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년, 길 가던 여고생 또 살해돼도…” 법엔 여성혐오 범죄가 없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0년 페미니스트 남녀 5명 목소리

2016년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술집 공중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당시 일면식도 없던 34살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범행 이유는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그는 앞서 화장실에 들어온 6명의 남성을 보내고, 일곱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이 사건으로 많은 여성이 분노했다. 여성들은 거리로 나섰고, 강남역에 “너의 죽음이 바로 나의 죽음”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다니” 등의 문구를 쓴 수만장의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 여성을 추모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미투운동, 불법촬영 규탄, 텔레그램 엔(n)번방 수사, 스토킹 범죄 해결 촉구 등 각종 젠더폭력 사건에 여성들이 모이고 목소리를 내는 시발점이 됐다.
여전히 반복되는 ‘강남역’의 비극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각종 강력범죄의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었다. 살인·강도·성폭력·방화로 분류되는 강력범죄(흉악)의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16년 83.6%로 80%대를 유지하다, 2022~2023년 70%대로 떨어졌지만, 2024년 다시 80.3%로 올랐다.

한겨레는 지난 5일 강남역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아 페미니즘을 접했거나, 활발하게 페미니즘 활동을 해온 20~50대 남녀 5명을 만나 사건 이후 10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0년 동안 위력에 의한 성폭력, 텔레그램 엔번방, 딥페이크 성범죄와 스토킹 등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함송화(49) 서울여성회 부설 언니네작은도서관 관장은 “광주에서 여고생이 살해당한 사건 뉴스를 보니 강남역 사건이 바로 떠오르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강남역 사건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최윤이(30)씨는 “원인은 자기한테 있는데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서 그 해결을 찾으려고 하는 혐오적인 방식이 (두 사건이) 너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를 게 없는 두 범죄를 가능하게 한 건 결국 이걸 방치한 정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강남역 세대’라고 부르는 조혜원(26)씨도 “이번 광주 사건은 여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고 말했다.
작동하지 않는 대책들
이런 대증적 대책은 젠더폭력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한(35)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대표는 “젠더폭력은 가족 내에서도 발생하고, 숙박업소에서도 발생한다. 화장실에서 사건이 발생한다고 화장실에 비상벨을 달고, 시시티브이만 설치한다고 해서 안전해지는 건 아니다”라며 “범죄를 행하는 사람의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한데, 그와 관련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여성단체들은 해당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로 명확히 법·제도적으로 분류하고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성폭력방지법’이 2018년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여성폭력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및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디지털 폭력까지로 정의했지만, 여전히 해당 법에서 ‘여성혐오 범죄’는 별도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2023년 경남 진주에서 짧은 머리 모양을 트집 잡아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하는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여성혐오 범죄’를 별도로 분류하고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왔다. 관련 국회 청원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성평등가족위원회)에 2024년 회부되기도 했으나, 결국 지난해 국회 청원심사소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지아(50)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공동대표는 “직장에도 가야 하고, 밤길도 걸어야 되고, 사람도 만나야 되는데 이런 일상 공간 안에서의 안전 문제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아왔다”며 “사회구조적으로 성차별이 존재하고, 그것이 여성들에게 폭력으로 작동한다는 인식이 없으면 촘촘한 대책이 마련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발생해서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해야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지난번 남양주 스토킹 보복 살해 사건처럼 피해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스토킹처벌법상 조치를 다시 점검하는 등 피해자의 죽음을 딛고서야 대책이 나오는 행태가 10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세진 백래시에 젠더폭력 해결은 난망
2022년 대학교 학생회에서 인권기구의 위원장을 맡고 있던 조씨는 당시 온라인에서 공격받던 페미니스트 교수에게 연대 메시지를 냈다는 이유로,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신상털이’ 등 거센 공격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조씨는 연대 메시지 때문에 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에 불려가 2시간 동안 ‘사상검증’을 겪었고, 결국 위원장에서 해임되고 징계까지 받았다. 함씨는 “어느 날 아들이 ‘엄마 페미니즘은 나쁜거야’라고 말을 하더라”면서 “조카들에게 페미니즘 굿즈를 보내준다고 했더니 ‘그런거 들고 다니면 타깃이 된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가 주관하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0주기 추모행사 장소마저 백래시 세력에게 뺏겼다고 한다. 박씨는 “10주기 행사는 매번 했던 장소에서 하지 못 하고, 그 앞 도로에서 하게 됐다. 집회 신고가 열리는 날에 일찍부터 자칭 ‘남성부’라고 하시는 분들이 기다렸다가 그 공간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성평등 교육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도 백래시의 일종으로 짚었다. 그는 “엔번방 사건 이후 관련 교육이 확 늘어나다가, 관심이 식으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이 줄어드니 이후 딥페이크 성범죄가 등장한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라면서 “이런걸 보면 정치권이 정말 관심이 없는게 느껴진다. 대놓고 하는 백래시보다, 이런 백래시가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이 없다. 폭력예방교육과 성교육밖에 없는데, 이런 것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4대 폭력예방교육(성희롱·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예방)은 법정 의무교육이지만, ‘성평등 교육’은 따로 규정이 없다.
최씨는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여성 인권 측면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안전하지 못 하고 노동에서의 성차별 등 다양한 차별을 겪고 있다. 그런 것들을 언급해주고, 해결할 법안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든든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우리 사회에 여성 폭력은 안 된다는 어떤 최저선이 생기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광주 사건을 언급하며 “강남역뿐 아니라 반복되는 여성 살해사건들은 젊은 남성들 또는 자신의 삶이 괴롭고 고립된 남성들이 저지르는 문제”라면서 “누가 이 문제를 저지르고 있나를 봐야 한다. 남성들이 고립되는 이유는 경쟁중심적 사회에서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는 기존의 남성성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성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다시 강남역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박찬희 기자 ch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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