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 골프 오디세이 <272> 골프의 명언을 찾아서, 잭 니클라우스 ①] "통제 가능한 유일한 라이벌은 오직 나 자신뿐"

“내 경력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톰 왓슨, 리 트레비노를 통제할 수 없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The biggest rival I had in my career was me. I couldn't control Ar-nold Palmer, Gary Player, Tom Watson or Lee Trevino. The only person I could control was me).”
‘황금 곰(The Golden Bear)’이란 애칭으로 불린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1940년생)는 메이저 대회 최다승 기록인 18승(마스터스 6승·PGA 챔피언십 5승·US오픈 4승·디오픈 3승)과 그보다 많은 메이저 준우승 19회를 기록한 메이저 무대의 진정한 지배자였다.
PGA투어 통산 승수에서는 73승으로 나란히 82승을 기록한 샘 스니드와 타이거 우즈에 이어 역대 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기록보다 위대한 것은 그 수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타이거 우즈와 함께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추앙받는 니클라우스의 기록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에서 보여준 ‘완벽에 가까운 자기 통제’의 결과물이었다.
1960년대 초반, 세계 골프계는 ‘킹’ 파머의 독무대였다. 대중은 파머의 공격적인 플레이와 카리스마에 열광했고, 그를 따르는 거대한 팬덤 ‘아니의 군대(Arnie’s Army)’는 골프장을 점령했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20대 초반의 청년이 있었다.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에 육중한 체격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표정의 니클라우스였다. 과연 그는 거대한 팬덤과 심리적 압박을 뚫고 어떻게 전설이 되었을까?

약사 아버지와 만능 스포츠맨의 DNA
니클라우스는 1940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다. 약사였던 아버지 찰리 니클라우스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오하이오 주립대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고, NFL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전신인 포츠머스 스파르탄스에서 세미프로 선수로 활약했다. 또한 지역 테니스 챔피언이자 스크래치 골퍼(핸디캡 0)이기도 했다. 니클라우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야구, 미식축구, 육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특히 농구 실력이 뛰어나 고교 시절 오하이오주 베스트 슈팅 가드로 선정되어 대학 팀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으며, 테니스 역시 수준급이었다. 그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10세 때였다. 배구 경기 중 발목을 다친 아버지가 재활을 위해 걷기 좋은 운동인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서 아들을 골프장(사이오토 컨트리클럽)에 데리고 간 것이 계기였다. 여기서 니클라우스는 평생의스승 잭 그라우트를 만나 골프의 기본기를 다졌다.
소아마비를 이겨낸 '괴물' 아마추어
니클라우스는 13세 때 소아마비 증상을 보여 관절이 쑤시고 2주 만에 체중이 9㎏이나 빠지며 운동 능력을 잃을 뻔했다. 그는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이듬해인 1954년 건강을 회복하자 14세의 나이에 오하이오주 주니어 대회 5연패의 시작을 알리는 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 시절 니클라우스는 ‘괴물’ 그 자체였다. 16세 때 오하이오 오픈에서 프로를 제치고 우승했고, 1959년과 1961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을 두 번이나 제패했다. 특히 1960년 US오픈에서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2위를 차지하며 우승자 파머를 2타 차로 위협했다. 당시 벤 호건은 20세의 니클라우스와 36홀을 함께 경기한 후 “오늘 10타 차로 우승해야 했을 아이와 함께 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니클라우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1962년 오크몬트, '빌런'의 대관식
1962년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오픈은 골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당시 니클라우스는 프로 데뷔 첫해를 맞은 22세의 신인이었고, 상대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대 최고의 스타 파머였다. 더욱이 오크몬트는 파머의 고향 라트로브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파머의 홈 코스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갤러리의 편파적인 응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파머에게는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지만, 니클라우스에게는 “뚱보 잭(Fat Jack)” 이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심지어 니클라우스가 퍼팅할 때 발을 구르거나 소음을 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니클라우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갤러리의 적대감조차 경기 일부로 받아들이고, 오직 자기 플레이에만 몰입했다. “집중력은 불안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다(Concentration is a fine antidote to anxiety).” 최종 라운드까지 파머와 동타를 이룬 그는 이튿날 열린 18홀 연장전에서 파머를 3타 차(71타 대 74타)로 누르고 생애 첫 프로 승리를 메이저 우승으로 장식했다.
황금 곰의 파워와 보비 존스의 경탄
니클라우스의 별명 황금 곰은 그의 에이전트 마크 매코맥(IMG 창립자)이 호주 기자 돈 로런스와 인터뷰하던 중 탄생했다. 니클라우스의 짧은 금발 머리와 덩치 큰 체격을 보고 로런스가 “황금 곰 같다”고 표현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별명은 필드를 압도하는 그의 파워 플레이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니클라우스의 브랜드로 발전했다. 1963년 PGA 챔피언십 장타 대회에서 그는 무려 341야드(약 312m)를 날려 우승했다. 당시의 장비(퍼시먼 드라이버와 발라타 공)를 고려하면 믿기 힘든 비거리다. “나는 공을 멀리 보내고 싶을 때 엉덩이를 더 빨리 회전한다(When I want a long ball, I spin my hips faster).” 그의 압도적인 파워와 높은 탄도의 아이언 샷을 본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는 이렇게 경탄했다. “니클라우스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게임을 한다(Nicklaus plays a game with which I am not famil-iar).” 이는 그가 기존의 골프 문법을 파괴하고 재창조했음을 인정한 최고의 찬사였다.

"성공은 자신과 코스라는 두 적수를 관리하는 것"
그러나 그를 진정한 제왕으로 만든 것은 파워보다 더 돋보인 ‘머리’였다. 게리 플레이어는 “니클라우스는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뇌를 가졌다”고 극찬했다. 그는 코스 매니지먼트의 개념을 정립한 선구자였다. 그는 단순한 장타자가 아니라, 코스를 읽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전략가였다. “성공은 게임의 두 가지 궁극적인 적수, 즉 코스와 당신 자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Success depends almost en-tirely on how effectively you learn to manage the game's two ultimate adver-saries: the course and yourself).” 그는 드라이버를 잡을 수 있는 홀에서도 전략적으로 3번 우드나 1번 아이언을 잡아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쫓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다"
니클라우스는 46세이던 1986년 마스터스에서 자신의 여섯 번째 그린 재킷이자, 마지막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정상에서 경쟁했다. 그는 승부처에서 오는 압박감을 오히려 즐겼다. “나는 마지막 날 2타 뒤져 있는 것보다 2타 앞서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쫓기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다. 쫓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가 수많은 야유와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압도적인 연습량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자신감은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이며, 타고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얻고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연습뿐이다(Confidence is the most important single factor in this game, and no matter how great your natural talent, there is only one way to obtain and sustain it: work).” 1960년대 초반, 골프계는 파머의 독무대였지만, 철저한 준비와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황금 곰의 등장과 함께 골프의 역사는 새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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