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패가망신” 호언장담은 어디 가고⋯

-뻔한 피격을 '미상'으로
-조롱거리가 된 한국외교
-가해자의 변호인을 자처
-단호한 행동만이 국격 증명
정부가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 폭발사건에 대해 뒤늦게 외부 타격을 공식 인정했다. "미상의 비행체가 나무호 선미를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했다"는 것이 발표의 골자다. 결론적으로 공격을 당했는데 수단도, 주체도 모두 '미상'이라는 것이다. 나흘 전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피격이 확실치 않다"며 사건을 축소하려는 듯 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다. 육안으로도 선체의 처참한 파공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이 뻔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왜 일주일이나 걸려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피격 일주일 만에 내놓은 발표가 고작 '미상의 비행체'라는 애매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미상의 발사체'라며 눈치를 보던 버릇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반복됐다. 정황상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이 확실한데도 정부는 왜 공격 수단을 '미상'이라는 이매한 표현을 사용해야 했을까.
영국과 프랑스는가 자국 선박이 공격당하자 곧바로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발신하고, 핵항모와 전투함을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여전히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확답을 피하고 있다. 정부의 대처는 비굴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하면서도 항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사 결과 설명을 위해 불렀다"고 설명했다. 오죽하면 사이드 쿠제치 이란대사가 공격 주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한국 외교부에 물어보라"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란의 소행이라 규정했고, 이란 매체조차 자신들의 무력행사를 인정하는 듯한 보도를 내보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이미 지난 6일 "해상 규정을 위반한 한국 선박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보도하며 사실상 공격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 이처럼 정황상 누가 공격했는지는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상황임에도, 정작 얻어맞은 당사자인 한국 정부만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 척하며 '미상'이라는 커튼 뒤로 숨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행체 2기가 1분 간격으로 정밀 타격한 점을 들어 숙련된 조종에 의한 드론 공격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입을 닫는 것은 가해자의 심기를 살피는 저자세 외교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자국 선박이 피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뒤에 숨으려고 하는가. 사고 직후 해수부가 발표한 '피격 추정'이라는 단어가 청와대를 거치며 '선박 화재'로 둔갑한 과정은, 이 정부가 안보 참사를 대하는 불투명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말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릴 당시, SNS에 캄보디아어로 "한국인 건들면 패가망신한다. 빈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한다면 한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올린 바 있다. 캄보디아 정부의 항의를 받을 정도로 서슬 퍼런 결기를 보였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가. 자국민 160명의 생명이 위협받고 운항 선박이 찢겨나간 중대한 무력 도발 앞에서는 왜 그토록 작아지는 것인가. 16년 전 천안함 폭침 때와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편에 서서 팩트를 부정하는 내부의 '환각 상태'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인가. 이대로라면 우리 국민과 선박은 전 세계 바다에서 언제든 공격받아도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국격은 화려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국민이 위협받을 때 국가가 보여주는 단호한 행동에서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나무호에 뚫린 구멍보다 더 깊은 불신과 안보 공백의 구멍을 국민의 가슴에 뚫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미상'이라는 비겁한 단어 뒤에 숨지 마라. 우리 국민을 공격한 세력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고, 가해자가 반드시 '패가망신'할 정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단호한 외교적 대응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한다면 하는' 국가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김경국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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