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Q] “김정은 두 국가론에 대한 동조, 통일 바라는 북한 주민 희망 꺾는 것”
현인애 한반도미래여성연구소장

북한이 헌법을 개정하고 통일부가 북한 명칭 변경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탈북민 사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리 온 통일’로 불리는 탈북민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 내부 정보를 접하고 있어 현 상황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窓)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인애 한반도미래여성연구소장은 김일성종합대 철학부 출신으로 청진의대에서 철학 교원으로 일하다가 러시아 유학파인 남편이 처형된 뒤 2004년 탈북했다. 그후 이화여대에서 탈북민의 의식 변화를 연구하고, 통일 논의 과정에 탈북한 전문가들의 참여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지난 6일 본사 편집국에서 만난 현 소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통일은 폭력적” 발언에 대해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북한 독재의 폭력을 청산하는 것”이라며 “남북이 통일되면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또, “북한 지도부는 남한을 최대한 속여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며 “남한 정치권이 북한 체제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토조항 신설해 대한민국 헌법 개정 유도
- 북한이 헌법을 개정, 김정은의 핵 무력 지휘권을 넣은 것이 눈에 띄는데.
“김정은이 조국통일을 헌법에서 삭제한 것은 더 이상 체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정상적 국가 경쟁으로는 남한을 이길 수 없기에 핵 무력 지휘권을 명기했다. 조국통일 포기의 무력감을 핵 강국 선언으로 해소하고 있다고 본다.”
- ‘남쪽으로는 대한민국과 접한다’는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은 어떻게 보나
“북한을 남한과 분리시켜 남북을 서로 다른 국가로 각인하려는 것인데, 한반도 전체를 국토로 규정한 대한민국의 헌법을 바꾸려는 목적도 있다.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기에 북한 헌법에서 영토조항을 만들면 남한도 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김정은이 주장해 온 ‘적대적 두 국가’ 관련 표현이 헌법에 담기지 않았는데.
”외교적 파장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국가로 표기하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호전성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이 되지 않나.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북한 입장에선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후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며 최근에는 “통일은 폭력적” 이라고 했는데.
“통일 과정에서 충돌과 희생이 발생할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다. 오랫동안 서로 다른 체제로 살아온 사회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인데 어떻게 아무 충돌이 없겠나. 김정은 체제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통일부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통일은 결국 폭력을 청산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 무슨 의미인가.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김씨 체제의 폭력 속에 살고 있고, 남한 시민들도 북한의 군사 위협에 노출돼 있다.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쉽게 말하면 북한 독재의 폭력을 청산하는 노력이다. 현 상태를 허물고 남북이 통일되면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 아닌가.”
김정일도 통일 싫어했다
- 북한에서 경험한 북한 지도자들의 통일관은.
“김일성은 끝까지 통일 의지가 있었던 사람이다. 이에 비해 김정일은 현실적으로 통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 추진 때도 김정일은 이를 매우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북한에서 매일 노동신문을 읽으면서 당의 입장을 파악했는데, 실제로 김일성 사후에 매년 실리던 7·4 남북공동성명 관련 사설이 사라졌다. 철학교원이던 나는 그 것을 보며 “아, 김정일은 통일 자체를 싫어했구나”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통일을 싫어하던 김정일도 통일을 전면 거부하지는 못했다."
- 이재명 정부는 평화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본다. 남한만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추진하는 것은 결국 북한 전략에 말려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통일부 명칭 변경이나 헌법 개정 논의 역시 북한을 별개 국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탈북민 입장에서는 ‘남한이 북한 주민을 버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 생각도 대북 정책에 반영돼야
-정부는 분단이 계속 되더라도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찬성하기 어렵다. 우리가 평화적 두 국가 체제를 제시한다고 해서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보장될까?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현 소장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두 국가로 갈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북을 합칠 것인가를 논의할 때 왜 남한 사람들의 생각만 고려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각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현재 남한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측면이 있다.”
- 탈북민들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정동영 장관이 2000년대 자유롭게 방북하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곤 했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시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남한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핵무장을 한 김정은 체제다. 지금의 북한 체제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정치인들이 너무 순진한 것 같다."
- 왜 한국 정치인들이 순진하다고 생각하나.
“북한 지도부는 남한을 최대한 속여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남한 정치인들이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북한은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한국에 와서 보니, 남한 정치권이 북한 체제를 너무 낭만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을 느꼈다.”
- 그렇다면,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대응책은.
“이 문제에 대해 급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우리는 기존의 통일 입장을 유지하면 된다.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대응하면 된다. 다만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현 소장은 최근 상황이 답답한 듯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본 식민지였던 우리가 1940년대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거의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통일 희망을 버리면 안되고, 우리 국가 목표에서 제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회에 대한 통제 대폭 강화돼
-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통일을 원하나.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 북한 주민들 모두 남한이 잘 산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체제가 바뀔 수 있다고 기대한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차리리 전쟁이라도 나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북한에서의 삶이 절망적이라는 의미인데, 적대적 두 국가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희망을 꺾는 것 아닌가.”
- 적대적 두 국가론은 왜 나왔다고 보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남북관계 차원의 선언으로만 보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북한 주민 통제정책이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접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3년만에 폐지한 ‘평양 시간’제, 개성공단 건물 폭파, 남한 뉴스 축소 같은 것들이 모두 그 과정이다. 김정은은 남한이라는 존재 자체가 주민들에게 체제 위협이 된다고 본 것이다.”
- 최근 북한 내부 통제가 더 강화되고 있다는데.
”그렇게 듣고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엔 북한의 주민 통제가 느슨했다. 배급을 주지 못하니, 사람들이 장사를 하러 돌아다녀도 국가가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김정은이 다시 사회주의식 통제를 완전히 복원하려 한다. 장마당을 억제하고 식량공급소를 통해 국가 통제하에 식량을 유통하려 한다. 이는 결국 주민들을 다시 국가가 완벽하게 통제하는 감옥 안에 넣겠다는 것이다."
- 경제 상황은 어떤가.
“북한 당국은 노동자와 사무원 월급을 20배 가까이 올렸다. 하지만 생산 기반 없이 임금만 올리니까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쌀값이 1kg당 5000원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3만원 수준까지 올랐다고 한다. 월급이 올랐다고 해도 주민들 입장에서는 생활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최근 탈북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김정일 시대가 더 살기 나았다’고 말한다. 그때는 최소한 장사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니까.”
두 아들이 꽃제비 생활하다 먼저 탈북
- 김일성대 출신인데 왜 탈북했나.
“남편이 정치 사건에 연루돼 처형됐고, 가족들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몰렸다. 큰아들이 15세, 작은아들이 12세였다. 아들들은 먼저 도망쳐서 꽃제비 생활을 하다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나는 2004년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머물던 탈북민을 전세기로 데려 올때 한국 땅을 밟았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20년이 넘었어도 나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북한 사람이다. 북한 문제를 떼어놓고 살 수가 없다.”
- 한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탈북 후, 늘 남한에서 떠올리는 북한 우화가 있다. 당나귀가 풀을 뜯고 있는데 배고픈 승냥이가 나타나 엉덩이 한쪽을 내어달라고 한다. 당나귀가 그렇게 하도록 하자 이후 계속 요구가 이어져 결국 잡아먹히게 된다. 김씨 체제에 속지말고 북한보다 늘 전략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현인애
1979년 김일성종합대 철학부 졸업 후 청진의대에서 철학 교원으로 일했으며 이화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유학파 출신 남편이 정치 사건에 연루돼 처형된 뒤 한국에 정착했다. 탈북민의 의식변화 및 북한 인권과 통일 문제를 연구해왔다. 탈북 여성 전문가 모임인 한반도미래여성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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