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은 국민연금… 1610조 연금 운용 '깜깜이'
[편집자주]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의 가장 큰 출자자(LP)인 국민연금의 출자 내역이 깜깜이 공시에 가려져 있다. 환헤지 산식 비공개 등 운용상 비공개 영역은 늘어만 간다. 출자 판단과 사후 성과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한국식 선샤인법(정보 공개 투명화법) 등 대안을 모색한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1월26일 2026년 제1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내주식 비중 확대 등 자산배분 안건을 다룬 뒤 관련 회의록을 2030년까지 4년간 비공개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회의 이듬해에 회의록을 공개해 온 기존 관행과 다른 처리 방식이었다. 국민연금이 자산배분 안건 논의에 대해 국민연금법 제103조의2 조항을 적용해 비공개를 결정한 결과다.
해당 조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기금위 의결로 회의록 공개 유예가 가능하다.
앞서 지난해 12월15일 열린 국민연금의 제7차 기금운용위원회는 한시적 전략적 환헤지 기간을 2026년 말까지 연장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 '탄력적 집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의결했다.
기존에는 발동 기준이 되는 환율 상한이 시장에 알려져 있었지만 당시 결정에 따라 환율 상한은 물론 산식 자체가 비공개 영역에 들어갔다. 같은해 12월23일에는 매번 기금위 의결을 거쳐야 했던 전략적 환헤지를 보건복지부·기금운용본부 협의체에 위임해 수시로 발동할 수 있게 됐다. 환헤지 발동 규모와 시기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단기적 환율 방어용으로 국민 노후 재원이 동원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국민연금은 오히려 비공개 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후 국민연금은 전술적 환헤지 규모도 비공개 처리했다. 이에 따라 국정 기조나 해외 주요 연기금의 정보공개 수위에 미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계에선 국민 노후자산 운용 정보를 광범위하게 비공개하는 관행이 권위주의적 행정 문화의 잔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기금 운용에 대한 국민 소송 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상황도 국민연금이 비공개 행보를 늘린 배경으로 거론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은 연방 정부나 주 정부가 그렇게(비공개 확대를) 안 할 뿐더러 만약 미국의 캘리퍼스 같은 곳이라면(비공개 처리를 늘리면) 집단 소송이 걸릴 수 있다"라며 "결국 징벌적 (손해배상)하면 관여했던 기관이나 또는 경영자는 타격을 입게 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이나 단체의 소송 (문화) 같은 것이 약해 보인다"라고 했다. 임 교수는 "환율이 상승할 때에 환율 대책을 (환헤지로)한다면 나중에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했다.
다만 성과 측면에서 전략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란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경우 5% 지분 공시 의무 등 기존의 공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충분하다"라며 "알권리 등 국민적 관심사 충족, 투명성 차원에서 공개 범위 확대는 필요할 수 있지만 시장 전략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성과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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