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러·우 전쟁 4년, 현실감각 중요해진 한국 외교

김정욱 기자 2026. 5. 1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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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국제부 차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3월 28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가재도구를 챙겨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올해 2월 발발한 뒤 국제적 관심은 이곳에 쏠려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4년째 전쟁 중이다.

러·우 전쟁 초기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고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나섰다. 당시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빠르게 고립되고 전쟁은 단기간 안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둘러싼 정치적 피로감이 커졌고 유럽에서도 경제적 부담과 에너지 문제 등을 이유로 회의론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연대’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국제정치의 공기는 냉정한 현실론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고 또 길어질수록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이상보다 생존과 경제가 앞서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본질이다.

한국 역시 역사적 관계나 감정, 진영 논리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한국은 미국 동맹 체제의 핵심 국가인 동시에 러시아와도 일정 수준의 외교·경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최근 북러 밀착은 한국 외교에 새로운 부담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 협력을 확대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통해 경제·군사적 실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기술 협력을 강화한다면 한반도 안보 환경은 지금보다 더 복잡해질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국제사회 흐름과 다른 길을 갈 수도 없다. 한국 외교와 경제 구조는 미국 및 서방 진영과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다. 국제법과 자유무역 질서라는 원칙은 유지하되 국익 차원의 외교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감정적 접근이나 이념적 과잉은 한국의 선택지를 좁히게 된다.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인도적 지원과 재건 협력, 비살상 지원에는 참여하면서도 군사개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이를 두고 국내외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한반도 안보 현실을 감안하면 비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한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아닌데다 북한이라는 위협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이제 러·우 전쟁 자체보다 ‘전쟁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전후 재건 시장과 공급망 변화, 신냉전 질서 속 외교 재편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한 도덕적 구호를 넘어 장기적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경제와 안보는 강하게 결합하고 있으며 이런 시대일수록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닌 현실을 정확히 읽는 감각이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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