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족쇄 푼 이재용의 300일···빅테크들 회동 후 내달리는 삼성전자

고명훈 기자 2026. 5. 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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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 AI·반도체 핵심 고객사 만나며 협업 전선 확장
일론 머스크와 협업 논의 지속···대형 수주로 파운드리 반등 발판
HBM 엔비디아 신뢰 회복하고 복수 거래선 확보···점유율 탈환 총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법리스크 해소 후 주요 행보 / 사진=연합뉴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년 가까이 이어진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지 300일을 앞두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 그의 행보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업들을 향했다.

테슬라와의 협업을 계기로 멈춰 있던 미국 테일러 공장이 다시 움직이고 있으며, AI 메모리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다시 신뢰를 회복하며 엔비디아·AMD의 주축 공급망 지위를 되찾았다.

구글과는 온디바이스 AI를 필두로 차세대 AI폰·확장현실(XR) 등 생태계 협력을 넓히는 한편, 메타·아마존·오픈AI 등 빅테크 거물 CEO들과도 잇따라 교류하며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을 AI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손잡은 이재용·머스크···다시 돌아가는 테일러 공장

지난해 7월 17일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의혹 사건에서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본격적인 글로벌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직후 삼성전자가 발표한 첫 대형 수주 소식은 파운드리사업에서 나왔다. 당월말 삼성전자는 글로벌 IT 혁신을 주도 중인 테슬라와의 대규모 장기 위탁생산 계약 체결을 공시했다.

테슬라와의 협업은 그간 대형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파운드리에서의 성과였기에 더 큰 의미로 평가받는다. 특히 계약 체결 과정에서 이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통화하며 강한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나눠온 것으로 전해진다. 머스크 CEO 또한 삼성전자 공시 직후 자신의 SNS 계정에 "(삼성전자와) 파트너십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기 위해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해 고위 경영진과 화상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테슬라가 체결한 이번 위탁생산 계약은 8년간 22조 7600억원을 쏟는 대규모 장기 계약으로, 머스크 CEO는 사실상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이 숫자의 몇배는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자사의 차세대 AI6 칩을 삼성전자 2나노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한단 계획이다. 2나노 선단공정은 삼성전자가 선두 TSMC를 추격하기 위해 가장 힘을 쏟고 있는 핵심 전장으로, 대형 빅테크 고객사 유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테슬라 AI6는 삼성전자의 2나노 기술 경쟁력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AI6는 완전 자율주행(FSD) 시스템을 비롯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자율주행 택시·슈퍼컴퓨터 등 테슬라의 AI 생태계 전반에 활용될 핵심 반도체다.

테슬라와의 계약으로 멈춰 있던 미국 테일러 팹도 다시 건설을 시작해 현재 공사 막바지에 들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전공정 장비 반입을 완료하고 올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의 성공적인 협업을 발판 삼아 퀄컴 등 2나노 파운드리 수주처를 넓히는 데 주력한단 방침이다.

강석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최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테일러 공장 F1은 지난 4월 23일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장비 반입식을 가졌으며, 예정대로 올해 가동과 2027년 양산 개시 이후 단계적으로 2나노 생산능력을 확대해 나갈계획"이라며, "F2는 글로벌 고객들과 수주를 논의하며 구축을 위한 초기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HBM 빅테크 영업맨 자처···엔비디아 넘어 복수 거래선 확보

HBM 경쟁력에서도 차츰 신뢰를 회복하며 선두 탈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엔 D램 전면 재설계로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린 영향이 크지만, 이 회장이 직접 주요 고객사와 잇따라 만나며 협력 확대에 나선 점도 주효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작년 10월 이뤄졌던 젠슨황 엔비디아 CEO와의 '치맥 회동'은 그간 HBM 공급에 난항을 겪던 삼성전자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2025년10월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회동했다. / 사진=연합뉴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의 AI 가속기 시장에서 독점 지위를 유지 중인 회사로, 메모리 기업들의 HBM 물량 대부분을 소화하는 최대 거래선이다. 삼성전자가 HBM을 계속 만들어도 점유율에서 부진했던 것도 엔비디아 주요 공급망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렸기 때문이다.

황 CEO는 이날 이 회장과의 만남을 상징화하며, 삼성전자를 사실상 HBM 핵심 파트너로 재확인했음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는 이후 최신 제품인 HBM4(6세대)에서 엔비디아의 최종 공급 승인을 위한 품질 평가에 빠르게 통과하며, 올 초 경쟁사 중 가장 먼저 양산 출하에 나서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 협력 범위를 파운드리로 넓혀 엔비디아의 차세대 언어처리장치(LPU)인 그록3 칩의 위탁생산도 삼성전자가 맡기로 했다.

이 회장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HBM 거래선 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다. 대다수 빅테크가 자체 칩을 제작하는 등 글로벌 AI 가속기 시장 경쟁이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HBM을 필요로 하는 요청도 점점 더 커질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성사됐던 샘올트먼 오픈AI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3자 회동은 중장기 관점에서 삼성전자의 HBM 수요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이날 오픈AI와 소프트뱅크는 범용인공지능(AGI)을 구현하기 위한 약 70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초거대 AI 인프라 프로젝트에 삼성전자가 메모리 핵심 파트너로 참여해주길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픈AI가 예측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메모리 수요는 D램 웨이퍼 기준 월 최대 90만장 규모로, 글로벌 최대 캐파(생산능력)를 보유한 삼성전자는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인 셈이다. 이 회장은 차세대 HBM을 포함해 스타게이트의 첨단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맡기로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아울러, 기존 HBM 주요 거래선이었던 AMD와의 협력 관계도 더욱 탄탄히 한단 방침이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리사 수 AMD CEO와 저녁 만찬을 가지며 차세대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AMD는 삼성전자를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 MI455X' GPU용 HBM4 우선 공급업체로 지정했으며, 아울러 메모리를 넘어 파운드리, 패키징에서도 협업을 논의하기로 약속했다.

◇구글과 밀월 강화···온디바이스 AI 경쟁력 제고 '총력'

모바일 등 차세대 디바이스 분야에서도 이 회장의 빅테크 회동은 삼성전자의 온디바이스 AI 전략과 맞물린다. 이 회장은 지난 4월말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와 서울에서 만나 반도체와 더불어 구글 제미나이를 포함한 AI 협력 방안을 추가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사비스 CEO는 구글의 AI 개발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 창업자로, 과거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국을 펼친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XR / 사진=삼성전자

구글은 현재 자체 제작한 주문형 반도체(ASIC) AI 가속기인 텐서처리장치(TPU) 성능을 위해 삼성전자의 안정적인 HBM 공급이 필요하며, 삼성전자는 구글의 AI와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 역량을 기반으로 AI 디바이스 생태계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스마트폰 고도화를 위해 갤럭시 시리즈 신제품 출시 때마다 구글과의 기술 협업을 더욱 확대하는 추세다. 올 초 선보인 갤럭시S26 시리즈에도 구글의 최신 안드로이드 AI 탑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에이전틱 AI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작년엔 안드로이드 XR 플랫폼과 구글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한 '갤럭시 XR' 신규 디바이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업계 관계자는 "AI폰 경쟁이 단순한 하드웨어 사양 경쟁을 넘어 단말기 안에서 작동하는 AI 에이전트와 플랫폼 생태계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런 흐름에서 삼성전자는 구글의 AI 모델과 안드로이드 생태계, 딥마인드의 원천 AI 역량 등을 자사의 온디바이스 AI 고도화로 연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구글의 관계는 더 구체적이고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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