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살다가 집 사려고 했는데"…강북마저 시장 공식 깨졌다 [돈앤톡]
3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 52.1% 역대 '최저치'
매매가 급등에 '월세화' 겹치며 사다리 사라져

서울 주택 시장에서 '전세'가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면서, 전셋값에 일부 대출을 보태 내 집을 마련하는 '사다리 공식'이 작동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1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52.1%를 나타냈습니다. 2012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14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자치구별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전세가율의 하향 평준화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과거 70~80%에 육박하며 매매가와 전세가가 밀착됐던 외곽 지역마저 이제는 50% 선을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과거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정점에 달한 2016년 6월 당시,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72%를 기록했습니다. 자치구별로는 서대문구(79.5%)를 필두로 성동구(79.3%), 성북구(79.2%), 구로구(78.2%) 등이 80%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였습니다. 동대문구(75.4%), 강북구(75.4%), 노원구(75.4%), 도봉구(75.1%), 금천구(75.2%), 중랑구 (75.1%) 등도 75%를 웃도는 높은 전세가율을 보이며, 전세가가 매매가를 밀어올리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그간 상대적으로 높은 전세가율을 유지해온 지역에서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금천구(58.9%), 성북구(58.2%), 서대문·도봉구(55.8%), 강서구(55.5%) 등이 모두 50%대로 주저앉으며 전 지역에 걸쳐 매매가와 전세가 간 현저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세가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매매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꼽힙니다. 전세가가 철저히 '실거주 가치'를 반영한다면, 매매가는 향후 가격 상승 기대감을 포함한 투자 가치와 미래 가치를 포함합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서울 아파트의 투자 가치가 실거주 가치를 압도하며 빠르게 치솟으면서, 전세가가 매매가의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전세의 월세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도 전세가율에 영향을 줬습니다. 과거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는 집주인에게는 무이자 대출, 세입자에게는 저렴한 주거 비용이라는 상호 이익이 맞물린 제도입니다. 하지만 최근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이 급증하면서 임대인의 셈법이 달라졌습니다. 늘어난 세금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해 실질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입니다. 이는 전세가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동력을 약화해 결과적으로 낮은 전세가율을 고착화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낮은 전세가율이 구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인지, 수급에 따른 흐름인지를 두고는 미묘하게 시각차를 보이면서도, '전세가 사다리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현재의 낮은 전세가율을 일종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수석위원은 "과거에는 전·월세 비중이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며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진 데다, 보유세 등 주택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임차인이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특히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아파트는 이제 전세가 주거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현재의 현상을 수급 불균형에 따른 후행적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송 대표는 "과거에는 다주택자 위주로 매매가가 움직였다면 지금은 실거주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매매가가 먼저 치솟고 전세가가 이를 뒤쫓아가는 형국"이라며 "향후 전세 물량이 축소되고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 전세가가 결국 매매가를 다시 추격하며 격차를 좁힐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송 대표 역시 전세가 '사다리'로서의 기능은 상실해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전세 사다리를 타려는 사람은 수천 명인데, 시장에 놓인 사다리(전세 물량)는 열 개뿐인 상황"이라며 "전세가율이라는 수치를 떠나 전세 공급량 자체가 줄어든 것 자체가 사다리를 끊어놓은 본질적인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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