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밀어낸 멕시코 카르텔… 9·11 이후 美 안보 문법, 트럼프가 다시 썼다

유진우 기자 2026. 5. 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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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보다 펜타닐 사망자가 많아”
美 對테러 좌표, 중동에서 중미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 25년 가까이 이어진 미국 대테러 정책 골격을 올해 다시 짰다.

백악관은 6일(현지시각) 16쪽 분량의 ‘미국 대테러 전략 2026’을 공개하고,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중동 지하디스트 조직 대신 멕시코를 비롯한 서반구 마약 카르텔을 첫 번째 표적으로 명시했다. 9·11 이후 미국 안보전략의 무게중심이 사실상 처음으로 중동 사막에서 미국 남부 국경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악관 대테러조정관 세바스천 고르카가 미국 뉴욕주 대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전략 수립을 주도한 백악관 대테러조정관 세바스천 고르카는 이날 기자 회견에서 우선순위를 바꾼 근거를 희생자 수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분쟁에서 잃은 미군 장병보다 카르텔이 들여온 마약으로 사망한 미국인이 훨씬 많다”고 했다. 실제 수치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3년 펜타닐 관련 약물과다 사망자는 7만2776명, 2024년에는 4만8422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미국인 200여명이 펜타닐 한 가지 약물때문에 숨졌다는 의미다. 미국 내 펜타닐 사망자 수는 2023년 한 해로 이미 베트남전 미군 전사자(약 5만8000명)를 크게 넘어섰다.

카르텔이 보여주는 폭력 양태도 이미 단순 범죄 조직 차원을 넘어 중동 테러리스트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올해 1월 보고서에서 멕시코 카르텔이 2020년부터 상용 드론으로 폭발물을 투하하고, 사제폭발물(IED)과 휴대용 로켓발사기(RPG)를 동원한 매복 공격, 민간인 대상 잔혹 행위를 벌이는 등 탈레반과 IS에 가까운 전술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2022년 3월에는 카르텔 델 노레스테(전 로스 세타스)가 멕시코 누에보라레도 미 영사관을 총격과 수류탄으로 공격했다. 2023년 마타모로스에서는 미국인 4명이 납치돼 그중 2명이 살해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 서명한 행정명령 14157호에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 카르텔이 사실상 행정·치안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2월 20일 이런 누적된 증거를 발판 삼아 8개 카르텔을 한꺼번에 외국테러조직(FTO)이자 특별지정 글로벌 테러리스트(SDGT)로 지정했다. 여기에는 시날로아 카르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 카르텔 델 노레스테, 걸프 카르텔, 신가족 미초아칸, 카르텔 연합 등 6개 멕시코 조직과 베네수엘라 발 트렌 데 아라과(TdA), 엘살바도르계 갱단 MS-13 등이 포함됐다. 이번 16쪽 분량 전략문서는 이들 카르텔에 대한 자금줄 차단, 마약 운반선 직접 타격, 군 자산 동원을 미국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라틴아메리카 해역에서는 9월 초부터 이어진 미군의 카르텔 의심 선박 폭격으로 지금까지 191명이 숨졌다.

두 번째 표적은 기존 이슬람주의 테러 조직들이다. 보고서는 알카에다, 특히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와 이란 고원지대 일대 IS 호라산지부(ISIS-K)를 미국 본토 공격 의도와 능력을 가진 중동에서 가장 큰 위협 세력으로 지목했다. 전문가들 역시 셰일혁명 이후 중동이 차지하는 전략적 비중은 낮아졌지만, 이란의 핵·미사일 능력과 헤즈볼라 등 대리 무장세력, 호르무즈해협·홍해 항행 위협이 여전한 핵심 변수로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국무부는 무슬림형제단 이집트·요르단·레바논 지부를 외국테러조직로 지정한 데 이어, 다른 단체를 추가로 지정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마지막 세 번째 축은 미국 내 폭력적 좌파 극단주의자다. 미 행정부가 국가 대테러 전략 차원에서 좌파 극단주의자를 핵심 위협으로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악관은 보고서에서 “반파시스트(안티파·Antifa), 무정부주의자, 급진적 친트랜스젠더 이념을 가진 집단을 신속히 식별하고 무력화하겠다”고 적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6일 분석 기사에서 안티파가 중앙 지도부 없는 분산형 활동가 네트워크에 가깝다는 미 법집행기관의 일반적 평가를 인용해 “보고서가 조직이 명확한 테러집단을 다루던 기존 모델을 넘어 이념과 운동 자체를 대테러 대상으로 끌어들였다”고 풀이했다. 이번 변화가 시민권과 표현의 자유, 정보기관 권한 확대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는 분석도 나왔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공격 현장을 소말리아 보안 요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리즘 관점에서 유럽을 보는 시각도 트럼프 2기 세계관을 반영해 수정했다. 보고서는 유럽을 미국의 가장 중요하고 장기적인 대(對)테러 파트너로 정의하면서도 “테러 표적이자, 테러 위협의 배양지(an incubator of terror threats)”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질적인 문화가 번지고, 지금 같은 유럽 정책이 이어질수록 더 많은 테러가 일어날 것(the more terrorism is guaranteed)”이라는 표현까지 담겼다. 진보 성향 영국 가디언은 7일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을 넘어 이민정책과 다문화주의 자체의 전환을 안보 의제로 들이밀었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르카 대테러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대로 미국은 동맹의 진정성을 ‘무엇을 가지고 오느냐’로 판단한다”며 테러리즘에 관해 동맹국에 더 많은 부담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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