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90. 대신의 딸 열반에 들다

강시일 기자 2026. 5. 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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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녀 세속의 옷을 벗고, 경주 남산 계곡으로 들어가 수행의 길 끝에 열반에 들다
경주 남산 열반골에서 열반재를 넘어 천룡사로 이어지는 숲길. 강시일 기자

신라시대 부러울 것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믿어지는 고위 관리의 아름다운 여인이 걸었던 열반골의 전설.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고뇌하는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권력과 명예, 사랑과 욕망을 쫓는 본능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굴레에서 오욕칠정에 갇혀 허덕이는 생과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 선명하게 맑아지는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선각자들이 걸어갔던 길을 젊은 여인이 도전하고, 이루어 가는 험난한 과정을 단순하게 그려내는 신라인들이 꿈 꾸었던 이야기. 수천 년을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값의 질문이다.
경주 남산 열반골의 중턱 관음사 앞의 큰곰바위.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용녀의 고민

천년 왕국 신라의 심장부였던 서라벌의 아침은 금빛으로 물든 대궐의 지붕만큼이나 찬란했다. 골목마다 향 내음이 진동하고, 귀족들의 수레바퀴 소리는 번영의 증거처럼 땅을 울렸다. 그 화려한 풍경의 중심에 신라의 최고위 관직인 대신의 외동딸 용녀가 있었다.

용녀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졌다. 비단옷의 부드러움과 산해진미의 풍요는 그녀에게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고, 미모와 지성은 서라벌 청년들의 선망 어린 눈길과 대화 속에 늘 오르내렸다. 그러나 화려한 담장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깊은 안개에 잠긴 듯 고요했으나 수시로 흔들렸다.

용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그것은 물질의 결핍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었다. 대신의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는 매일같이 이어졌지만 술잔이 비워지고 음악이 그친 뒤에 찾아오는 적막은 가혹하리만큼 차가웠다.
열반골 곳곳에 피어있는 꽃. 강시일 기자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용녀를 향해 다가오는 비릿한 눈길들이었다.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의 능선을 바라보며 자문했다. 나와 저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내 아버지가 누리는 권력도 내가 걸친 이 비단도 결국은 흩어지는 연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어느 날 용녀는 저잣거리를 지나다 한 이름 모를 노인의 죽음을 목격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이웃이었을 그 육신이 차가운 흙바닥에 버려진 모습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왕실의 장례식에서 보았던 장엄한 의식과는 다른 날 것 그대로의 죽음이었다.

생의 환희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늙고, 병들고, 죽음의 굴레를 목격한 순간 그녀는 자신이 누리는 모든 영화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느껴졌다. 대신의 딸로서 정해진 삶, 유력한 가문의 자제와 혼인하여 가문을 잇고 명성을 유지하는 삶이 숨 막히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그녀의 침묵을 눈치채지 못한 채 서라벌에서 가장 세도가 당당한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서둘렀다. 혼례 날짜가 다가올수록 용녀의 번뇌는 깊어졌다. 화려한 예복이 몸에 감길 때마다 그녀는 그것이 시신을 감싸는 수의처럼 느껴졌다.
경주 남산 어디서든 길을 찾을 수 있게 길 안내표지가 있다. 열반재의 표지판. 강시일 기자

그녀는 밤마다 남산 고위봉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남산은 신라인들에게 부처의 땅이자 깨달음을 구하는 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곳의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에는 이미 수많은 수행자의 염원이 서려 있었다. 용녀는 결심했다. 세속의 인연이 주는 달콤한 독을 마시는 대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 영원한 진리를 찾기로 했다.

출가를 결심한 날 밤, 용녀는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서라벌 여인들이 그토록 가꾸고 싶어 했던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들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머리카락은 그녀가 지난 세월 동안 짊어지고 있던 대신의 딸이라는 명예와 부귀의 상징이었다. 그녀는 화려한 장신구를 모두 빼내어 상자에 담고, 대신 소박한 무명옷 한 벌을 몸에 걸쳤다. 화려한 가마 대신 자신의 두 발로 걷기로 한 것이다.

새벽 안개가 서라벌의 대문을 적실 때 용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산의 어귀로 발을 내디뎠다. 아버지의 분노와 가문의 수치, 그리고 세상의 조롱이 뒤따르겠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남산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서 이루어갈 열반의 경지였다. 탐욕과 증오, 어리석음의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를 향해 그녀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 신라 대신의 딸로서 가졌던 모든 것을 버린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여정은 훗날 그 골짜기를 열반골이라 부르게 만든 전설의 서막이었다.
경주 남산 열반재 상부에 설치된 신라 대신의 딸 전설 표지판. 강시일 기자

◆흔적: 곰바위

신화가 머물다 간 자리는 시간이 흐른 뒤 유적이 되어 남는다. 용녀가 세속의 번뇌를 뒤로하고 찾아든 남산 열반골은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에 위치한 고위산으로 이어지는 깊은 골짜기다. 서남산의 깊은 품속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이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열반을 갈구했던 수많은 수행자의 숨결이 서린 곳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열반골의 흔적들은 천년 전 신라인들이 바위에 새긴 간절한 구도의 흔적이자 대신의 딸 용녀가 걸어갔을 고행의 길을 증명하는 역사의 이정표다. 묘암, 사자암, 곰바위, 이무기바위 등 맹수의 이름으로 불리는 바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열반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거대한 바위의 형상들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곰바위다. 골짜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바위는 마치 거대한 곰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거나, 혹은 골짜기를 오르는 수행자들을 굽어살피는 듯한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곰바위는 용녀가 수행에 정진할 때 그녀를 짐승들로부터 지켜주고, 때로는 비바람을 막아주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자연이 빚어낸 이 거대한 바위는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심산유곡의 고행 속에서 수행자들이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의지처였을 것이다.
경주 남산 열반골로 접어드는 경주 서남산 용장골 입구. 강시일 기자

곰바위를 지나 고위봉으로 치솟는 고개길이 열반재다. 열반에 이르기 위한 마지막 고행의 길이다. 가시덤불과 자갈이 한 발을 내딛으면 한 걸음 미끄러지는 급경사가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의 딸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버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찾으려 했던 용녀에게 이 골짜기와 열반재의 바위들은 차가운 돌덩이가 아니라 마음을 흔들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정진하게 하는 법문의 구절들이었다.

열반골은 지형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외부에서는 입구가 좁아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와 재를 넘어서면 사방이 병풍 같은 바위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가 나타난다. 이러한 지형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하는 최적의 명상 공간을 제공한다.

신라인들이 왜 이곳을 열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열반골의 흔적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소유보다 존재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 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건네는 무거운 질문이다.
경주 남산 열반골의 이무기바위. 강시일 기자

◆스토리텔링: 대신의 딸 열반에 들다

서라벌의 화려한 등불이 꺼지고 고요한 달빛만이 남산을 비추던 어느 깊은 밤, 열반골의 작은 토굴 속에서는 한 여인의 치열한 싸움이 종지부를 찍으려 하고 있었다. 출가한 지 어느덧 수십 성상, 대신의 딸로서 누렸던 보드라운 피부는 거친 바위 질감을 닮아갔다. 옥가락지를 끼었던 손가락은 매일 같이 씻은 차가운 계곡물에 마디가 굵어졌다. 용녀는 이제 더 이상 서라벌의 귀족 영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직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수행자일 뿐이었다.

열반골의 수행은 가혹했다. 겨울이면 고위봉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이 토굴 안까지 밀고 들어와 뼈를 깎았다. 여름이면 눅눅한 습기와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마음의 평정을 흔들었다. 하지만 용녀를 가장 괴롭힌 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 아버지가 권하던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 비단옷의 감촉, 그리고 버리고 온 이들이 보낼 원망의 눈초리였다.

그것은 끊어내려 할수록 더욱 질기게 감겨오는 번뇌의 사슬이었다. 용녀는 그럴 때마다 곰바위 아래에 앉아 폭포수 소리에 마음을 씻어내며 화두를 놓지 않았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육신은 투명해질 만큼 야위어갔지만 눈빛만큼은 고위봉 너머 새벽별보다 더 뚜렷하게 빛나기도 하며 깊어졌다. 용녀는 토굴 앞 평평한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지막 정진에 들어갔다. 며칠이 지났을까. 배고픔도, 추위도, 심지어는 자신의 숨소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깊은 선정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인공지능 AI가 그린 열반에 드는 용녀의 그림.

그 순간 그녀의 귓가를 맴돌던 계곡물 소리가 거대한 우주의 법문으로 변하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은 머물지 않기에 깨끗하고, 바람은 형체가 없기에 자유롭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가 그녀의 온몸을 관통했다.

그 찰나의 순간 용녀를 억누르던 모든 번뇌의 사슬이 끊어졌다. 나라는 고집, 소유하려는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한낱 아침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녀의 의식은 열반골의 바위를 넘어 남산의 능선을 타고 마침내 무한한 허공으로 확장됐다.

그날 새벽 열반골 전체가 신비로운 보랏빛 서기로 가득 차 올랐다. 곰바위는 마치 살아있는 듯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용녀의 육신은 그 자리에 고요히 머물러 있었으나 그 안의 영혼은 이미 생사를 초월한 빛의 기둥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마을 사람들이 서광을 보고 열반골을 찾았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가부좌를 튼 채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는 용녀의 법구였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깊은 단잠에 든 아이처럼 평온했다. 주변에는 계절을 잊은 이름 모를 산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대신의 딸로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부귀영화를 거름 삼아 그녀는 끝내 열반이라는 가장 고귀한 꽃을 피워낸 것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버린 것은 보잘것없는 세속의 껍데기였고, 그녀가 얻은 것은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영원한 자유였다.

용녀는 자신의 온 삶을 던져 증명해 보였다. 바람이 열반골의 숲을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육신을 벗고 빛이 된 한 여인의 장엄한 승전가를 듣게 된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찰나가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열반의 소리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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