 평가받고 있다. 번트 야구를 주도하는 팀 중 하나인 밀워키 팻 머피 감독은 엠엘비닷컴에 “요즘은 체격 큰 투수들이 워낙 많다. 큰 선수들이 몸을 숙여 공을 잡고, 목표를 확인하고 정확하게 송구까지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투수 체격이 커지면서 구위는 강해졌지만, 반대로 번트 수비는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것이다. CBS스포츠도 비슷한 설명을 내놨다. 한동안 워낙 번트가 적다 보니 야수들의 대응 능력도 떨어졌고, 이를 기회 삼아 번트로 활로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2023년 베이스 크기 확대 등 제도 변화로 기동력 야구가 중시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베이스 크기가 커지면서 각 구단 야수진 구성이 과거와 달라졌다. 장타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일단 주자로 나가면 언제든 뛸 수 있는 발 빠른 타자가 늘었다. 번트를 시도할 수 있는 타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팀’들이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올 시즌 희생번트 1위인 탬파베이는 선수단 총연봉 전체 25위다. 번트안타 1위 밀워키는 그보다 더 낮은 27위다. 당연한 결과다. 번트를 댈 수 있는 발 빠른 타자는 홈런 타자보다 훨씬 가격이 싸다.
덩치 큰 부자 구단들도 번트의 부활을 좌시하지 않는다. 리그에서 가장 돈이 많은 뉴욕 양키스까지 올 시즌 번트 훈련을 경기 전 소화하고 있다. 전에 없던 이례적인 풍경에 뉴욕포스트는 “지난해 리그 홈런 1위 팀이 스몰볼까지 해내려 한다”고 적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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