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철 더봄] '신용문객잔’의 그곳···2000년 버틴 옥문관의 신비
옥문관 명칭의 유래
둔황 수호의 북쪽 요새
해수면보다 낮은 아시아 우물
투루판의 찬란한 고대 유적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폐허로 우뚝 버티고 있는 토성을 보면 먼저 규모에 놀란다. 낮이면 최고 50℃까지 올라가는 뜨거운 사막에 이런 건물을 지어 동서 교역을 중계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옥문관은 타클라마칸사막의 남쪽 대표적인 옥 산지인 화전(Hotan)에서 중원으로 옥이 들어오는 관문이었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인 특히 한족의 옥 사랑은 매우 강하다. 그래서 옥은 품질에 따라 엄청나게 귀하게 여겨져 장식품·제례용품·기념품 등으로 애용되고 있다. 1992년 서극 감독이 연출하고 양가휘·장만옥·임청하·견자단 등이 출연했던 영화 <신용문객잔>은 사막과 변방의 황량한 풍경을 재현하는 데 옥문관의 풍경과 역사적 이미지를 차용했다.
실크로드의 핵심 관문 옥문관
전한 초기부터 둔황을 중심으로 변경을 지키기 위해 남쪽에는 양관을 짓고 북쪽에는 옥문관을 건설했다. 옥문관은 간쑤성 둔황시 북서쪽 약 98㎞ 지점,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이 만나는 하서회랑의 서쪽 끝, 소륵하 남쪽에 위치한다. 해발고도는 1100~1200m 정도이다. 정확한 좌표는 북위 40° 19′ 59″, 동경 93° 49′ 00″이다.
옥문관은 단순한 국경 요새를 넘어 동서 문명 교류의 상징이자 실크로드의 핵심 관문이었다. 한·당 시대부터 현대까지 옥문관은 군사적·경제적·문화적·지리적 측면에서 중국과 서역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옥문관 유적은 단일 건축물이 아니라 거대한 성곽으로 이루어진 군부대이자 여러 성곽과 장성 유적의 집합체이다.

2000년 세월 버틴 황토 성벽의 위용
옥문관의 주 성곽인 소방반성과 대방반성의 두 고성이 있고 소방반성은 사각형의 토성으로 동서 24.5m, 남북 26.4m, 높이 약 10m의 황토 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은 상부 너비 3m, 하부 너비 5m로 북문과 서문이 각각 설치되어 있다.
옥문관 일대에는 18개의 성벽, 80여 개의 크고 작은 봉수대가 분포해 있었으며 봉화제도를 통해 적정에 따라 봉화용 나무의 규모와 점화 횟수를 달리했다. 한나라 시기에는 한장성이 옥문관을 중심으로 동서로 150㎞ 이상 이어졌으며 성벽은 갈대·모래·자갈을 섞어 쌓아 건조한 기후 덕분에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원형이 남아 있다.
이들 유적은 실크로드의 관문으로서 군사적·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며 현재는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1907년 영국 탐험가 마크 아우렐 스타인이 소방반성에서 옥문도위라는 문자가 적힌 목간을 발견함으로써 이곳이 옥문관임이 확정되었다. 이후 중국 고고학자들이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의미가 큰 것은 한대에 만들어진 종이였다. 이것은 채륜이 만든 종이보다 약 1세기가 앞선 것으로 중국 제지술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옥문관을 넘는 것은 곧 중국 문명권을 벗어나 미지의 서역으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출새, 새외라는 표현이 생겨났으며 실크로드를 오가는 대상·사신·승려들은 이 관문을 넘으며 각오와 비장함을 다졌다. 문학적으로도 옥문관은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앞에서 당나라 시인 왕지환과 왕한의 변새시를 소개하였다. 여기서는 이백의 <관산월>을 감상하자.
명월출천산(明月出天山) 밝은 달은 천산 위로 떠올라
창망운해간(蒼茫雲海間) 넓고 아득한 구름바다 사이에 걸려 있네
장풍기만리(長風幾萬里) 수만 리 밖에서 길고 긴 바람 불어와
취도옥문관(吹度玉門關) 옥문관을 넘어 불어오누나.
한하백등도(漢下白登道) 한(漢)의 군사들이 백등산(白登山, 山西省)길로 내려오고
호규청해만(胡窺靑海灣) 호족(胡族)은 청해만(청해성)을 엿보네.
유래정전지(由來征戰地) 예로부터 전쟁터에 원정(遠征)을 가면
불견유인환(不見有人還) 살아서 돌아간 사람을 보지 못했네.
수객망변색(戍客望邊色) 수 자리 병사는 변방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귀다고안(思歸多苦顔)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괴로운 얼굴을 짓고
고루당차야(高樓當此夜) 고향의 높은 누각에는 이 밤에도
탄식미응한(嘆息未應閑) 탄식소리 끊이지 않네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옥문관은 주변에 갈대와 사막 식물이 드문드문 자라고 멀리 지평선이 펼쳐진다. 이 일대는 신기루 현상이 자주 목격될 정도로 건조하고 여름철에는 기온이 40℃를 넘나드는 혹서가 지속된다.
운전기사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3시간 뒤에 데리러 오라고 계약한 뒤 넉넉하게 물과 먹거리를 준비하여 옥문관을 기점으로 타클라마칸사막에서 트레킹을 시도하였다. 옥문관이 가물가물하게 거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었다. 한낮의 지글지글한 태양 아래 가슴 속 심화(心火)를 태워버리고 싶었다.
원둘레로 지평선이 보이는 곳, 거기에는 살아있는 생명 자체가 신비이다. 나의 존재 그 자체가 우주의 존재이고 생명의 존재이며 그 자체로 삶의 가치다. 철저하게 나의 아집을 버리자. 내게 주어진 행복한 조건 충분하게 발휘하고 성실하게 살자. 군자답게 살자. 사막의 열기를 품고 치열하게 살아보자. 다시 더 의연하게 울지 말자. 옥문관으로 돌아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이 길을 기억할 것이다.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갈꽃이 바람에게
애타게 몸 비비는 일이다
저물녘 강물이
풀뿌리를 잡으며 놓치며
속울음으로 애잔히 흐르는 일이다
정녕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산등성이 위의 잔설이
여윈 제 몸의 안간힘으로
안타까이 햇살에 반짝이는 일이다

이제 사막의 신기루 투루판으로 가자. 둔황 옥문관에서 투루판까지는 약 600㎞, 10시간 정도 느린 기차를 타고 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북쪽에는 천산산맥의 설산과 험준한 산맥이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고비사막의 광활하고 황량한 풍경과 웅장한 자연을 감상하는 재미가 그만이다.
광대한 땅 신장성
160만㎢ 광대한 땅. 중국 국토의 6분의 1이다. 이곳은 사막과 험난한 산맥으로 형성되어 있다. 천산산맥은 전장이 2500㎞나 된다.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이 천산의 남로를 따라 서역으로 이어진다. 영원처럼 이 길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일어난다.
흔히 중원이라고 하는 허난성 등지의 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많은 이민족이 있고 지금은 대량의 유전이 발굴되는 등 다양한 물산이 매우 풍부하며 땅은 한반도보다 10배나 넓은데 인구는 고작 2000만명 정도이다. 그 가운데 투르크계인 위구르족이 약 800만명이다. 이들은 한때 강력한 왕조국가를 세우기도 했지만 중국과 몽골 등의 수없이 많은 침략으로 현재는 중국의 자치구로 남아 있다.
위구르라는 이름은 연맹·군집의 뜻이다. 흉노의 후예로서 흉노 공주와 이리의 교합으로 생겨났다는 설화가 있다. 흉노제국(BC 4세기~AD 155년) 소왕국 난립(155~550년), 돌궐제국(550~740년), 위구르제국(744~840년)의 소왕국 난립(840~1206년), 몽골 시대(1207~1678년), 카파카니드 왕국(1397~1759년)을 거쳐 1759년 청나라에 복속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접수되고 1955년 신장위구르자치구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독립 의지가 여전히 강하며 현재 인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불의 도시 투루판
투루판은 신장성 위구르 타클라마칸사막 북쪽, 천산산맥 남쪽, 성도인 우루무치에서 남동쪽 약 150㎞ 지점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극한의 건조·고온 기후와 독특한 지형을 가진 투루판 분지에 자리하며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으로서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형성한 지역이다.
투루판의 여름은 중국에서 가장 더워 보통 45℃(최고 50℃)를 넘나들고 지표면은 70~80℃를 오르내려 흔히 불의 도시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투루판은 위구르 말로 패인 땅이라는 뜻이며 중국에서 표고가 가장 낮다. 아이딩호의 수면은 -154m로 이스라엘의 사해 다음으로 낮으며 아시아의 우물로 불리기도 한다.
연 강수량은 20㎜ 내외지만 주변의 고산지대 만년설이 녹아내린 지하수를 개발한 특수한 구조의 지하 수도인 카레즈를 이용하여 포도·멜론·면화 등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투루판 포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지구상의 대표적인 장수촌이다.
특히 9세기 이후 위구르족이 정착하면서 이슬람 문화가 확산되었고 위구르족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도시였다. 또한 투루판은 한족·위구르족·몽골족·페르시아인 등이 교류하며 다양한 언어·종교·예술이 융합된 지역으로 발전했다. 투루판 농업연수호텔에 짐을 풀었다. 투루판 근처에는 많은 고대 유적이 있다. 대표적인 명승고적은 다음과 같다.
△고창고성 △교하교성 △세계적 포도 산지 포도구 △서유기와 손오공의 불타는 산 화염산 △베제클리크 천불동 불교 유적 △아스타나 고분의 벽화와 고창국 귀족들 무덤 △이슬람 사원의 첨탑 소공탑 △사막 도보 여행을 할 수 있는 쿰타그 사막 △카레즈 수로 △위구르 전통 마을 등이다. 순서대로 찾아가 보자.
☞목간(木簡)=종이가 발명되기 전 글을 적기 위해 나무를 깎아 만든 얇은 조각이다. 옥문관에서 발견된 목간은 이곳의 정체를 밝히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카레즈(Karez)=건조한 사막 지역에서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에 길게 굴을 뚫어 물을 끌어오는 관개 시설이다. 투루판은 천산산맥의 눈이 녹은 물을 이 카레즈를 통해 공급받아 풍요로운 농사를 짓는다.
chonwangko@naver.com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원주) 겸임교수,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안양대학교 교양대학 교수(학장), 중국 남경대학 철학계 방문학자 및 율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산동성 태산학술원 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녹문 임성주의 삶과 철학>, <중국 고대사상과 제자백가> 등 7권이 있으며 <이정의 신유학>, <정현의 주역> 등 10권의 역서를 냈다. 다산학술문화재단의 <정본 여유당전서> 사업 책임연구원 및 <목민심서> 교감(校勘)에 참여했다. 2015년 율곡학술대상을 수상했으며, 동양철학 및 동서양 철학과 역사를 주제로 한 120편 이상의 전문 학술논문을 발표했다.*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