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요새에서 평화의 들녘으로 [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셋알오름]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6. 5. 1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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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알오름·섯알오름·알뜨르비행장
셋알오름의 고사포진지. 이 아래에 거대한 진지동굴이 형성돼 있다.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자연경관일 것이다. 한반도의 남쪽 끝인 이 땅은 통째 화산섬이어서 육지와는 다른 이국적 풍광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제주 여행 일정을 짠다면 제주의 껍데기만 보는 격이다. 자연경관만큼이나 독특한 제주인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진짜 제주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섯알', '동알', '셋알'의 의미

알뜨르에서 본 산방산. 뒤로 한라산이 겹쳐 있고, 오른쪽은 군산오름과 월라봉이다.

원래 이름이 '절울이오름'인 송악산 북쪽에 절울이와 탯줄처럼 이어진 세 개의 야트막한 동산이 늘어서 있다. 작고 낮지만, 세 봉우리는 저마다 말굽형 화구를 가진 오름이다. 이곳 주민들은 세 오름이 송악산에 붙었다 하여 '알오름'이라 부른다. 산이수동에 가까운 것은 동쪽에 있어서 '동알오름', 알뜨르비행장에 붙은 것은 서쪽에 있어서 '섯알오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알과 섯알 사이에 언덕이 하나 더 보이는데, 두 오름 사이에 낀 이 오름은 '사이'와 '둘째'의 뜻을 가진 제주어 '셋'을 붙여서 '셋알오름'이라 한다.

송악산 북쪽을 가로지르는 최남단 해안로에서 셋알오름 탐방이 시작된다. 탐방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초지대를 따라 이어진다. 들머리에서 조망하는 산방산과 형제섬이 그리 멋질 수 없다. 그 사이로 월라봉(다래오름)과 군산오름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기서 절울이오름을 보면 그야말로 소나무로 가득해서 '송악산'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셋알오름에서 섯알오름(정면)으로 이어진 길. 가운데 넓은 밭이 있다.

동알오름은 탐방로가 없고, 셋알과 섯알오름을 지나 서쪽의 알뜨르로 길이 연결된다. 제주올레 10코스와 겹치는 구간이다. 길이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서 쉬운 산책 수준이다. 셋알과 섯알오름 사이에서 밭지대도 만난다.

가장 큰 동굴진지가 뚫린 셋알오름

일제강점기의 어둡고 쓰라린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인 셋알·섯알오름과 알뜨르는 제주를 대표하는 '다크투어리즘' 코스다. 이 작고 낮은 동산들은 일제가 제주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시설로 여기던 알뜨르비행장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송악산과 함께 오름 전체가 요새화되었다. 세 오름 중 가운데에 있는 셋알오름에 집중된 군사시설은 제주도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셋알오름 아래의 진지동굴. 제주에서 가장 크고 복잡하다.

격자 미로형으로 만들어진 셋알오름 동굴진지는 출입구가 여섯 군데고, 미군의 공중 폭격에 대비해 전투사령실과 병의 숙소·탄약고·연료저장고·비행기 수리공장·어뢰조정실·통신실 등 주요 군사시설을 모두 이곳에 감추었다. 그리고 오름 정상부엔 미군의 폭격기 공습에 대비한 고사포진지도 만들어 놓았다. 고사포는 항공기를 사격하기 위한 것으로, '고각포'라고도 부른다.

원래 이곳의 고사포진지는 1937년 중일전쟁 초기에 전략적 요충지였던 알뜨르비행장을 보호하고자 설치한 것으로, 1943년경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보강했다. 모두 다섯 기의 고사포진지 중에서 네 기는 완공되었으나 나머지 하나는 미완이다. 셋알오름 탐방로에서는 두 기의 포진지를 만나는데, 해방 후에도 남아 있던 포는 폭파해 제거했다고 한다.

셋알오름 위에 구축된 고사포진지.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군사시설이다.

셋알오름을 지나 밭 사이로 난 길을 잠시 걷다 보면 또 하나의 오름을 만난다. 하도 낮아서 그냥 작은 언덕 같은 섯알오름이다. 셋알오름과 거의 하나처럼 붙었는데, 오름 정상이 41m, 오름 자체의 높이가 21m에 불과하다.

섯알오름 서쪽으로 드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알뜨르비행장이다. '알뜨르'는 아래를 뜻하는 제주어 '알'과 벌판을 뜻하는 '드르'가 합쳐진 말로, 상모리 아래의 넓은 벌판을 가리킨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가 제주도민을 비롯한 한국인을 동원해 만든 군용 비행장이다.

송악산 상공에서 본 셋알, 섯알오름과 알뜨르. 뒤로 모슬봉도 보인다.
섯알오름과 감자밭. 가미카제의 제로센이 드나들었을 격납고 앞에서 농민들이 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다시 농경지로 돌아온 알뜨르

1937년에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이 비행장을 전초기지로 삼고 700km쯤 떨어진 중국의 난징을 폭격하고자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여러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일본 본토에서 이륙해 알뜨르에서 한 번 급유한 다음 중국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1938년 11월,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은 오무라 해군항공대를 중국 본토로 옮겼고, 그 후 알뜨르비행장은 훈련용으로 바뀌었다.

격납고 내부. 천장의 홈은 해방 후 쇠붙이가 귀하던 시절, 철근을 빼 간 흔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제는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이곳에서 훈련시켰다. 당시 일본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작고 날렵한 '제로센'이었는데, 항속거리가 길었지만 전투력은 높지 않았다. 알뜨르비행장에는 총 38개의 격납고를 만들었는데, 현재 19개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활주로 터와 지하 벙커도 마찬가지. 하나같이 시리도록 가슴이 아픈 우리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알뜨르비행장은 일제에 빼앗기기 전 원래 소유주의 후손들이 되찾아 농사를 짓고 있다.

알뜨르의 제주 올레 화살표. 얼마 전 고인이 된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만든 이 길은 그녀의 바람대로 수많은 이의 위로와 쉼이 되고 있다.

고통의 기억이란 시간 앞에 무기력한가? 알뜨르는 이제 우리에게 희망 가득한 내일에 관해 이야기하자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관제탑' 또는 '물탱크 받침'이라고도 하는 정체불명의 구조물. 올라서면 조망이 좋다.

Info

교통 모슬포항(운진항)에서 출발해 하모리와 상모리, 산이수동을 거쳐 산방산, 감산리, 안덕계곡과 창천리, 상천리, 하천리, 동광리, 서광리 등 안덕의 동네를 두루 다니는 751-1, 752-2 지선버스가 송악산 입구에 선다.

대정향교.

주변 볼거리

대정향교

바굼지오름 남쪽 자락에 있다. 제주로 유배를 온 추사 김정희가 자주 이곳에 들렀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1846년 김정희는 대정향교의 훈장 강사공의 부탁으로 동채에 '疑問堂의문당'이라는 현판 글씨를 써주었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 항상 의문을 품고 진리를 찾을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 현판의 원본은 제주 추사관에서 볼 수 있다.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명륜당 마당엔 팽나무와 소나무 노거수가 서로 마주 보며 가지를 뻗었는데, 이 두 나무가 추사의 그 유명한 '세한도'에 등장하는 나무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복태네갈치탕 생선구이백반.

맛집

송악산항 선착장에서 가까운 '복태네갈치탕'(064-792-7892)의 생선구이백반이 먹을 만하다. 갈치와 고등어 등 네 종류의 튀긴 생선에 여덟 가지 찬과 국으로 차려진다. 가격은 9,900원으로, 올레꾼들 사이에서 유명한 가성비 맛집이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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