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유려한 춤사위, 세상이 변해도 여전한 인간미
날것 그대로 보는 광부들의 삶
무대 위 어린 빌리의 작은 실수
우아한 발레와 어우러져 인간미
연출가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극장 관객과 호흡은 대체 불가”

탄광촌은 쇠퇴의 공간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은 바로 여기서 끝이 난다. 빌리가 한 마리 백조처럼 도약하는 장면이 아닌, 탄광촌을 뒤로한 채 떠나는 빌리와 그 배경에 걸려 있는 ‘더럼 광부 노동조합’ 걸개를 보여 주며 막을 내린다. 영국 더럼 지역에 실제 존재했던 이 노동조합은 1869년 설립돼 2018년에 해체됐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결국 사라진 것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의 이야기다.
초장부터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빌리 엘리어트’가 너무 잘 알려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만 벌써 네 번째 공연이다. 1980년대 영국의 한 탄광촌에서 발레와 사랑에 빠진 권투 소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외 유명 무용단의 ‘백조의 호수’ 무용수 중 다수가 이 작품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해 ‘빌리 엘리어트 효과(The Billy Effect)’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5년 만에 돌아온 이 대작 앞에서는 그사이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와 뮤지컬을 모두 연출한 스티븐 돌드리 감독은 이번 개막을 맞아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달해도 극장에서 관객이 한 공간에 모여 호흡을 나누며 이야기를 경험하는 일은 대체할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기술 혁명 가운데 ‘대체’된 많은 것들 속엔 극의 중심에 있는 광부들이 있다. 극은 빌리의 성장기를 중심에 두지만, 뮤지컬 넘버 사이사이 등장하는 광부들은 이미 사라진 존재들이다. 1980년대 한 차례 겪었던 일이지만 이제는 ‘노동자 계급’ 자체가 위기인 시대다. 그 사라지는 공동체 한가운데에 빌리가 있다.
광부 아버지와 형이 파업 현장에서 무너져 가는 동안 친구 마이클과 패션쇼를 펼치고(‘너를 보여 줘’),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이 즐겁다며 발레를 하며(‘일렉트리시티’) 나아간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가 빌리에게 남긴 편지를 노래로 옮긴 넘버 ‘더 레터’에서는 “너 자신을 지키라”는 당부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지켜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행히도 그것들은 대체로 관객을 웃게 만드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욕설. ‘빌리 엘리어트’에서 욕설은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탄광촌 노동자의 거친 생활상을 보여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할머니가 가운뎃손가락을 내지르는 장면이나, 빌리가 로열 발레 스쿨의 결과 통지에 외마디로 내뱉는 ‘샹’ 같은 대사는 AI로 보여 줄 수 없는 ‘인간미’에 가깝다.

또 하나, 이 공연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중간중간 담배(물론 공연용 소품이다) 피우는 장면을 넣어 객석을 매캐한 연기로 채운다. 빌리의 발레 선생 미세스 윌킨슨은 수업마다 담배를 피우고 무용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차곡차곡 극장 안을 채운 연기, 그 매캐함은 곧 탄광촌의 자욱한 공기가 된다. 이 또한 돌드리가 말한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 뽀얀 연기 속, 16년 전 ‘1대 빌리’로 활약했던 발레리노 임선우가 ‘성인 빌리’로 돌아와 어린 빌리와 마주 보고 펼치는 파드되(2인무)의 감동은 또 어떠한가.
실은 관람한 공연에서 어린 빌리가 줄넘기 장면에서 약간의 실수를 해 잠시 허둥댔다. 과거에는 춤을 추다 엉덩방아를 찧은 빌리 ‘선배님’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걱정할 건 없다.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니. 객석에서 이 장면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지 않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 공연은 7월 26일까지.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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