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튜브보고 분노해 ‘정의 구현’하다 피고인 신세…[가짜 정의 ‘온라인 분노 비즈니스’ 실태 추적]
(3) 손쉽게 동원되는 사이버 훌리건 - 렉카채널 댓글 3.6만건 분석
대부분 벌금형… 실형선고 0건
신상공개 피해자 정보 무단유포
실제 연락해 “돈 보내라” 협박도
정의구현·피해회복 뒷전
진짜 범죄 피해자에겐 무관심
범인사형·역겹다 등 분노집중
사적제재 위한 ‘박제방’까지
텔레그램·X 등에 300여명 모여
제재사각지대서 정보 공유·확산

특별취재팀=노지운·이현웅·노수빈·김혜웅·이은주 기자

“오래간만에 제대로 일한 공무원 아니냐? 정의 구현했다고 ‘깜빵(감옥)’에 보내?”
지난 4월 24일, 1년 전 유튜버 ‘전투토끼’ 부부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올라온 영상에는 “(해당 부부를) 오는 8·15 광복절 특사로 풀어줘야 한다”는 댓글이 새롭게 달렸다.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 등의 신상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의 신상까지 공개한 ‘사이버렉카(사이버레커)’ 유튜버 ‘전투토끼’와 공무원 신분을 활용해 일반인 신상을 빼돌린 그의 아내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돼 2025년 5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그들은 ‘정의로운 부부’였다.
‘사적 제재’를 앞세워 무분별한 신상공개에 나섰던 전투토끼 부부의 곁에는 그들에게 열광하던 ‘성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상을 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신상이 공개된 이들을 찾아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분노 비즈니스’는 ‘분노’라는 미끼를 던지는 사이버렉카와 이를 덥석 물어버린 시청자가 늘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문화일보 특별취재팀은 사이버렉카에 선동된 ‘사이버 훌리건’의 기원을 찾기 위해, 무고한 이들을 가해자로 둔갑시킨 영상을 보고 2차 가해를 저질러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의 판결문 10건을 입수했다. 사이버렉카 채널이 올린 83개 영상 속 댓글 3만6120건을 수집해 분석했다.

◇“네 자식도 성범죄 당해라”…299회에 걸친 저주와 협박= 사이버렉카의 무분별한 신상 공개로 인해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잘못 알려진 이들은 영상 공개 이후 시청자들로부터 명예훼손과 스토킹, 협박 등의 2차 피해도 입어야 했다. 입수한 판결문 10건 중 8건의 범행이 무고한 피해자들의 신상을 SNS에 무단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사이버렉카 채널의 내용을 그대로 온라인에 게재하거나 다수의 이용자들이 몰린 커뮤니티에 이를 재업로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2개는 공갈미수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그리고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건이었다. 사이버렉카의 영상이 온라인을 넘어 현실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범죄로 손을 뻗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표적으로 전투토끼 등의 시청자였던 김모 씨는 해당 채널에서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에게 한 달 동안 299회에 걸쳐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연락을 멈춰달라는 피해자의 읍소에도 김 씨는 “맨입으로? 계좌 보내줄게, 성의로 20장만 보내봐”라고 답하며 협박을 이어갔다. 또 다른 시청자는 피해자 가족에게 13일 동안 75회가량 연락을 지속하며 “자식도 꼭 44명한테 성폭행당해라”라며 수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피해자의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장 홈페이지에 “강간범 부모가 운영하는 곳이 맞느냐”는 게시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다만 이들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없었다. 9건의 판결은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4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공갈미수 및 스토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청자 또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는 것에 그쳤다.

◇“경찰 필요 없다. 사형시켜라”…분노한 3만 개 댓글 속 지워진 범죄 피해자= 사이버상에서 표출된 분노가 현실에서 악질적인 가해 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취재팀은 딥러닝 기반 사전학습 언어모형인 ‘KoELECTRA’를 활용해 사이버렉카 및 이슈 유튜브 영상 83개의 댓글 3만6120개를 분석했다. KoELECTRA는 네이버 뉴스와 유튜브 동영상 댓글 약 4만 개에 담긴 욕설·모욕 등을 학습한 언어모형이다.
분석 결과, 이들은 “나는 정의롭다”는 인식 아래 ‘화풀이’를 자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3만 개가 넘는 댓글에서 중립(긍정·부정 정서가 65% 이하일 경우에는 ‘중립’으로 분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표출된 감정은 ‘냉소’였다. 총 7318건의 댓글이 이에 해당했다. 이어 분노(6114건)·비난(5003건)·공감(4834건) 순으로 감정 분포 비율이 높았다. 사이버렉카 시청자는 냉소 외에도 분노와 비난 등의 감정을 느끼며 사이버렉카 콘텐츠에 몰입하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들이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분석 결과, 85%의 댓글은 분노 감정을 단순히 표출하는 것에 그쳤다. 신고나 공유 혹은 청원에 참여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것보다 가해자를 향해 “사형시켜라” “역겹다”는 단순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또 68.9%의 댓글에선 피해자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벌인 경우 또한 6%에 달했다. 표면적으로는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에게 분노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댓글 참여자의 대다수는 피해자에게 무관심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강북 모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는 “낯선 여자랑 모텔 가는 것만 봐도 지능 수준이 다 보인다”는 댓글이 달리는 등 피해자를 비하하며 되레 피의자 김소영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여론이 다수 발견됐다.
‘사법 기관’에 대한 불신도 두드러졌다. 3만 개 이상의 댓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찰’로 총 2417회 언급됐다. 경찰은 냉소·분노·비난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모두 상위권을 차지했다. 경찰을 ‘권력에 아부하며 순종하는 조직’으로 비하하는 ‘견찰’이란 표현 또한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댓글 부대에서 ‘박제방’으로 진화하는 사적 제재= 전투토끼 영상에 분노하고, 사이버렉카 채널을 보며 화풀이에 나선 이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댓글창을 중심으로 퍼진 분노는 정보기술(IT) 발전과 SNS 사용 증가를 등에 업고 사적 제재를 일삼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박제방’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대화방이다. 이들은 이용자 추적이 쉽지 않은 텔레그램과 X 등 해외 기반 플랫폼의 특성을 악용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들에 대한 신상을 자유자재로 공유하고 있다.
실제 4월 13일 한 텔레그램 채팅방에는 13세 과외생을 성폭행한 피의자로 알려진 김모 씨에 대한 온갖 불확실한 신상 정보가 난무했다. 국제 수사기관의 이름을 딴 채팅방에 모인 참여자들은 300명 남짓으로 이들은 사건이 보도된 지 단 7일 만에 유튜브 방송에 등장한 김 씨의 얼굴 사진은 물론, 자취방 위치와 여자친구의 SNS 계정까지 성역 없이 공유했다. 김 씨의 신상이 공개되는 틈틈이 해당 텔레그램 채널에선 코인 업체를 홍보하는 게시글도 꾸준히 올라오는 등 수익화 모델도 갖춘 상태였다.
문제는 갈수록 사적 제재를 긍정하고 당연시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4월 12일 한 X 계정은 “이 ×× 신상 까발리고 차라리 감옥 가겠다”고 말하며 김 씨의 얼굴 사진을 게시했다. 그러자 “내가 영치금을 내주겠다” “앞으로도 이렇게 신상을 까야겠다. 모두가 김××의 이름을 아니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갈수록 커지는 분노 비즈니스는 결국 우리 사회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믿을 수 없는 사회’로 전락시키며 십수 개의 ‘사이버 단두대’를 세우고 있다.
노수빈·노지운·이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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