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 아니어도, 관심 있으면 연대”…여성·농민·퀴어가 만든 ‘남태령’식 민주주의 [플랫]
‘어른 김장하’ 김현지 감독 신작
김 감독과 활동가 김후주 인터뷰
‘남태령’은 여성이자 지역민으로서 소외감을 느꼈던 이전 집회 현장과는 달랐어요. 변화한 민주주의를 불러온 새로운 세대들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위에 등장했던 20·30 여성들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을까. 김현지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남태령>에서 그 질문을 따라간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김현지 감독과 엑스 계정 ‘향연’의 운영자 김후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은 “영화를 정치적이라기보다 ‘MZ’들이 이런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구나, 다음 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남태령>은 지난 8일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영화는 농민과 경찰의 대치가 발생했던 2024년 12월21일 남태령을 중심으로 쓰인 다큐멘터리다. 이날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트랙터 17대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경찰에게 가로막혔다. 법원이 트랙터의 서울 출입을 불허하면서다. 경찰이 농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장면이 엑스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얼마 안 가 남태령에는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하 20도에 육박했던 동짓날 밤 있었던 경찰과 시민의 대치상황은 ‘MZ 세대’ 여성들의 정치적 행동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영화는 단순히 그날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남태령이라는 공간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각각의 개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담아냈다. 탄핵 국면 속 활약했던 엑스 계정주의 글들과 인터뷰를 함께 엮었다. ‘향연’ ‘에스텔 뉴스계정’ ‘내향인 깃발’ ‘퀴어 유기체 쌍도남’ 등 익명의 계정 운영자들이 남태령을 기록하기 위해 용기 내 카메라 앞에 섰다. 해당 SNS를 엑스가 아닌 예전 이름인 ‘트위터’로, 자신들을 ‘트위터리안’이라고 소개하는 이들은 “분노로 나간 시위 현장이었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경남MBC PD인 김 감독은 2023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로 백상예술대상 교양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12·3 불법 계엄과 관련한 작품을 구상할 때 그가 집중한 건 ‘지역 PD가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김 감독은 “계엄 날 서울에 있지 않았고, 만든다고 하더라도 다른 분들이 훨씬 잘 만들 거라 생각했다”며 “진주에서 매일 보던 농부들이 겪은 남태령의 이야기와 그곳에 사람을 모았던 ‘트위터리안’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는 남태령 이후 조직된 ‘말벌 동지’들과 금속노조 거통고 지회의 연대 모습 등도 담겼다. 김 감독은 “서울 방송에서는 진주 농민 얘기 잘하지 않을 테니 제가 많이 했다”며 웃었다.

“그날 ‘트위터’ 타임라인 보고 감동했거든요. 아이돌 덕질하시던 분들이 농민가를 부르며 울고, 야구 얘기 하시던 분이 전농에 기부하고. 한 사람에게 이런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체험하게 하고 싶었어요.”
영화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후주씨는 충남 아산에서 배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다. ‘트위터’에서는 시위 정보를 전하는 계정 ‘향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바 ‘남태령 대첩’으로 불린 그날, 자신의 SNS를 통해 20·30 여성들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당시 20·30 여성이면서 농부인 사람은 적다 보니까 제가 그사이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단순히 SNS에 글을 공유하는 사람을 넘어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남태령 대첩’ 당시의 기록을 모으는 ‘남태령 아카이빙 심포지엄’을 이끌기도 했다.

김씨는 활동가로서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에서 소설가 한강, 가수 이랑 등과 함께 펠로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남태령의 경험을 ‘해방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글을 선집에 싣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수집하고 보전해 온 토종 씨앗을 은유한 도자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김씨는 남태령을 “새로운 연대가 탄생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태령을 통해 젊은 세대들은 내 일이 아니어도 관심만 있다면 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운동을 오래 해 오신 분들에게는 고립감을 덜고 새로운 세대와 만나며 변화할 기회가 생겼다”며 “연대의 기억을 앞으로도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우발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누군가가 영웅이었다 생각될 수 있지만, 소시민들이 세상을 바꿔낸, 각자가 기억하는 ‘동지의 민주주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남태령’이 영웅 서사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에 김 감독은 “남태령의 정신은 아무리 싫거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아두겠다’는 태도에 있다”면서 “앞으로도 서로의 존재가 있음을 인지하고, 조금은 부족해도 받아들이고 대화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의 막바지, 김 감독은 ‘트위터스러움’을 ‘절박하고 처절하지만 재밌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웃으면서 화내는 ‘트위터리안’들과 함께 낄낄댈 순간이 많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트위터리안’들의 글처럼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오는 20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 서현희 기자 h2@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시진핑 “대만 문제, 잘못 처리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 초래”
- 술 마시고 테슬라 자율주행 켠 만취운전자···음주운전일까? 아닐까?
- “남자는 승진하고 짧게, 여자는 출산 직후 길게”…공무원 사회도 돌봄 격차
- 국민배당금 논쟁에 여당 내에서도 “지극히 옳은 말” “정제된 발언 해야”
- “등초본 떼줘” “테니스장 예약해줘”···카톡에서 말 한마디면 OK~
- 결혼식 축의금 얼마할 지 고민이세요? 요즘 대세는 10만원이라네요
- 이번엔 ‘달이’가 떴다…현대차그룹, 아틀라스 동생 ‘로봇 3종’ 공개
- 연구비·법인 카드로 1억원 유흥업소서 ‘펑펑’…화학연 연구원 적발
- 계란값 비싼 이유 있었네···기준가격 정해 계란값 밀어올린 산란계협회에 과징금 6억 부과
- 무고한 여고생 살해한 장윤기, 이유는 ‘분풀이’ 였다…경찰 “계획된 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