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째 동인천역 앞 화덕 지키며… 바삭고소 ‘노스탤지어’를 굽다[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22) 수제 옛날과자점 ‘인천당’… 강동기 대표·표용해씨 부부
온도계 없는 화덕·무쇠틀 고집
뺨에 닿는 감각으로 열기 가늠
기계 대신 손으로 반죽 치대고
방부제·물 한방울도 넣지 않아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변치않는 맛집으로 기억되고파”
세대 넘나드는 단골 손님 가득
市, 백년가게·인천노포로 지정

인천=지건태 기자
인천 중구 용동 경인전철 1호선 동인천역을 빠져나와 대로변 모퉁이를 돌면 시계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낡은 상가와 현대식 건물이 뒤섞인 삭막한 재개발의 전조 속에서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는 변함이 없다.
알싸한 생강향과 구수한 땅콩 냄새를 따라가면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견뎌온 노포 ‘인천당’이 나타난다. 빛바랜 붉은색 간판 아래 삐걱거리는 철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유리관 안에 수북이 쌓인 생강과자, 김과자, 땅콩과자가 투박하지만 정겹게 손님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보물은 유리관 너머에 있다. 58년째 묵묵히 뜨거운 화덕 앞을 지키고 있는 강동기(77) 대표·표용해(73) 씨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강 대표가 과자를 굽는 방식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묵직한 신주(무쇠틀)를 화로에 올린 뒤, 허리를 깊숙이 굽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그러고는 왼쪽 뺨을 틀에 대어본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 열기를 가늠한다. 이곳엔 흔한 온도계 하나 없다. 오직 뺨의 피부가 기억해온 열기, 그 예민한 감각이 과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온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한쪽은 타고 한쪽은 설익어요. 얼굴에 닿는 기운이 내 온도계지.”
강 대표의 말처럼 수만 번 반복된 뺨과의 접촉은 수제과자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바삭함을 찾아내는 장인만의 의식이다. 반죽 역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밀가루와 설탕, 계란을 섞어 직접 치댄다. 숟가락으로 떠올렸을 때 천천히 흘러내려야 알맞은 농도다.
“기계를 돌리면 반죽이 질겨져서 못 쓴다”는 그의 말에서 타협 없는 고집이 읽힌다. 손목이 기억하는 힘과 손바닥이 느끼는 되직함, 그것이 인천당 센베이(옛날 과자)의 비밀이다.
십대 시절부터 과자 공장에서 기술을 배운 그가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은 1968년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6일은 마침 ‘땅콩과자’를 굽는 날이었다. 어버이날(8일)을 앞두고 나이 든 부모님께 추억을 선물하려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강 대표는 5~7㎏에 달하는 신주를 직접 손으로 뒤집어가며 과자를 구워냈다. 뜨거운 열기 앞에서 온종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땅콩과자는 다른 건과자에 비해 두께가 있어 오래 굽기 때문에 무쇠로 만든 신주가 아니면 틀이 금세 변형된다.
“그때는 과자가 귀했고, 없어서 못 팔 정도였지. 명절이면 골목 끝까지 줄을 섰어. 밤을 꼬박 새워 과자를 구워도 모자랐으니까.”
강 대표의 회상 속 동인천은 사람 냄새와 활기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 상인이 이 골목을 오가며 인천당의 과자로 고단한 하루를 달랬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 부모님 손을 잡고 왔던 아이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노스탤지어’다.
인천당이 만드는 과자는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강 대표는 지금도 초창기에 쓰던 무쇠틀과 온도계 없는 화덕만을 고집한다.
“우리는 반죽에 물을 한 방울도 넣지 않아요. 오직 계란으로만 점성을 맞추죠.” 재료의 순도가 맛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감안하면 충분히 ‘장인’으로 추대될 만하지만, 강 대표는 매번 손사래를 친다. “과자를 굽는데 무슨 대단한 기술이 있겠느냐”는 겸손이다. 하지만 나이를 이길 장사는 없기에, 언젠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은 부부에게도 큰 아쉬움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도 기술을 배우겠다며 멀리 전북 군산에서 찾아온 이가 있었지만,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다. 온종일 뜨거운 화덕 앞에서 무거운 무쇠틀과 사투를 벌이는 고된 노동을 요즘 사람들은 감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제 방식을 고수하는 곳은 전국에서 인천당이 유일하다.
인천당의 과자 앞에는 ‘생’(生)이라는 글자가 붙는다.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리가 까다롭다.
“요즘처럼 선선할 때는 이튿날까지 팔 수 있지만, 한여름에는 조금씩 자주 만들어야 해요. 아니면 금방 곰팡이가 피거든요. 그래서 택배나 대량 포장 판매는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어요.”
유치원이나 단체 주문이 들어와도 부부는 정중히 거절한다. “지난해에도 유치원 열 군데서 주문이 왔는데 못하겠더라고요. 우리가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데, 욕심을 부리면 맛이 변하거든요. 하루에 몇백만 원을 번다 해도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정직하게 팔고 싶어요.”
부채과자, 상투과자, 후라이(둥근 모양의 전병)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생강과자’다. 알싸한 생강 향과 달콤함의 균형이 절묘하다. 생강과자는 한 번 구운 것과 두 번 구운 것으로 나뉘며, 색과 맛에 차이가 있다. 최근까지 1000원에 3개를 팔았던 ‘밤빵’은 가게 앞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미끼’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빵을 너무 싸게 판다는 주변 제과점의 반발로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
충남 공주와 경북 문경에서 각각 상경한 청년들이 인천에 뿌리를 내린 지 어느덧 60년. 당시 인천의 가장 번화가였던 동인천의 이름을 따 지은 ‘인천당’은 이제 단순한 과자점을 넘어 지역의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이 됐다. 이날도 보행기에 의지해 먼 걸음을 한 70대 단골손님이 익숙하게 “센베이 한 근(350g) 담아줘요”하며,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건넸다. 그런 그에게 아내 표 씨는 외손주 몫이라며 한 움큼 과자를 더 담았다.
표 씨는 강 대표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이자, 가게를 찾는 이들의 안부를 묻는 ‘골목의 사랑방지기’다. 갓 구워져 나온 과자를 유리관 안에 정갈하게 쌓는 표 씨의 손길에는 단골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는 손님들에게 종종 “우리 집에서 안 사도 되니 제발 우리나라에서 만든 걸 먹으라”고 당부한다. “중국에서 건너오는 과자들은 그 긴 시간을 견디려면 뭔가 들어가지 않겠어요? 우리 과자는 방부제가 전혀 없는 생과자예요. 더운 여름엔 금방 곰팡이가 필 정도로 관리가 까다롭지만, 그만큼 몸에는 정직하죠.”
이런 철학 덕분에 인천당에는 세대를 넘나드는 단골들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왔던 아이가 어느덧 중년이 돼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과자를 사러 온다. 이날도 퇴근길의 한 중년 여성이 익숙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과자 한 봉지를 주문했다. 덤으로 몇 개 더 담아 달라며 흥정하는 모습은 삭막한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 사이의 온기를 느끼게 했다.
인천시가 이곳을 ‘백년가게’와 ‘인천노포’로 지정하며 보존가치를 인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최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의 굉음이 가득한 동인천에서 인천당은 단순한 과자점을 넘어, 지역의 기억을 저장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문화적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부에게 이 골목은 생계 터전을 넘어 가족의 역사이자 삶 그 자체다. 재개발의 바람이 거세지며 이웃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지만, 강 대표는 오늘도 오전 6시면 불을 밝힌다. “큰 욕심은 없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골목을 지키며, 인천 시민들에게 언제든 돌아오면 변치 않는 맛이 있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 부부의 소박한 소망이다.
동인천역 앞을 지날 때 고소한 생강 냄새가 난다면 우리는 안심해도 좋다. 인천의 따뜻한 기억 한 조각이 여전히 그곳에서 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건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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