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 들어온 AI…“기술보다 중요한 건 약사의 판단”

최재경 기자 2026. 5. 1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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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책임·윤리 강조…“AI 활용 능력이 경쟁력 될 것”
경기약사학술제 심포지엄서 ‘AI 시대 약사의 미래’ 집중 논의
김명규 이화여대 약학대학. 약사공론DB.

AI 시대를 맞은 약국은 지금 어디에 와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는 약사 직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지난 10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제21회 경기약사학술제에서는 'AI 시대, 약사의 미래를 설계하다'를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이 진행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인공지능(AI)이 약국 현장과 약사 직능에 미칠 변화와 AI 기반 약료 서비스의 가능성·한계, 법적·윤리적 책임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첫 연자로 나선 김명규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약사 전문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AI가 대체하는 것은 약사 자체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처방 입력, 재고 관리, 조제 자동화 등은 AI와 기계가 상당 부분 수행할 수 있지만, 환자 개별 상황을 고려한 판단과 공감, 복약 순응도 향상을 위한 소통은 인간 약사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환자는 단순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같은 질환이라도 식습관과 병용약물, 문화적 배경, 부작용 반응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AI의 평균적 답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AI의 '프롬프트 의존성' 문제도 제기됐다. 환자가 AI에 불완전한 정보를 입력할 경우 잘못된 답변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전문가는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알지만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며 "약사는 AI 답변의 오류를 검증하고 환자 맞춤형으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AI의 '환각(Hallucination)' 문제도 지적했다. 실제 논문 기반 AI 검색 서비스조차 검색 범위와 조건에 따라 상반된 결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며 "약사는 보다 폭넓은 근거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AI는 감정 공감과 신뢰 형성, 윤리적 판단, 최종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며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과 인간 중심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발표한 유상준 약학정보원장은 '안전하고 유용한 약사용 AI 개발'을 주제로 실제 약국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AI 개발 방향을 소개했다.

유 원장은 "AI는 약사에게 유용해야 하고 동시에 안전해야 한다"며 "단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실제 약국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IT·헬스케어 기업들과 논의를 진행해온 경험을 소개하며 "공공 AI 프로젝트 상당수가 실패한 이유는 '가짜 문제'를 풀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약사들이 실제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약학정보원은 현재 PM+20 시스템에 AI 기반 처방 점검 기능 도입을 추진 중이다. 유 원장은 "약사의 법적 책임과 업무 시간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처방 점검 영역의 수요가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AI 안전성을 위해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 구조를 강조했다. AI가 판단을 내리더라도 최종 검증과 수정은 반드시 약사가 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시연에서는 조영제 CT 검사 예정 환자의 약물 위험성, 서방정 분할 금기, 여성 환자의 피나스테리드 복용 문제, 소아 체중 기반 용량 계산 등을 AI가 실시간 점검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다만 유 원장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상용화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비용과 규제, 개인정보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연자인 조정래 약문약답 대표는 '환자도 AI를 쓰는 시대, 약사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조 대표는 "미국 성인의 32%가 AI를 통해 건강 정보를 얻고 있으며, 약물 부작용과 의약품 정보를 검색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이 약국 방문 전 챗GPT 등에 질문하고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며 "약사는 AI 답변의 오류와 누락된 정보를 확인하고 개인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약사용 AI 도구의 핵심 조건으로 △개인정보 보호 △처방·복약 이력 기반 분석 △위험도 우선순위화 △근거 제시 △실시간 상담 반영 △빠른 응답 속도 등을 제시했다.

조 대표는 현재 개발 중인 다제약물 검토 AI 솔루션 '파이(PHI)'도 소개했다. 해당 솔루션은 환자 처방 이력을 기반으로 약물 위험을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해 약사의 검토 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이다. 서울대 약학대학과 공동 연구를 통해 약물 검토 정확도 93%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AI 복약지도 오류, 책임은 약사" 법적 책임 논란

"AI는 면허가 없습니다. 결국 최종 책임은 면허를 가진 약사에게 돌아갑니다." 
법무법인 규원 우종식 변호사. 약사공론DB.

법무법인 규원 우종식 변호사(약사·변리사)는 'AI 활용, 윤리적 책임과 법적 리스크 관리'를 주제로 발표하며 약국 현장의 AI 활용 확대에 따른 법적 책임 문제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우 변호사는 현재 약국 현장에서 활용되는 AI 기술 수준을 △조제 검증 △복약지도 보조 △건강상담 △행정업무 영역으로 구분했다.

의약품 이미지 인식과 조제 오류 자동 감지는 아직 연구 단계이며, 약물 상호작용 분석이나 환자 맞춤형 복약정보 생성은 도입 초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처방 해석, 보험청구 자동화, 재고 관리 최적화 등 행정업무 분야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우 변호사는 AI 활용 확대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책임 귀속' 문제를 꼽았다.

그는 "약사법 제23조상 복약지도 의무는 AI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약사에게 귀속된다"며 "AI가 잘못된 정보를 생성하더라도 최종 책임은 AI 개발사가 아니라 약사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생성형 AI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주요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사실처럼 생성하는 생성형 AI 특성상 잘못된 약물 상호작용 정보나 부정확한 용법·용량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 변호사는 "AI는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이며 전문적 판단은 약사의 몫"이라며 "AI 결과물을 환자에게 전달하기 전 공식 DB와 교차 검증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2026년 시행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인공지능기본법)'도 주요 내용으로 다뤄졌다.

우 변호사는 약국에서 활용되는 생성형 AI가 법적으로는 '고영향 AI'와 '생성형 AI'에 동시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보건의료 영역 AI는 생명·신체·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영향 AI로 분류되며, 이에 따라 위험관리와 이용자 보호, 설명 가능성, 사람의 관리·감독 의무 등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약국에서는 △AI 활용 사실 사전 고지 △AI 생성물 표시 △검증 절차 마련 △오류 대응 매뉴얼 구축 △환자 이의제기 시 직접 설명 의무 등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AI 기반 복약지도 자료를 제공할 경우 '본 복약지도 정보는 AI를 활용해 작성됐다'는 식의 고지가 필요할 수 있다"며 "고지 의무 위반 시 최대 3000만원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변호사는 개인정보 문제에 대해서도 주의를 당부하며 "환자 처방전과 질환 정보를 챗GPT 등 외부 생성형 AI에 직접 입력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가능성이 크다"며 "환자 이름과 주민번호, 처방 내용, 질환명 등을 외부 AI에 입력하는 행위는 사실상 금지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부분 생성형 AI 서비스가 입력 데이터를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용약관 확인 필요성도 강조했다.

AI 오류로 조제·복약지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약사법 위반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과 업무상과실치상 등 형사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변호사는 미국에서 실제로 챗GPT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생성해 변호사가 징계를 받은 사례를 소개하며 "약국 현장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약국 시스템의 '폐쇄적 구조' AI 접목 한계

마지막 심포지엄 강의를 맡은 강재현 약사(마이팜 대표)는 '약사와 함께 성장하는 AI'를 주제로 발표하며 AI 기술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약국 시스템의 '폐쇄적 구조'를 지목했다.

강 약사는 이날 직접 제작한 복약지도 보조 AI 도구를 사례로 소개했다. 환자 복용 약물 목록을 입력하면 병용금기 체크와 복약지도 문구 생성이 가능하도록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생성형 AI '클로드(Claude)'를 활용해 약 30분 만에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약국 조제 프로그램과 연결하는 단계에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강 약사는 "API도 없고 데이터 내보내기 기능도 없으며 내가 입력한 데이터조차 내가 활용할 수 없었다"며 "AI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약국 시스템 구조 자체가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선 발표들이 AI의 대체 가능성, 약국 행정, 환자용 AI, 법적 책임을 다뤘다면 자신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그 AI가 들어갈 자리가 지금 약국에 존재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약사는 다른 산업 분야와 약국 환경을 비교하며 약국 시스템의 폐쇄성을 강조했다.

동네 카페는 포스(POS) 데이터를 CSV 형태로 추출해 AI 분석에 활용하고, 쇼핑몰 운영자는 API를 통해 주문·재고·배송 자동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역시 오픈뱅킹 API 개방 이후 핀테크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약국은 API와 표준화 체계가 부족해 데이터 이동과 외부 서비스 연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약국에는 하루 수십~수백 건의 처방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지만 실제 활용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폐쇄 구조의 원인으로는 △소수 업체 중심 과점 구조 △교환 표준 부재 △데이터 소유권 불명확성을 꼽았다.

특히 "폐쇄성이 곧 사업 모델이 된 구조"라고 진단했다. API를 개방하면 이용자 이탈 위험이 발생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업체 입장에서는 개방 유인이 적다는 설명이다.

또 미국 의료 분야에서는 FHIR(Fast Healthcare Interoperability Resources) 기반 데이터 교환 표준이 정착돼 다양한 서드파티 서비스가 작동하고 있지만, 국내 약국 환경은 표준화가 미비해 신규 서비스 결합 자체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데이터 소유권 문제도 핵심 과제로 언급했다.

강 약사는 "약국 데이터가 약사의 것인지, 프로그램사의 것인지, 환자의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결국 '안 주는 것'이 기본값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약국 시스템을 "스마트폰은 있지만 앱스토어가 없는 상태"라고 비유하며 "AI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열린 생태계 부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결 방향으로 △약국 프로그램 평가 시 '개방성' 기준 반영 △약사의 데이터 접근권 논의 시작 △약사 개발자들의 프로토타입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