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정쟁으로 망한 피사 공화국의 교훈

2026. 5. 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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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사(Pisa)는 유명 관광지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볼만한 곳은 이 도시의 한 지역, 피사의 사탑이 있는 '기적들의 광장'(Piazza dei Miracoli) 뿐이다.

'기적들의 광장'은 피사 공화국 전성시대가 남겨준 유산이다.

그러나 국익을 아랑곳하지 않고 극단적 정쟁을 벌이면, 피사 공화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패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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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강국 피사, 배반과 내부분열로 무너져
'한강의 기적' 만든 한국도 반면교사 삼아야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사(Pisa)는 유명 관광지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볼만한 곳은 이 도시의 한 지역, 피사의 사탑이 있는 ‘기적들의 광장’(Piazza dei Miracoli) 뿐이다. 하얀 대리석으로 치장한 대성당, 세례당, 그리고 기울어졌으나 무너지지 않는 종탑이 파란 잔디 위에 펼쳐져 있는 이곳이 ‘기적들의 광장’으로 불리게 된 것은 20세기 초 문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 덕분이다. 그는 1910년 소설 ‘혹시 예, 혹시 아니요’(Forse che sì, forse che no)에서 피사의 대성당 광장을 일컬어 ‘기적들의 풀밭’이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서는 당시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한 경비행기를 타고 인물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피사의 대성당 광장 위로 날아가며 밑에 보이는 하얀 대리석들의 ‘신비로운 빛’을 묘사하는 대목은 “그리스도의 하늘 속에서 기적들의 풀밭을 빙빙 돈다”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피사의 ‘기적들의 광장’이 기적인 이유는 ‘세계 7대 불가사의’ 피사의 사탑 때문만이 아니다. 그곳에 모여 있는 건물들의 아름다운 자태가 별 볼품없는 이 도시의 다른 공간이나 건물과 너무나 대조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피사는 토스카나의 다른 유명 도시가 그러하듯 한때 독립 도시국가였다. ‘기적들의 광장’은 피사 공화국 전성시대가 남겨준 유산이다. 광장의 건물들이 지어진 것은 12세기 후반이다. 11세기부터 바다로 진출한 피사는 12세기에 코르시카, 사르데냐, 시칠리아에 거점을 확보하고 해상제국으로 도약했다. 피사 공화국의 무역망은 중동, 그리스, 흑해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피사 공화국은 13세기 후반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같은 해안에 있는 또 다른 도시국가 제노바(Genova)가 피사의 영역에 도전했다는 것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내부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제노바와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피사의 지도층은 자기들끼리 치열한 정쟁을 벌였다. 심지어 제노바가 잡아간 피사 포로들을 돌려주겠다고 하는데도 이들의 복귀를 지연시키는 일도 있었다. 포로 중에 새로 권력을 잡은 세력의 반대 당파가 대거 포함돼 있었던 까닭이다. 피사의 또 다른 강력한 적은 내륙에 있는 피렌체 공화국이었다. 바다로 진출하는 길목에 있는 피사를 피렌체는 늘 탐냈다. 결국 1406년에 피사는 피렌체 공화국에 복속됐다. 이 과정에서도 피렌체의 군사력보다는 피사 지도층 내부의 분란과 배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권력을 움켜쥔 공화국 수반이 1399년에 거금을 받고 통치권을 통째로 팔아버렸다. 그 후로 공화국의 붕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공화국들의 역사에서 유력 정치가와 당파의 치열한 경쟁은 늘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익을 아랑곳하지 않고 극단적 정쟁을 벌이면, 피사 공화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패망하고 만다. ‘기적들의 광장’을 남겨놓은 채 사라져 버린 무역 강국 피사 공화국의 역사는 ‘한강의 기적’으로 급속히 무역 대국으로 부상한, 또한 살벌한 정쟁으로 병들어 가는, 대한민국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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