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불편한 한미동맹, 그래도 다른 대안은 없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2026. 5. 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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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을 가치 공동체 아닌
거래 관계로 바꾼 트럼프
일시적 변화가 아니다
독자적 안보는 불가능
동맹 ‘가성비’ 따지기보다
권리와 의무 재설계해야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6월 28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격려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쪽으로 F-16 전투기와 A-10 대지 공격기 등 미군 장비들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미국·이란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벌써부터 동맹국들의 전쟁 기여도 여하를 놓고 채찍을 꺼내 들었다. 독일이 유럽 동맹국 중 맨 먼저 심판대에 올라, 주독 미군 5000명 이상 감축과 자동차 관세 10% 추가 인상이 발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상당한 불이익 조치가 있으리라는 예측은 이미 있어 왔으나, 핵심 동맹국인 독일에 대해 설마 정말 그러기야 하겠느냐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역시 트럼프는 트럼프였다.

‘위대한 미국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좌충우돌 진군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자국 이익 중심주의와 힘의 무절제한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역사상의 다른 강대국들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는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의 군사적 팽창정책이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몽)’을 이루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제국주의적 세력 확장과도 많은 유사성이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외교가 유난히 많은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과거의 미국은 이렇지 않았는데” 하는 다분히 회고론적인 반감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좌충우돌 전개되어 온 미국의 새 대외정책은 단순한 코드 변경이 아니라, 국제질서를 미국 우선주의 틀에 맞추어 개조하려는 급진적 시도의 연속이었다. 대(對)중국 공급망 통제, 우방국과의 관세전쟁,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과 자주국방 강화 요구, 파나마·베네수엘라 문제의 생소한 해결 방식, 대이란 군사행동 등 일련의 조치는 모두 일관된 전략적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21세기식 자유주의 개념에서 벗어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나 20세기 냉전 시대와 같은 권력정치 질서로 회귀해 가는 세기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동맹관계에 관한 미국의 정책변화는 심대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가치 공동체가 아닌 철저한 거래 관계로 규정하고, 동맹국들에 자기방어를 위한 더 큰 책임과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절대적 국력 우위가 퇴조해 가는 상황에서 미·중 패권 대결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해 전략적 과부하를 완화하려는 불가피한 현실주의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안보를 장기간 미국에 의존해 온 미국의 동맹국들이 오랜 타성에서 별안간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표변한 미국을 바라보는 동맹국들이 극도의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표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3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란트슈툴 마을에서 열린 봄 축제에서 미국을 의인화한 캐릭터 ‘엉클 샘’이 그려진 대형 벽화 앞을 현지 주민들이 지나고 있다. 유럽 최대 미군 기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 인근에 있는 이 마을 주민 8000여명 중 상당수가 미군을 상대로 한 렌터카·식당·미용실 등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원선우 특파원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그들 동맹국 앞에 놓인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의 동맹정책 변화가 트럼프 시대와 더불어 사라질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미국 집권당과 대통령이 교체되어도 크게 바뀌지 않을 본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국의 홀대와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기존의 동맹 판을 뒤엎고 선택할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대접이 아무리 실망스러운들 신냉전의 험한 세계에서 동맹국 없이 홀로 안보를 지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그렇다고 미국과의 동맹을 청산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에 안보를 의탁하는 건 더욱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적 상황은 우리 안보에도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핵무장국 중국·러시아·북한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북중·북러 간 군사적 결속이 강화된 현실은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준다. 강대국들이 하나같이 자국 우선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을 노골화하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자체 군사력이 아무리 강한들 동맹 없는 독자 안보는 비현실적 가정이다. 친러시아와 친서방 정책 사이에서 장기간 오락가락 방황했던 우크라이나가 맞고 있는 험난한 운명은 우리에게 귀중한 역사의 교훈이다.

핵무장 세력에 둘러싸인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좁고도 명확하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과거 좋았던 시절의 미국이 아니라 냉혹한 계산과 거래의 국제질서를 창설해 가는 전혀 다른 미국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던지는 거친 요구들은 곤혹스럽지만, 그렇다고 동맹의 울타리를 허물면 더욱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동맹의 가성비를 따지기보다는 동맹에 대한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분명히 하고 그 균형점 위에서 동맹관계를 재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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