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손해, 내 자리 [한겨레 프리즘]

방준호 기자 2026. 5. 1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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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2026년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2천억원으로 2025년 동기보다 755%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한 2026년 4월7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본사로 차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방준호 | 이슈팀장

집 앞 자그마한 공원에 공중화장실을 짓는다고 한다. 동네는 폭탄 떨어진 듯 소란하다. 엘리베이터마다 붙은 전단에 외부인이 어린이 안전을 위협한다고, 주거 환경을 더럽힌다고, 집 브랜드 가치를 떨어트린다고 적혀 있었다. 반대 서명 용지와 펜이 곁에, 결연하게 매달려 있다.

서명해야 할까. 속으로 선택지를 정리했다. 집 앞에 공중화장실을 짓지 않는 것과,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라)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부족한 것 중 무엇이 더 나은가. 적힌 반대 이유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작든 크든 우리 집에 손해다. 반면 ‘외부인’으로 어느 동네들을 산책하다 문 열린 화장실을 찾지 못해 곤란했던 기억도 꽤 많다. (식은땀 흘리며 절망할 정도였던 순간도 몇번 기억난다.) 둘 다 내 처지다. 시점과 상황에 따라 때로 손해, 때로 이익이다. 두 마음이 아직 나란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선거철이니 시대정신 같은 것을 생각했다고 얘기하면 거창하다. 그저 나와 사람들 마음속 전선은 요즘 어디쯤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떠올려 보는 일은 잦아졌다. ‘이익과 손해, 나의 자리’는 민감한 유권자라면 이즈음 누구든 따져 볼 법한 주제다. 이익과 손해를 셈하는 일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나의 자리를 가늠하는 일에는 모종의 변화가 보인다.

최근의 얘기들은 예기치 못한 방향을 향했다. 역대급 이익을 거둔 반도체 산업 성과급을 두고, 다 끝났다고 체념했던 이해관계자 논쟁이 다시 인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힘겨루기에 그쳤을 단체협상이 기업 내 다른 부문, 주주에 대한 배분 문제로 번졌다. 독보적인 이윤을 위해 사회가 분담한 고통과 기여까지 짚는다. 하청 노동자, 지역, 시민 전체의 몫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황망한 노동자 죽음이라는 비극을 거쳤지만, 원청 씨유(CU)는 특수고용 화물차 노동자와 노동 조건을 교섭했다.

이익을 나눌 자리를 넓혀가는 말들이 허황한 몽상 취급을 받지 않는 게 낯설다. 이익은 가능한 한 좁은 (우리) 집단이 취하고, 고통은 가능한 한 넓은 (외부) 집단이 감당하도록 하는 것은, 꽤 오래 일상부터 사회까지 점령한 반박 불가한 생존전략이었다. 이면의 기여가 어떠했든 사용자도 정규직도 아닌 주제에 ‘감히’ 배분을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외려 염치없는 일로 여겼다. 우리와 외부인을 구분해 자격부터 따지는 ‘공정’에 작게나마 균열이 이는 조짐이다.

나의 지금 자리를 넘어 모두의 자리를 생각하는 이가 조금이라도 늘었다면, 그건 암묵적인 불안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익과 손해는 자리에 달린 것, 자리는 시간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이라는 변수를 늘 포함한다. 지금의 나는 집 앞 공중화장실의 손해를 떠안는 동네 주민이지만, 오늘 오후라도 문 열린 화장실을 찾아 종종걸음 치는 어느 동네의 외부인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이윤을 만드는 세상에서 나의 자리는 점점 더 빈번하고 혼란하게 흔들린다. 경고가 어느덧 현실이다. 안정적인 노동자, 주식과 생산 수단의 소유자 자리는 혼자 노력과 능력만으로 지켜낼 수 없는 지경의 변수에 놓였다. 탈락하는 존재의 증가는 걷잡을 수 없다. 내부인과 외부인을 가르는 벽이 견고할수록, 부의 배분 목록에서 삭제될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 어느 임계를 지나면 나를 넘어, 미래의 나인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이 곧 잿빛 미래 속 나라는 인식은 슬픔이기도 희망이기도 하다.

공중화장실 반대 서명에는 결국 이름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대로면 길에서 공중화장실 찾기 더 어려워질 거예요’ 따위 반박을 적어본댔자 아직은 좀 이상한 주민 취급을 받을 것 같다. 언젠가 분명 외부인으로 전락할 나를 위한 지방선거 공약도 찾기 어렵다, 아직은. 잿빛 미래를 버틸 방법을 다음 선거쯤에는 들을 수 있을까.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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