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에도 "2000만 원짜리 일자리"… 72세 영복씨가 매일 공원을 찾는 이유

박경담 2026. 5. 1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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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의 노동]
노인일자리 다니는 임영복·한삼분
공원 닦듯이 쓸고 놀이터 안전관리
건강 지키고 친구 사귀는 어르신들
질 낮다고? "젊을 적 일보다 소중"
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4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우암어린이공원을 청소하고 있는 어르신들.

4일 오전 10시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우암어린이공원. 나무로 둘러싸인 축구장 절반 크기의 공원은 어린이집과 놀이터를 품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나와 뛰어노는 아이들 곁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70~80대 어르신 다섯 명이 연신 빗자루로 공원 바닥을 닦듯이 쓸었다.

소일거리 삼아 하는 봉사 활동이 아니다. 하루 세 시간, 한 달에 열흘 일하면 월급 29만 원을 받는 엄연한 일자리다. 노인일자리 중 하나인 공원 청소 등 공익 활동 업무는 월급이 적고 질 낮은 일자리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정작 당사자인 어르신들이 업무를 대하는 자세나 일을 하면서 느끼는 애환은 다른 직업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영복(72)·한삼분(87)씨는 우암어린이공원의 청소를 맡은 지 각각 3년과 9년이 됐다. 임씨는 젊은 시절 개인택시 기사, 건설 현장의 배관 시설 설비 업무 등을 하며 3남매를 키웠다. 한씨 역시 40대에 남편을 여의고 3남매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공장, 슈퍼, 페인트공 등 궂은일을 해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후 생업전선에선 물러났으나 여전히 몸은 근질근질했다. 그때 주민센터에서 청주우암시니어클럽을 소개해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 중 하나다. 두 사람은 소득, 자산, 부양가족 여부 등 심사를 거쳐 새 직장에 취직하게 됐다.


청소라고 얕봤다간 실례

4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우암어린인공원을 청소하고 있는 어르신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청소라고 여기며 이들의 업무를 얕보는 건 실례다. 요즘에는 비질을 하고 뒤돌아보면 다시 떨어지는 꽃가루를 해치우느라 정신없다. 일이 가장 몰리는 시기는 늦가을이다. 업무 시간 내내 쓸어도 다음 날 발이 파묻힐 정도로 낙엽이 쌓인다. 낙엽으로 종량제봉투 100리터짜리보다 큰 마대자루를 두세 개씩 채우고 나면 등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놀이터를 청소할 땐 바닥에 깔린 고무 탄성 매트가 파인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안전 관리자 역할도 맡는다. 아이들이 구멍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고마움을 느끼는지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곤 한다.

한씨는 "아이들이 공원 놀이터, 잔디밭에 오니 안 치울 수가 없다"며 "그 위에서 노는 모습을 쳐다보면 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청주우암시니어클럽의 김가애 팀장도 "어르신들이 공원을 싹 치우시니 어린이집에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쉬운 일이 없는 건 아니다. 공원에서 밤에 술을 마신 후 놓고 간 음식물 쓰레기, 풀 위에 버려진 개똥 등을 치울 때면 속상하다. 일부러 깨뜨린 듯한 술병이 뒹굴 땐 화도 난다. 아이들까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코파이, 캔커피 등 간식거리를 갖다주며 감사함을 전하는 동네 주민들이 있어 힘을 낸다.


친구에게 한턱, 부러움 사는 노인일자리

4일 청주우암시니어클럽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영복(오른쪽)씨와 한삼분씨.

다른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어르신들도 월급날을 가장 기다린다. 월 35만 원의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 월급을 합쳐 병원비, 생활비로 쓰고 대학생 손주들에게 10만 원씩 쥐여주기도 한다. 가끔 친구들에게 밥을 사는 날에는 부러움을 산다. 한씨는 "옛날이라면 고려장을 했을 텐데 이 나이에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더 있다. 세 시간 동안 몸을 움직여 신체 건강에 좋고, 시시콜콜한 얘기 하나라도 나눌 동료가 있어 주변 친구들이 느끼는 적적함도 덜하다. 실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 1월 발표한 '2025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를 보면 일을 하는 어르신은 상대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선 노인일자리에 참여한 어르신 중 매일 걷는다고 답한 비율은 41.3%로 비참여자 29.8%보다 컸다. 또 규칙적으로 식사한다는 비율은 참여자가 77.4%로 비참여자 71.6%를 웃돌았다. 자신이 얼마나 살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묻는 주관적 기대수명 역시 참여자가 86.75세로 비참여자 85.90세보다 높았다. 노인일자리 참여자, 비참여자를 각각 3,000명씩 조사한 결과다.

임씨는 "이 일을 월급 29만 원짜리로만 보면 가치가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건강, 동료와의 교류 등 모든 걸 따져보면 2,000만 원은 족히 되는 일자리"라며 "가족을 위해 일한 젊었을 적과 비교하면 돈은 적어도 나를 위한 내 일이라 더 소중하다"고 웃음 지었다.

청주=글·사진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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