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한번 했는데 다음날 하루 종일 누웠다…쉬어도 낫지 않는 증상, 왜?

최승욱 2026. 5. 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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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수록 악화되고 생각부터 흐려진다…전 세계 최대 6700만 명 추산
에이프런을 두른 중년 여성이 거실에 앉아 쉬고 있다. 만성피로증후군(ME/CFS)은 충분히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탈진과 브레인포그를 특징으로 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반인들은 몸을 움직인 뒤 쉬면 회복된다.

그런데 만성피로증후군(ME/CFS·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은 다르다. 가벼운 외출만으로 몸이 급격히 지치고, 심하면 하루나 이틀 뒤 통증과 집중력 저하까지 한꺼번에 몰려온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단순히 체력이 약하거나 의지의 문제일까. ME/CFS를 아는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운동했더니 머리가 완전히 멈췄다"…왜 이런 일 생기나

이 병은 6개월 이상 심한 탈진이 이어지고 충분히 쉬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일상 활동 능력도 이전보다 눈에 띄게 떨어진다.

현재 진단에서는 '운동 후 상태 악화(PEM·post-exertional malaise)'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로 본다. 여기에 활동 능력 저하, 잠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 인지 기능 저하 등이 함께 나타나는지도 살핀다.

일반인은 운동 뒤 피곤해도 하루 이틀 쉬면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ME/CFS 환자들은 운동이나 외출 직후보다 12~48시간 뒤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통증과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고 머리가 멍해지는 식이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몸이 무너졌다"고 토로한다.

PEM을 유발하는 것은 몸을 쓰는 일만이 아니다. 독서, 대화, 집중이 필요한 업무처럼 정신적 활동만으로도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왜 그럴까. 연구자들은 몸이 에너지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염증 반응과 혈액순환 이상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운동은 원래 몸 상태 유지에 도움이 되지만, 이들에게는 오히려 염증 반응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혈액순환 이상까지 겹치면서 근육과 뇌가 필요한 산소와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배터리가 방전됐는데 충전도 잘 되지 않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겹치면서 가벼운 산책 뒤에도 심한 탈진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몸보다 먼저 뇌가 흐려졌다"…그게 치매랑 다른 이유

ME/CFS에서는 몸보다 뇌 기능이 먼저 둔해지는 일이 흔하다.

"머리에 솜이 들어간 느낌." "생각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브레인포그(brain fog)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생각이 또렷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고, 방금 하려던 일을 잊고, 집중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런 인지 기능 저하는 ME/CFS 환자에서 자주 보고된다.

중년 이후에는 "혹시 치매 초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따라붙기도 한다. 하지만 양상은 다르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뇌세포 손상과 퇴행성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연구자들은 ME/CFS의 브레인포그를 뇌세포가 점차 사라지는 과정이라기보다, 염증·혈류·에너지 대사 이상이 한꺼번에 얽히며 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더 가깝게 본다. 면역 과활성으로 생긴 염증이 뇌에 영향을 주고 혈류가 줄어들면서 세포 에너지 생산에도 이상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치료법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일부 환자에서는 수면·통증·전신 피로 같은 증상이 완화되면서 인지 기능도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냥 피곤한 게 아냐"…왜 이름까지 바꿨나

이 병을 둘러싼 오해는 뿌리가 깊다. '만성 피로'라는 이름 탓에 "게으른 것 아니냐", "의지 부족 아니냐"라는 비난을 받아온 환자들이 적지 않다.

환자단체와 일부 연구자들이 '만성피로증후군' 대신 ME/CFS 또는 ME(근육통성 뇌척수염)라는 이름을 함께 써온 것도 단순 피곤함이 아니라 면역·에너지 대사·인지 기능 이상 등이 함께 나타나는 병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이어진 크림 전쟁 이후 원인 모를 쇠약감과 통증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장기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연구자와 환자단체는 ME/CFS와 유사한 상태였을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 다만 당시 의학 기록만으로 현재의 진단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추정 수준의 해석이다.

1992년 미국 환자운동가 토머스 헤네시 주니어가 나이팅게일의 생일인 5월 12일을 '세계 ME/CFS 인식의 날(World ME Day)'로 만든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었다. 현재 세계 각국 환자단체와 연구자들이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의 생일을 기념일 날짜로 정한 데에는 오랫동안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던 환자들을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

"몸은 나았는데 머리가 안 돌아온다"…롱코비드 뒤 남은 증상들

이 병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만큼 환자 규모도 작지 않다. 일부 환자단체는 롱코비드(코로나19 후유증) 환자 증가를 반영할 경우 전 세계 환자 수가 최대 67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한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1700만 명 수준이었는데, 롱코비드 환자가 급증하면서 수치가 크게 뛰었다.

한국에서도 공식 집계는 없지만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상당수가 진단받지 못한 채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액검사처럼 확정적으로 진단할 단일 검사법이 아직 없어 증상 양상과 함께 다른 질환 가능성도 함께 점검한다.

이런 증상은 국내 연구에서 이미 확인됐다. 국립보건연구원이 참여한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 《감염과 화학요법(Infection & Chemotherapy)》 2025년판에 실렸다. 코로나19에 걸린 이후 롱코비드 증상이 수개월 이상 이어진 환자 66명을 추적 관찰한 연구였다. 환자의 34.8%는 피로를, 30.3%는 기억력 저하를, 24.2%는 집중력 저하를 호소했다.

피로도 아니고 스트레스도 아니라면?

브레인포그와 만성 피로가 모두 ME/CFS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수면 부족,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 빈혈, 갑상선질환, 수면무호흡증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원인들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다만 다음 패턴이 반복된다면 전문의 상담이 필요하다. 충분히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탈진이 6개월 이상 이어지는 경우, 가벼운 활동 뒤 12~48시간 후 증상이 오히려 심해지는 경우, 신체 활동뿐 아니라 독서나 대화 같은 정신적 활동 후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나타난다면 단순한 피로라기보다 몸의 회복 시스템 자체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다.

최승욱 기자 (swchoi6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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