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부인과 진료 안 보는 산부인과 의사들···고위험 분만 병원은 인력난

이혜인 기자 2026. 5. 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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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전문의를 따고도 분만 병원이 아닌 일반 의원 근무를 택하는 의사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업무준비를 위해 이동하는 모습. 성동훈 기자

청주의 한 산모가 임신 29주차에 응급 분만이 가능한 병원을 제때 찾지 못해 태아를 잃은 사건을 계기로 지역의 분만 인프라 붕괴의 심각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산부인과 간판을 내걸지 않은 채 다른 형태의 의원에서 진료하는 의사들이 해마다 늘고, 지역의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 거점인 권역모자의료센터조차 상당수가 정부가 정한 필수 인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국회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산부인과 전문의 가운데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일반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인원은 2023년 1317명에서 2025년 1384명으로 67명 증가했다. 전공의 수련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지만 산부인과 대신 검진이나 시술 등 비급여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의원에서 근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3년간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전문의 증가는 내과(83명), 산부인과(67명), 응급의학과(65명) 순으로 많았다. 이른바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주로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치료하는 지역 거점병원은 제 기능을 위협받을 정도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가운데 11곳이 정부가 정한 산과 전문의 최소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권역모자의료센터는 지역에서 24시간 고위험 산모 분만과 신생아 집중치료를 담당하는 핵심 거점으로, 정부 지침상 산과 전문의 4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충북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은 산과 전문의가 각각 1명뿐이었고, 고려대안암병원·아주대병원·가천대길병원·단국대병원·인제대해운대백병원은 2명에 그쳤다.

24시간 진료체계를 유지하려면 교수진뿐 아니라 전공의와 전담전문의 등 다층적인 인력 구조가 필요하지만, 신생아 진료를 맡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도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가운데 17곳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거나 1명뿐이었다. 현재의 진료를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고위험 신생아 진료를 이어갈 후속 인력 양성 기반도 취약한 실정이다.

고위험 신생아를 지역 내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거점 의료기관인 지역모자의료센터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전국 33곳 가운데 25곳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었고, 나머지 기관도 대부분 1~2명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는 권역모자의료센터에 연간 6억원의 운영비와 NICU 병상 유지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산과 의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 지원만으로는 인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시간 당직과 응급수술, 높은 의료사고 소송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근무 환경 때문에 젊은 의사들의 기피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고위험 분만과 권역 모자센터 근무는 업무 강도가 높고 법적 부담도 크다”며 “근무 강도 조절, 법적 보호, 교육·경력 인센티브, 지역 정주 여건 개선을 포함한 패키지 접근이 병행돼야 젊은 의사들이 이 분야를 진지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청주 사건 이후 병원 간 전원체계와 분만 취약지 대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있으며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선민 의원은 “고된 업무와 의료소송 부담으로 대형병원 의사들이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하면서 대형병원에서는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며 “복지부는 단순한 수가 인상에 그치지 말고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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